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계기로 방송 사업자 간 인수합병에 대한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언론학회가 12월 4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통신 플랫폼 간 융합과 방송 시장의 변화’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 발제를 맡은 황근 선문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방송 사업 인수합병 승인 절차는 다분히 형식적인 합법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너무나도 부실하다”며 “앞으로 플랫폼 사업자들 간 인수합병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후진적 법‧제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의 말대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법적 절차나 경제논리로 접근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송법에 규정된 대로 법 절차에 따라 인수합병 변경 허가 및 승인(방송법 제15조), 최다액출자자 변경 승인(제15조의 2),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에 따라 합병 변경 허가(제11조),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공익성 심사(제10조, 3개월 이내 처리)와 최대 주주 변경 인가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의견 조회(60일 이내 처리)를 거쳐 승인받으면 된다.
하지만 관련 업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인수합병 후 야기될 수 있는 시장지배력 전이, 방송 사업의 공익성 및 다양성 침해 가능성 등을 놓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황 교수는 “유료방송의 저가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 최근 성행하고 있는 결합판매인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은 결합판매를 더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발제자로 나선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정책연구실장 역시 “모바일 중심의 결합상품이 확대되고 유료방송 상품을 경품화하는 현상이 심화될 경우 유료방송 시장 전체의 황폐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방송 사업자 인수합병 승인 절차에 별도의 공익성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통신 사업자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정성적인 ‘공익성 심사’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정치‧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공익성이 유난스럽게 강조되고 있는 방송 사업자의 인수합병에는 그런 형식적 절차조차 없다”며 “인수합병으로 인한 시장의 구조 변화와 이용자의 선택,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 다양성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대다수는 공익성 심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준희 중앙대 박사는 “앞으로 IP 사업자 중심으로 미디어 산업이 재편될 것인데 저는 망을 가진 사업자가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공익성 심사 제안에 찬성의 뜻을 밝혔으며, 최영재 한림대 교수는 “큰 틀에서 공익성 심사를 재‧허가에 반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KT와 LG유플러스 관계자들이 결합상품과 이로 인한 유료방송 저가 구조의 심화에 대한 우려를 표해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으로부터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자폭하는 상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형일 LG유플러스 CR전략실 상무는 “결국 SK텔레콤은 미디어 번들을 강화해 통신 상품을 주력으로 방송 상품 끼워팔기를 시도할 것”이라며 SK텔레콤의 마케팅을 경계했고, 김희수 KT 경제경영연구소 부소장은 “기존 가입자를 가져가는 것이 어떻게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냐”며 “(결합상품을 통해) SK텔레콤이 기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 정책위원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결합상품과 유료방송 시장의 저가 구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시장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재 우리나라 방송 환경의 문제점”이라며 “IPTV가 도입될 당시부터 통신 자본이 방송 자본을 흡수할 것이란 우려는 제기되고 논의됐지만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승인을 통해) 규모를 확대해주는 순간 방송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없을 것이고 이 같은 독과점 상태가 고착화되면 결국 이용자들의 요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