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자진 폐업을 선언한 경기방송을 놓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김예령 기자는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자신의 질문이 경기방송의 재허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김 기자의 주장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여기에 경기방송은 방통위의 경영 간섭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했다며 폐업 후에라도 법정에서 다투겠다는 반박문을 내놓았고, 노조는 사측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라며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경기방송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시간 순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2019년 1월_김예령 기자 질문 두고 갑론을박
시작은 지난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는 1월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 성장을 지속시키겠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냉랭하다”며 “현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이유를 알고 싶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고 말했다. 당시 김 기자는 소속을 밝히지 않아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김 기자의 질문이 끝난 뒤 소속을 대신 소개했다. 이후 김 기자의 질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구체적인 질문을 하려면 자료를 더 준비하고 공부하라’ ‘명확한 근거가 있는 질문을 해야 하지 않느냐’ ‘무례하다’ 등의 지적과 ‘지난 정권과 비교했을 때 권위주의에서 벗어난 것 같다’ ‘민주주의가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등의 긍정적 시선이 맞물렸으며 네티즌의 의견도 다양하게 제기됐다.
△2019년 8월_불매운동 비하한 현준호 총괄본부장
현준호 경기방송 총괄본부장의 정부 및 불매운동 비하 발언이 논란에 휩싸였다. 현 본부장은 8월 5일 오후 12시쯤 방송사 신관에 위치한 한 일식당에서 간부급 직원들에게 “불매운동이 100년간 성공한 적이 없다. 물산장려니 국채보상이니 성공한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 본부장은 식당 직원에게도 “아사히 맥주 숨겨놓고 팔지 말고, 오늘부터 당장 파세요”라고 말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불매운동 비하 발언을 했다. 또 8일 식사 자리에서도 보도팀에 ‘정치적 불매운동으로 인한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는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현 본부장의 발언이 공개되자 청취자의 항의는 쇄도했고, 경기도의회 차원에서 경기방송 광고를 동결하는 안과 의원 출연 거부안이 논의되는 등 파문은 확산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경기방송 분회(이하 경기방송 노조)도 움직였다. 노조는 “경기방송 구성원으로, 청취자와 경기도민께 사과드린다”며 현 본부장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했다. 사회적 비난이 거세지자 현 본부장은 8월 19일 열린 전체회의를 통해 직접 사과하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지분도 매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 본부장은 경기방송 지분 8.54%(2016년 5월 31일 기준)를 가진 주주다. 이 때문에 경기방송 내외부에선 방송사의 경영과 보도 분리 원칙에서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2019년 9월_사퇴하겠다던 현준호에게 사태 해결 위한 전권 부여?…막 나가는 이사회
현 본부장의 사퇴로 마무리될 것 같던 상황은 다시 뒤죽박죽이 됐다. 경기방송은 9월 25일 이사회를 개최해 이전에 약속했던 사안을 뒤집었다. 이사회는 현 본부장을 전무이사로 임명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전권을 현 본부장에게 위임했다. 이사회는 이사 및 주주들 명의의 결정문을 통해 “이번 사건은 경영권에 대한 도전을 넘어 ‘회사 침탈 행위'”라며 “(노광준 제작팀장과 윤종화 보도2팀장의 증언에 대해서는) 한 직장 내에서 식구끼리 밥을 먹다 나눈 의견이나 대화를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밀고해서 회사의 뿌리를 뒤흔들 수 있는지 안타깝다 못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방의회에서 ‘예산삭감’이란 조치로 압박을 가하면서 민영방송, 주식회사의 인사권까지 관여하는 초유의 언론탄압이 벌어지고 있는데 조직원 모두가 숨죽여 있으면서 동료 상사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일이 벌어지느냐”고 덧붙였다.
△2019년 12월_경기방송 ‘조건부 재허가’…조건은 현 전무이사 경영 배제
방통위는 12월 30일 허가유효기간이 만료된 경기방송에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 방통위는 “심사 기준 점수(650점) 미달, 경영 투명성 및 편성의 독립성 제고 등을 위한 개선 계획의 미흡, 방송법 위반 상태 지속, 대표이사의 경영권 제한, 부적절한 이사회 운영,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문제, 허위 자료 제출, 편성의 독립성 문제, 협찬 수익 과다 등의 사유로 재허가 거부를 고려했으나 경기방송이 지역 라디오 사업자로서 20년 넘게 방송을 해온 점, 시청자들의 시청권 보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건부 재허가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허가 조건은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현 전무이사)’를 경영에서 배제할 것 △공개 채용 등 대표이사 선임 절차 마련할 것 △재허가 이후 3개월 내 특수관계자가 아닌 사람을 사내이사로 위촉할 것 △공모를 거쳐 사외이사‧감사 또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것 △새로 구성된 이사회는 3개월 이내 경영 개선 계획을 제출하고 방통위 승인을 받을 것 △이행계획을 매년 4월 말까지 방통위에 제출할 것 △지자체 협찬 및 행사를 매출액 대비 50% 이하로 낮출 것 등이다.
