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자기 혁신, ‘남 탓’과 ‘패배주의’를 넘어서

[칼럼] 공영방송의 자기 혁신, ‘남 탓’과 ‘패배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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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종원 전 KBS춘천방송총국장, 정책학 박사] 공영방송 혁신은 하나의 해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복잡성을 가진다. 외부적으로는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정치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이어야 하고, 재원 조달이 안정적이어야 하며, 우리 사회가 공영방송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 수신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수적이다. 내부적으로는 공영방송이 국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회복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의 전통적 방송 중심 서비스에서 탈피해, 인터넷과 모바일을 아우르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공서비스미디어(Public Service Media, PSM)’로 진화해야 한다. 공영방송 혁신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복합적인 해법을 다양하게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배구조가 중립화되어도 내부 혁신이 부족하거나 재원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혹은 공영방송 발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면 좋은 공영방송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지난 칼럼이 좋은 공영방송 제도는 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제도 및 정책 관점의 고민이었다면, 이번 칼럼은 공영방송의 자기 혁신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국민의 신뢰 회복이 우선되어야
최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6’에 의하면, KBS는 국내 뉴스 브랜드 신뢰도 부문에서 MBC, JTBC, SBS, YTN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TV·라디오 등 오프라인 매체의 뉴스 도달률은 MBC에 이어 2위를 기록했으나, 온라인 뉴스 도달률은 네이버(56%), MBC(27%), YTN에 이어 23%로 4위에 머물렀다. 이러한 지표는 수신료를 재원으로 삼는 공영방송에 매우 뼈아픈 수치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영국의 BBC는 TV·라디오 등 오프라인 매체의 뉴스 신뢰도에서 48%를 기록해, 2위를 차지한 ITV(24%)를 압도적으로 앞섰다. 온라인 뉴스 도달률에서도 BBC는 45%로 2위인 가디언 온라인 뉴스(15%)를 크게 따돌렸다. 독일의 경우도 공영방송사 ARD 뉴스가 38%로 1위, ZDF 뉴스가 31%로 2위를 차지했으며, 온라인 뉴스에서도 ARD 뉴스가 1위를 지켰다(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2026).

공영방송은 수신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민영방송과 유료 미디어보다 신뢰도 지표가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박민 사장 시절인 2025년의 같은 조사에서는 KBS 신뢰도가 6위까지 하락한 적도 있다. 물론 공영방송은 그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발전하기 때문에, 100년의 역사를 가진 BBC나 독일 공영방송사를 KBS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뉴스 브랜드 신뢰도와 온라인 뉴스 도달률의 국제 비교를 통해 KBS의 혁신과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다. 공영방송의 설립 목적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 실현에 있으며, 특히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다. 정부(정권, 정당, 정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최우선 과제다. 신뢰를 잃고 정파성을 대변하는 공영방송은 설 자리가 없다. 공영방송은 국영방송과 상업방송보다 독립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함에도(강형철, 2009), 현재 KBS의 신뢰도 지표들은 공영방송의 우월한 위상을 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정영주, 2024).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리포트는 각국 공영방송의 신뢰도 지수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로 유용하다. 프랑스 텔레비지옹(34%), 오스트리아 ORF(65%), 스위스 RTS 뉴스(63%), 일본 NHK(45%) 등 수신료가 높은 나라들의 뉴스 신뢰도는 월등한 1위 또는 최소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공영방송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방송이어야 한다. 따라서 KBS의 최우선 과제는 저널리즘 영역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편성규약과 단체협약은 공정방송을 위한 국민과의 약속
KBS 뉴스가 신뢰를 잃은 주된 이유는 노사 간의 갈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박민 사장에 이어 박장범 사장 체제에 이르기까지 KBS 노사는 단체협상을 체결하지 못하고 장기간의 무단협 상태를 이어오다가 최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장기간 파행을 겪은 원인 중 핵심은 이전 양승동·김의철 사장 체제에서 확대되어 온 편성규약 상의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를 현 경영진이 수용하는가에 있었다. 현 경영진은 과거 노사 합의로 도입되었던 주요 국장 임명동의제를 전면 거부해 왔다. 그 과정에서 내란을 비판한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고, 탄핵정국과 내란심판 과정에서도 KBS 보도는 타사와 비교해서 대단히 소극적인 보도에 그쳤다(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그 결과 과거 편성규약과 단체협약의 가치를 존중했던 시절 KBS의 높은 신뢰도가, 편성규약을 부정하는 지금의 낮은 신뢰도와 선명하게 대비되며 제도의 실효성과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공영방송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주도해 온 지배구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제작자의 노력과 경영진의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장 임명동의제와 편성규약 등이 지닌 합의 정신은 현업자의 방송 자유를 보장하고 KBS가 공정한 방송을 하겠다는 경영진의 결단이자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제작자의 방송 자유를 보장하고 경영진과 제작자가 규약을 조화롭게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신뢰 확보의 핵심이다.

