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김승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2025년, 대한민국 방송계는 기술 혁신과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디어 소비 행태가 빠르게 다변화하면서 방송 산업 전반에 걸쳐 구조적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 속도에 비해 방송 정책과 지배구조 개혁은 여전히 더딘 실정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역할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며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공적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본질적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세금과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공재로서,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최근 몇 년간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 속에서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는 사례들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언론이 정권의 도구로 전락할 때 사회는 편향된 정보와 왜곡된 진실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은 정권의 입맛에 맞춘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공정하게 반영하고 권력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치적 후견주의를 철저히 배제하고 공정하고 독립적인 지배구조 마련이 시급합니다.
특히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은 그 독립성과 공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이사회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는 방송의 신뢰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이사회 구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시민사회, 학계, 산업계, 시청자 대표 등 다양한 주체들이 공정하게 참여해 정치권의 입김을 최소화해야 하며, 특히 방송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갖춘 미디어 기술 전문가의 참여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방송은 단순한 콘텐츠 제작을 넘어 미디어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적 기반 위에 존재합니다. 이러한 전문가의 통찰과 경험은 공영방송의 신기술 도입, 올바른 정책 방향 수립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나아가 국가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은 공영방송의 역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딥시크(DeepSeek) 사건은 AI 기술의 급격한 진보가 미디어 환경과 언론의 자유에 미칠 수 있는 파장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무분별한 AI 도입은 개인정보 유출, 허위 정보 확산, 알고리즘 편향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만을 이유로 기술 진보를 배척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아닙니다. AI 기술은 올바르게 활용할 경우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언론의 신뢰성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언론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딥시크 사태의 교훈을 바탕으로 적은 투자로도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며,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으면서도 미디어 산업에 필요한 기술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한국형 GPT 모델 개발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델은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도 공공성을 유지하여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공영방송의 존립 이유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 있지 않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다양한 진실을 전하고,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시청률 경쟁에만 몰두하거나 정치적 편향에 휘둘리는 방송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공영방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영 효율화나 기술 도입을 넘어 공정성과 독립성을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방송계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상업적 이익과 정치적 편향에 휘둘리는 방송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신뢰와 공공성을 지키며 지속 가능한 미디어 환경을 구축할 것인가. 이 선택은 방송계 종사자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모든 국민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문제입니다. 공영방송의 미래는 결국 우리 사회가 무엇을 가치로 삼을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의 진정한 역할과 가치를 되찾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