경기방송 노조는 방통위의 재허가 조건을 이유로 현 전무이사의 사퇴, 경영 독립성 제고, 편성 독립성 강화 등의 이행을 요구했다. 노조는 1월 2일 성명을 통해 “재허가 심의 과정에서 경영진은 그 동안 문제없다고 자신해왔지만 ‘재허가 취소’라는 경기방송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며 “대표이사조차도 해법을 묻는 질문에 ‘전무이사에게 물으라’며 스스로 대표이사임을 포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방통위의 재허가 조건을 충실히 이행해 경기방송이 도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언론, 방송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결단을 바란다”고 촉구했다.
△2020년 1월_현 전무이사, 신사업추진단장으로 발령…눈 가리고 아웅
경기방송은 방통위가 경영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한 현 전무이사를 신사업추진단 단장으로 인사 발령했다.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를 경영에서 배제하고 이를 통보 받는 즉시 이행하라는 방통위의 지적에 따른 조치라는 것이다. 이에 노조는 1월 3일 “‘눈 가리고 아웅’식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회사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며 “신사업추진단의 해외 사업과 자회사 업무는 경기방송 보도, 제작 업무와 절대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1월_현 전무이사 사임
경기방송 이사회는 1월 14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현 전무이사가 제출한 사임계를 수리했다. 앞서 경기방송은 1월 3일자 날짜로 노조에 보낸 공문에서 ‘전무이사 사임에 따라 직제 폐지 및 경영 배제’, ‘신사업추진단 폐지’, ‘편성심의위원회 신설해 편성 독립성 강화’ 등의 내용을 알렸다. 현 전무이사를 신사업추진단장으로 발령낸 것을 철회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이사회와 경영진의 용기 있는 결정을 존중하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회사 정상화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경기방송의 노사 갈등은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2020년 2월_보도 및 제작에 편성까지 맡기는 막가파식 인사전횡
현 전무이사는 사임했지만 경기방송에서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경영진은 현 전 전무이사의 최측근인 안자영 보고/제작 국장에게 편성까지 맡겼다. 노조는 2월 12일 성명을 통해 “정상화 방안의 하나로 보도/제작/편성/경영의 분리를 지켜달라는 요구에 이런 인사를 내렸다”며 “독재 권력인 현 전 전무이사가 사퇴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새로운 권력자를 탄생시킨 셈”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노조가 보도/제작 부장의 채용과정에 대한 인사검증을 요구하자 사무국장 이하 노조원 3명의 출입처를 사전 상의도 없이 변경하는 등 사실상 노조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방통위에 “이 같은 인사발령이 조건부 재허가 사항 이행에 부합하느냐”고 물었다. 이후 사측은 다시 노조 사무국장을 포함한 보도국 기자들에 대한 인사발령을 내렸고, 노조가 반발하면서 노사 갈등은 극에 치달았다.
△2020년 2월_경기방송 자진 폐업 결정
노사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서 경기방송 이사회는 2월 20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지상파방송허가를 반납하고 폐업하기로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경기방송 이사회가 통과시킨 결의안은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경기방송 주주들에게 통보된 상태고, 3월 16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이 안이 통과되면 22년 동안 경기도 유일의 지상파 민영방송사였던 경기방송은 폐업하게 된다. 경기방송은 자진 폐업 이유로 노사 갈등에 따른 급격한 매출 감소, 방통위의 경영 간섭 등을 들었다.
이후 김예령 기자의 사직과 SNS를 통한 주장, 방통위의 반박, 경기방송의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1년의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면 경기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의 소유.경영의 분리, 보도 및 편성의 독립 등이다. 노사 갈등 및 방통위의 조건부 재허가도 다 그 문제에서 비롯됐다. 경기방송의 조건부 재허가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경기방송은 지난 2010년과 2013년, 2016년의 재허가 과정에서도 반복 부과된 조건들을 개선하지 않았다. 또한 2019년 재허가 과정에선 기준 점수에도 미달했다. 조건부 재허가는 경기방송에만 부과된 것이 아니다. 종합편성채널 및 OBS 등에도 조건부 재허가가 부과됐다. 경영 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있으니 조건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당장 방통위도 경기방송의 폐업 소식에 당황한 모습이다. 방통위원들은 “시청권과 고용 문제를 고려해 조건부 재승인을 결정했는데 잉크도 마르기 전에 폐업을 결정할 수 있느냐”, “조건부 재허가에도 자진 폐업 결정을 한 것은 방송 사업자로서 기본 자세가 아니다”, “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등의 쓴소리를 쏟아냈다. 경기방송의 자진 폐업은 3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경기방송과 방통위, 노조가 각각 이를 두고 어떤 결론을 내고 대책들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