AI 영상미디어 프로덕션의 뉴웨이브

[기고] AI 영상미디어 프로덕션의 뉴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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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월간 방송과기술』 2025년 11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한영주 성균관대학교 인터랙션사이언스연구소 선임연구원/언론정보학 박사] 영상미디어 산업에서 오랫동안 이론적으로 논의되어 온 AI 기술과 그 가능성이 이제 실질적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2025년은 이러한 논의가 실제 성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한 해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영상미디어 산업의 AI 프로덕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AI 기반 영상미디어 제작 전략
AI 기반 프로덕션은 기술 활용 전략에 따라 크게 ‘스펙터클 AI(Spectacle AI)’와 유틸리티 AI(Utility AI), 또는 스텔스 AI(Stealth AI)로 구분된다. 두 가지 모두 프로덕션 과정에 AI를 이용한 제작 방식이지만, AI 기술이 전면에 드러나는지 아닌지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스펙터클 AI’는 기술의 ‘전시적(Exhibitional)’ 활용 전략으로서, 기술 자체가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마케팅의 일부가 되는 형태이다. ‘스펙터클 AI’의 핵심 목표는 기술적 혁신을 과시하고, 대중의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예컨대, 영화 <히어(Here)>(2024)는 VFX 기업 ‘메타피직(Metaphysic)’의 생성형 AI 기반 ‘디지털 메이크업’ 기술은 고해상도의 얼굴 교체와 디에이징 효과를 실시간으로 구현했다. 이 기술 덕분에 69세의 ‘톰 행크스’는 촬영 현장에서 자신의 20대 모습이 투영된 모니터를 보며 연기할 수 있었다. <히어>는 소니 픽처스 내부 시사회에서 역대 최고점을 기록하는 등 긍정적인 초기 반응을 얻었으나, 일각에서는 혁신적인 기술이 서사를 압도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히어>의 사례는 AI 기술과 실제 배우의 ‘협업’이 점차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AI가 단순히 표면을 정교하게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 배우의 살아 있는 연기(Presence)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서사를 완성해 나갈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그림 1. AI 디지털 메이크업 기술을 사용한 영화 <히어> 주연배우 ‘톰 행크스’ / 출처 : Metaphysic

한편, ‘유틸리티 AI’ 또는 ‘스텔스 AI’는 관객들은 거의 인지하지 못하지만, 제작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용되는 AI 기술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는 주로 제작 파이프라인의 일부로 깊숙이 자리 잡은 실용적 도구로서 활용된다. ‘유틸리티 AI’의 핵심은 VFX 아티스트나 편집자의 반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작업을 자동화하여, 제작팀이 더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실제로 <듄: 파트 2(Dune: Part Two)>(2024)는 ‘유틸리티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이다. 1편에서는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 프레멘족의 푸른 눈을 구현하기 위해 VFX 아티스트들이 수작업으로 모든 샷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2편에서는 VFX 스튜디오 ‘DNEG’가 1편의 데이터를 학습시킨 맞춤형 머신러닝 모델을 개발하여, 배우의 눈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색상을 변경하는 프로세스를 자동화했다. 이는 반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작업을 AI가 얼마나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림 2. AI 기반 VFX를 사용해 배우들의 눈 색상을 변경한 / 출처 : Filmstories (2025. 3. 21).

이처럼 AI 기술 자체가 마케팅 포인트로 부목 받는 이른바 ‘스펙터클 AI’는 대중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 <듄: 파트 2>처럼 제작 효율성을 높이는 ‘유틸리티 AI’는 대중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스텔스 AI‘를 구현하며, 블록버스터 제작의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데 실질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최초 AI 영화 제작 <중간계>
지난 10월 15일, 국내 최초로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한국 영화 <중간계>가 CGV에서 단독 개봉했다. 이 작품은 국내 장편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생성형 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았다. <중간계>는 12지신을 모티브로 한 저승사자 크리처와 광화문 광장이 붕괴하는 등, 대규모 액션 장면의 시각 효과(VFX)에서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중간계>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AI 기술의 상업적 실증을 통해 침체된 영화 시장에 새로운 자본 유입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AI가 ‘상업 AI 영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 선언하며, 제작 과정의 효율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마찬가지로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은 기존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수개월이 걸릴 작품을 AI를 통해 단 며칠, 혹은 몇 시간 만에 완성할 수 있다고 밝히며 제작 시간과 비용의 획기적인 절감을 강조했다.

실제로 <중간계>에서 AI 기반 VFX를 활용하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약 1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후반 작업 기간이 단 3~4개월 만에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촬영과 CG 작업을 합쳐 4~5일이 걸렸을 차량 폭발 장면은 AI를 통해 단 1분에서 수 시간 만에 생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간 및 비용 절감은 제한된 예산 내에서도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스펙터클한 장면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림 3. 국내 최초 AI 제작 영화 <중간계> / 출처 : 스포츠동아 (2025. 9. 23) 재인용