공정한 방송을 위한 사회적 합의 및 선언과 같은 국장 임명동의제, 편성규약, 단체협약의 가치를 부정해 온 경영진은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방송편성과 보도를 둘러싼 경영진의 일방통행식 경영은 국민의 눈에 공공성을 실현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정치 후견주의를 고착화하고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로 비칠 뿐이다. KBS 내부에서조차 현업 제작자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공정성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KBS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노사 간의 신뢰가 먼저 쌓이고, 방송 책임자와 제작자 사이에 상호 존중이 확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사의 신뢰는 방송 책임자와 방송 제작자로서 상호 존중을 통해 헌법과 방송법이 부여한 「편성규약제도」를 조화롭게 운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존중이야말로 KBS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초석이 된다.

사측은 노동조합이 제기한 종사자 대표 선출 및 편성위원회 구성의 적법성에 관한 가처분 신청과 법원의 판단을 핑계로 편성위원회 개최를 거부하거나 연기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KBS 편성위원회 파행과 이사 추천 지연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민주언론시민연합). 이러한 측면에서 기존 단체협약을 부정하고, 개정 방송법에 명시된 이사 추천 절차를 위한 편성위원회 개최를 외면하는 경영진의 노사관은 KBS의 브랜드 가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 특히 경영진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노사 갈등을 조장하고, 방송법과 노동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편성규약 개정과 단체협약 체결을 지연해 온 행위는 단기적인 임기 연장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공영방송의 근본적인 신뢰 회복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처: 연합뉴스

국민과 사회에 기여하는 방송
공영방송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수많은 미디어 환경 속에서 왜 공영방송이 존재해야 하며, 왜 공영방송에 수신료를 지원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뉴스의 신뢰 회복에 이어 공영방송의 콘텐츠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방송이어야 한다. BBC 창립자 존 리스(John Reith)는 정보제공, 교육, 오락이라는 공영방송의 세 가지 핵심 가치를 제시했다. 최근 유럽방송연맹(EBU)이 제안한 PSM의 사회적 기여(Contribution to Society) 모델은 공영방송의 유용성을 민주주의·문화·사회의 세 축으로 구조화하며, 특히 사회통합적 기능을 강조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은 진보-보수 대립을 넘어 세대, 지역,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알고리즘에 의한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은 이념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미디어가 범람하고 개인화되는 환경에서 가짜뉴스로 인해 공론장이 훼손되거나,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개인의 미디어 시청 시 확증 편향이 증가하는 시기일수록 공영미디어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영방송은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가짜뉴스의 사실관계를 검증(팩트체크)하고,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의 통합적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사회통합적 기능은 단순히 ‘재미있고 유익한 방송’을 넘어, 갈등을 조정하고 상호이해를 촉진함으로써 민주적 공동체 기반을 구축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있다.

이처럼 다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핵심 존재 가치는 개인화되고 양극화된 사회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의제 설정(Agenda-setting) 역할이다. 국민의 삶에 기여하고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의제를 만드는 것이 공영방송의 참된 사회적 역할이다. 민주주의의 발전, 평등, 인권, 평화 등 헌법적 가치 추구는 물론 지역 분권, 인구 소멸, 경제적 불평등, 기후 위기, 재난 대응 등 변화된 환경에 맞춘 보편적 가치와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의제 설정 기능의 획기적 강화를 통해, 존재감 없는 공영방송에서 사회의 중심 미디어(Core Media)로 도약해야 한다(제임스 큐란, 2002).

정체성 확립과 자기 혁신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프로그램의 신뢰도와 경쟁력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내부의 창의성이 사라지고 국민을 위한 공적 프로그램 제작 기능도 상실해가고 있다. 그동안 KBS는 연이은 낙하산 사장에 의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미디어 기업으로서도, 공적 기관으로서도 존재감을 잃어왔다. 공적 책임감을 최우선으로 두기보다 정파적 이해, 사적 이해, 직종의 이해를 앞세우면서 조직 내부의 갈등이 심화됐다.

현재 KBS 내부는 노조가 정파적으로 나뉘었고, 정치적 후견주의에 기대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권과 정파적인 이해를 같이 하거나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정치적 후견주의는 오히려 강화되었고, 노동조합은 4개로 쪼개져 내부 노선 투쟁에 몰두하면서 공영방송이 지향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공영방송은 정파를 넘어 모든 국민에게 헌신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우선 공영방송 스스로 정치와의 거리 두기를 통해 정치 후견주의를 종식하도록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공영방송 거버넌스에 영향을 주는 주체는 정치, 시장, 시민사회(공공), 그리고 공영방송 자신이다(데니스 맥퀘일, 2003). 따라서 공영방송 스스로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정신과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척하고 정치와 거리 두기를 통해 직업적 전문직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직주의는 높은 수준의 업무 전문성은 물론, 국민에게 헌신하는 기관으로서의 사명감을 포함한다. 특히 이는 직종 이기주의에 갇힌 폐쇄적 권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책무를 다하는 전문직주의여야 한다. 전문직주의의 핵심은 불편부당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자 하는 공영방송의 마음가짐과 품질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정신에 있다.

