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KOBA 2026 Daily News』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이윰 IUM GENESIS 아티스트 디렉터]
1. 기술은 평준화되고, 감각은 차별화하고, 세계관이 투자 가치를 결정한다
Midjourney, Sora, Veo3, Nano Banana Pro, 그리고 최근 Seedance 2.0까지— 새로운 도구가 나올 때마다 창작자들은 ‘역대급’이라는 찬사를 쏟아냈지만, 그 찬사는 몇 주 내 또 다른 기술의 등장으로 금세 무색해졌다. 이쯤 되면 모든 창작자가 동의한다— 기술은 ‘상향 평준화’되었다. 그렇다면,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2025년 KT PAN AI 공모전, 고혼진 AI 광고영상 공모전, 2026 청강국제AI장르영상제 등의 심사위원을 맡으며 수천 편의 AI 영상·방송 콘텐츠를 접했다. 기술이 평준화된 지점에서 경쟁력을 만드는 요소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ChatGPT가 만든 전형적 서사와 개인의 삶에서 우러나온 서사의 차이는 확연했다. 그다음 단계에서 드러나는 차별성은 ‘감각’이다. 감각은 한 존재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며 체화시킨 개성적 미학이기에, 이 영역에서부터 AI의 느낌보다 창작자의 인간적인 감성 체계가 도드라진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것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마스터 플랜이며, 감상자들이 접속하여 즐기는 가운데 더 큰 세계로 확장되고 다양한 콘텐츠로 세분화되어 문화적·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선순환적 유니버스다. ‘투자 가치’가 있는 콘텐츠인지 옥석을 가르는 최종 기준은 바로 이 세계관이다.
2. K-컬처로 빚는 조선의 원더랜드—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한국적 세계관
K-컬처, K-헤리티지— 대한민국의 역사문화유산과 한국인만의 흥과 정, 긍정과 해학의 국민성이 첨단 AI와 만났을 때, 세계인을 매혹시킬 한국적 세계관이 태어난다. K-팝이 세계인을 사로잡은 배경에 그 밝은 에너지가 있다는 분석에 깊이 공감한다. 필자는 현대미술가이자 콘텐츠 창작자로서, 바로 이 에너지를 AI 미디어 아트의 세계관으로 구축해왔다.
〈조선의 앨리스〉— AI아트 뮤지컬 드라마: 음악천재 조선공주 애리수가 궁에서 쫓겨난 뒤 현대에서 K-팝 여왕으로 성장하는 AI 아트 뮤지컬 드라마 IP이다. 하나의 이미지에서 캐릭터가 태어나고, 캐릭터에서 음악이 생기고, 음악에서 파일럿 영상(뮤직비디오)이 만들어졌다. 어반브레이크 AI 아티스트 어워즈 최우수상 수상 이후, MBC C&I AI 콘텐츠 랩과 공동 개발한 파일럿 콘텐츠가 국내 방송영상 마켓과 도쿄 방송영상 마켓에서 선보였으며, 2025 대한민국 AI 콘텐츠 어워즈 Pitch the Future 음악 부문 1위를 수상했다. 이러한 흐름은 하나의 세계관이 이미지→ 음악→ 영상→ 마켓→ IP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이는 기술이 아닌 ‘세계관’이 콘텐츠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핵심 요소임을 시사한다. 특히 AI로 만든 음악과 안무를 편곡자, 보컬, K-팝 안무가와 함께 재해석하며 AI와 기존 산업의 상생적 창작 환경을 실험했다. 현재 글로벌 콘텐츠 프로젝트로 개발 중이다.

〈신비화원도〉— 전통 화조도가 도심의 스크린 위에 피어나다:



전통 화조도의 세계와 한복 입은 모던한 인물들이 도심 빌딩 숲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미디어아트이다. 2025 중앙미디어아트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며 코엑스 미디어 타워, 파르나스 미디어 타워 등에서 상영되었다. 전통 미학이 도시의 거대한 스크린 위에서 현대인과 만나는 과정을 통해, AI 미디어 아트가 방송영상 산업의 새로운 장르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덕혜옹주의 스토리를 재해석한 〈해세가도〉 프로젝트는 2025년 삼성동 언커먼 갤러리에서 이미지, 영상, 음악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발표되었으며, 국내 전시는 물론 중국 상하이·쑤저우, 타이완, 멕시코 등 해외 전시로 이어졌다. 이 외에도 MBC 버추얼 라이브 페스티벌의 야외 무대 미디어 파사드 작업을 AI 아트로 연출하며, 버추얼 아이돌과 실제 K-팝 가수, AI 미디어 아트가 하나의 콘텐츠로 어우러지는 차세대 방송 콘텐츠로서의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또한, 전통 십장생도와 LG U+의 불멸의 디지털 세계를 융합한 ‘Eternal Fusion’은 용산 사옥의 초대형 미디어월에서 상영되었는데, IT 강국 한국의 미래 기술과 역사문화유산의 가치가 어우러진 한국적 감수성의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3. 공정 혁신에서 창작 혁신으로— 방송영상 산업의 다음 기회
2026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전년 대비 8.2% 증액된 7,05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AI 콘텐츠 제작 지원에 198억 원을 투입하여 제작 공정의 AI화를 추진하고 있다. KBS·MBC·KT ENA는 대규모 학습 데이터셋 기반 자동화 시스템을, CJ ENM은 ‘시네마틱AI’를 도입해 제작 효율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움직임들의 공통점이 있다. 편집 자동화, 비용 절감, 유통 효율화— 대부분 ‘공정 혁신’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세계관 기반의 창작 혁신’에는 아직 충분한 자원이 배분되지 않고 있다.
AI 공모전을 통해 창작자의 IP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늘고 있지만, 저작재산권을 사업 주체에 포괄적으로 귀속시키는 조건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런 구조는 창작자의 IP 가치를 저평가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상호 호혜적인 창작 생태계와는 거리가 있다. 방송영상 산업이 AI를 ‘비용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관을 만드는 파트너’로 바라볼 때, 비로소 K-콘텐츠의 다음 장이 열릴 것이다.
4. 생성이 아닌 창작, 그 토대를 세우며
AI 시대, 창작자의 고유한 창의성을 어떻게 입증하고 보호할 것인가는 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다. 필자는 2025년 저서 『AI 아트의 일곱 가지 창의성』을 통해 AI 시대의 창작 철학 ‘호모 제네시스(Homo Genesis)’ 이론을 제시하고, 4년간의 창작 사례를 바탕으로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권을 입증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론을 체계화했다. 창작물이 보호될 수 있는 창작론의 토대 없이는 건강한 창작 생태계가 마련되기 어렵다는 절실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단순한 생성이 아닌 ‘창작’으로서의 AI 미디어 아트에 한국적 세계관을 덧입힐 때, 거기에 K-원더랜드가 열린다. 대한민국의 방송영상 산업이 창작자의 IP 개발과 상호 호혜적인 생태계를 기반으로, 글로벌 콘텐츠 산업을 선도하기를 기대한다.
*이윰(IUM)은 약 30년 간 조각,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아티스트 디렉터이다. AI 아트를 통해 세계관 기반의 ‘창계의 예술(Art as World Creation)’을 실천하며, 작가명 ‘윰’은 두 팔을 펼쳐 무한한 상상 영토에 서 있는 스스로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속 미술/AI 분야 정책자문위원, 국가유산청 AI 분야 정책자문위원이며, AI 콘텐츠 스튜디오 IUM GENESIS를 이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