이러한 기술적 구현과 이점에도 불구하고, <중간계>는 관객과 평단의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중간계>의 가장 큰 약점은, 첫째 빈약한 서사 구조였다. 영화는 추격전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계속(To be continued)’이라는 자막과 함께 속편을 암시하며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끝나는데, 마치 전체 이야기에서 절반 정도만 보여준 것과 같았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관객들로 하여금 미완결 플롯으로 인식되며 혼란과 불만족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문제점은 AI로 구현된 크리처들이 실사 배경과 배우들의 연기에 자연스럽게 조화되지 못하고 어색하게 겉돈다는 비판이 다수였다. <중간계>는 대부분 장면에서 생성형 AI로 제작했다는 화제성과 흥미로운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서사 구조와 AI와 실사의 어색함으로 인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생성형 AI를 VFX에 사용한 최초의 상업영화로서 <중간계>의 기술적 시도와 시장 반응은 AI 영화 제작의 현재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가상 배우의 등장과 디지털 초상권 논란
네덜란드 기업 ‘시코이아(Xicoia)’가 ‘차세대 스칼렛 요한슨’으로 홍보한 100% AI 생성 캐릭터 ‘틸리 노우드’의 등장은 즉각적인 산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강력한 규탄 성명을 통해, 틸리가 “배우가 아니라, 수많은 전문 연기자들의 작업을 허락이나 보상 없이 학습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생성한 캐릭터”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성명은 또한 가상의 창조물은 연기의 기반이 되는 “삶의 경험도 없고, 감정도 없다”라고 강조하며, 인간 경험과 동떨어진 콘텐츠에 대한 관객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숀 애스틴’, ‘나타샤 리온’과 같은 저명한 배우들도 공개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비난했으며, ‘리온’은 틸리 노우드와 계약하는 모든 탤런트 에이전시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했다.

그림 4. AI 배우 ‘틸리 노우드’/ 출처 : The Guardian(2025. 9. 30). (좌),
그림 5. AI 배우 ‘틸트 노우드’ 인스타그램 / 출처 : 틸트 노우드 인스타그램 캡처 (우)

OpenAI가 ‘역사적 인물’ 예외 조항을 두어 사망한 유명인의 딥페이크 영상 제작을 허용한 동영상 생성 앱 ‘소라 2(Sora 2)’를 출시하면서, ‘사후 초상권(post-mortem right of publicity)’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소셜 미디어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원숭이 소리를 내거나 절도하는 모습, 스티븐 호킹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레슬링을 하는 모습, 존 F. 케네디가 최근의 살인 사건에 대해 농담하는 등, 역사적 인물을 모욕적이거나 부정확하게 묘사하는 영상이 넘쳐났다. 이에 고인들의 유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딸 ‘젤다 윌리엄스’는 대중에게 아버지의 AI 영상을 그만 만들어 보내달라고 호소하며, 이를 ‘끔찍한 틱톡 인형극’이라고 비판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맬컴 X’의 유족 역시 이러한 영상 제작 중단을 요구했다. 거센 압박에 OpenAI는 결국 ‘최근 사망한’ 인물의 대리인이 차단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섰고, 이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유족의 요청에 따라 그의 초상 사용을 전면 차단했다.

그림 6. ‘스티븐 호킹’과 ‘아인슈타인’이 WE 레슬링 경기를 벌이는 AI 영상 / 출처 : 한국경제 (2025. 10. 12) 재인용

다가오는 방송산업의 뉴웨이브
AI 기술의 본격적인 상용화는 영상미디어 제작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전환시키고 있다. AI 기술은 더 이상 영상미디어 제작의 부수적 요소가 아니라, 제작 전략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영화산업에서는 ‘스펙터클 AI’와 ‘유틸리티 AI(또는 스틸스 AI)’의 투트랙 전략을 통해 시각적 완성도와 제작 효율성 모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방송산업은 기술 도입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며, 파일럿 단계 수준의 시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tvN 드라마 <견우와 선녀> 사례는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견우와 선녀>는 ‘보이지 않는 제작 도구’인 ‘유틸리티 AI’ 전략 측면에서 제작비와 시간을 절감하며, 동시에 실사 없이 생성형 AI 모듈을 활용해서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방송산업에서 AI 기술이 아직 영화산업 대비 상대적으로 덜 활성화된 상태임을 고려할 때, 상세한 기술 스펙이나 서사적 완성도 측면의 평가 등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주는 사례였다.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유틸리티 AI’를 활용할 경우, 제작비와 시간을 절감함과 동시에, 보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콘텐츠 제작이 가능해질 것이다. 특히 공영방송이나 지역 방송과 같이 제작 여건이 제한적인 조직에 AI는 제작 자원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혁신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스펙터클 AI’의 부상은 방송 콘텐츠의 경쟁력을 좌우할 새로운 요소가 될 수 있다. 방송산업은 OTT 및 영화 산업과 달리 공공성의 속성을 지닌 만큼,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기술을 통한 서사적 몰입감과 시청자 경험의 혁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생성형 AI의 처리 속도와 영상 품질 사이에는 뚜렷한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 영화산업에서는 러닝타임 전반에 걸쳐 AI 기반 VFX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선구자의 불이익(Pioneer’s Penalty)’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제작 효율성의 향상이 반드시 관객의 시청 경험 개선으로 직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향후 방송산업 역시 AI 기술을 핵심 시각 효과를 대체하는 수단으로만 활용하기보다, 전략적 자산이자 창의적 파트너로 통합·운용하는 체계적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 매일경제 (2025. 10. 10). 못지않은 액션신 척척…AI 영화시대 열렸다.
・ 스포츠동아 (2025. 9. 23). 김윤성 감독 ‘중간계’, 국내 최초 AI 활용 장편 영화··저승 사자 스틸 최초 공개.
・ 연합뉴스 (2025.10.1). AI 배우 등장에 할리우드 거센 반발… ‘배우들 연기 훔쳐’.
・ 한국경제 (2025.10.12). 아인슈타인과 레슬링하는 호킹?…AI가 부른 ‘사후초상권’ 논란 [김인엽의 퓨처 디스패치].
・ The Guardian (2025. 9. 30). Tilly Norwood: how scared should we be of the viral AI ‘actor’?
・ Filmstories (2025.3.21). AI | 16 films that have used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ow.
・ Metaphysic (n.d.). metaphysic.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