전문직주의가 중요한 이유는 공영방송 내부 조직이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국가, 시장, 시민사회와 조응해 가면서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공영미디어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정치와 거리 두기를 기본으로 삼고 정파적 시각을 엄격히 배제하여, 사회와 공익에 봉사하는 정신과 높은 수준의 책임 의식을 갖는 직업적 전문직주의 문화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이와 함께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서비스미디어(PSM) 체제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공공서비스미디어는 공영방송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회통합적 기능을 구현하면서 양방향 참여를 증진하는 역할은 물론, 기술 중립적으로 모든 플랫폼에 진출해야 함을 뜻한다. 미디어 학자 하바드 모에(Håvard Moe)가 제안한 바와 같이 전통적인 방송(전파)에만 국한되지 않고 개인화된 테마 서비스와 온라인 서비스를 다각도로 제공해야 한다. 고령층·장애인·저소득층 등 디지털 소외 계층이 공영방송의 온라인 서비스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디지털 환경에서의 보편적 접근권(Universal Access)을 확실히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기존 방송 중심의 조직을 공공서비스미디어 중심의 조직으로 과감히 재편해야 한다.

이러한 공공서비스미디어(PSM) 체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공익에 헌신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전통적인 직종 장벽을 허물고 디지털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과 인사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이념과 정치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시민과 공익에 봉사하는 문화를 의미하며, 민주적 공론장 역할과 신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정치적·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토대가 된다.

재원 구조 혁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가 공표한 ‘2025 회계연도 방송 사업자 재산상황’에 따르면, 지상파 광고 매출은 2024년 8,414억 원보다 17%(1,418억 원) 감소한 6,996억 원이다. 지상파는 영업손실 1,174억 원으로 2023년 이후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미디어오늘, 2026). KBS는 총수입이 1조 2천 445억 원이고, 총비용 1조 3천 263억 원으로 818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KBS 경영평가보고서, 2026).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을 개정한 2023년 이후 수신료 수입은 감소했다.

제공: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KBS 광고 수입 역시 2021년 2,705억 원에서 2025년 1,375억 원으로 약 50% 감소했다. 점유율도 22.4%에서 20.0%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지상파 광고 시장은 1조 2,071억 원에서 6,875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제공: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공영방송의 재원 문제는 45년간 수신료 금액 동결, 지상파 광고 시장의 축소, 인터넷 미디어의 광고 흡수 등 구조적인 측면이 크다. 동시에 제도적·정책적 문제이면서, 미디어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지상파 공영방송 자체의 경쟁력 문제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KBS의 최근 5년간 당기순손실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24년 735억 원에서 2025년에 818억 원에 이르렀다(KBS 경영평가보고서, 2026). 문제는 이러한 만성 적자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공: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최근 JTBC는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 빚 206억 원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지상파 방송 광고 시장은 2012년 4개 종합편성채널의 허가로 인해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 간의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한 바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 등 좋은 콘텐츠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JTBC마저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된 것은, 현재 지상파와 종편 채널 등 콘텐츠를 생산하는 올드 미디어들이 직면한 거대한 딜레마를 보여준다(신삼수, 2026). 좋은 콘텐츠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도 그것이 곧바로 충분한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올드 미디어의 광고 재원이 종편 채널을 넘어 네이버,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온라인 미디어로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원 구조가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하며, 동시에 주어진 여건 속에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혁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KBS는 뉴스, 시사, 드라마, 교양, 오락 프로그램을 TV·라디오 및 인터넷 매체를 통해 수행하며 다각적인 공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재원의 한계에 봉착한 지금, KBS는 필수적인 공적 기능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공영방송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기능과 민간이 대체할 수 있는 기능, 그리고 내부에서 꼭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공적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내부 혁신을 기반으로 필수 공공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공영방송의 가치를 증명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공적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동반될 수 있다. 정치 종속형 지배구조에서 정치 중립적 지배구조로의 전환을 계기로, 좋은 공영방송 제도와 지속 가능한 재원 구조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내부의 비전 제시, 갈등 극복으로부터
앞서 지배구조, 신뢰도, 재원 문제, 내부 혁신 등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공영방송의 문제 진단이 있었다. 지속 가능한 공영방송을 위해 자기 혁신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제 이 복합적인 문제들은 공영방송 자체의 혁신만으로는 제도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가 어떠한 좋은 공영방송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는 정치권, 시민사회, 그리고 공영방송 구성원 모두의 공동 노력이 맞물릴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 혁신을 위해 KBS는 개인의 이익, 직종의 이익, 그리고 조직 이기주의를 넘어 국민의 공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구성원들이 공영방송의 비전을 확실히 정립하고 내부 갈등과 노사 갈등을 극복해 내는 통합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로 얽혀 있는 노사 갈등, 노노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을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갈등과 주장들은 소모적인 정쟁이 아니라, 국민의 공적 역할을 대행하는 기관으로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상호 경쟁하고 협력하는 생산적인 장이 되어야 한다.

소모적인 이념 갈등과 정치 후견주의를 과감히 걷어내고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 ‘남 탓’ 하는 냉소주의, ‘우리는 안 된다’는 패배주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명확한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 KBS가 향후 어떠한 공적 역할에 집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체성도 명확히 확립되어야 한다. 좋은 공영방송 제도는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다소 고전적이지만 공공성의 기본(Back to the Basic)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