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달 온 나라가 시끄럽기 짝이 없다. 좌우의 이념대립이야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고 요새 특별히 부각된 문제도 아니지만 현 상황은 단순한 이념 대립을 넘어 ‘너죽고 나사는’수준의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소위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 그리고 그 둘 사이의 해묵은 갈등은 전 세계에 걸쳐 몇백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시대에 따라 약간씩 그 기준도, 갈등양상도 달라지기는 했지만 사상적 배경이나 사회적 계층, 민족 같은 다양한 원인에 따라서 분파되고 변형된 좌우 이념은 현대에까지 여러가지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러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변화–라고 쓰고 변질이라고 읽는다–되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념 그 자체보다 이념의 탈을 쓴 상호간 증오만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네가 그르네 내가 옳네 하면서 싸우는 지금의 상황, 과연 이런 이념들 중 어느 한 이념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모든 객체가 그렇듯이 이념에도 장단점(Trade-Off)이 존재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세상에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는 이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점만 있는 이념이라면 혼자 오롯이 살아남았을 것이며 단점만 있는 이념이라면 결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좌빨’이라 불리는 좌파, ‘수구’라 불리는 우파 모두 원래 일장 일단을 가지고 있는 이념이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거나 그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념대립은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북대립이라는 기묘한 환경 아래 정치인과 썩은 언론에 의해 상호간 왜곡된 프레임 아래 좌파는 친북과 연결되고 우파는 친일파와 연결되어 싸잡아 비판받는 이러한 구조에서 일찍이 서구 사회에서 좌우 이념을 수백년간 생존하게 만든 이념의 장점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상호간 토론과 통합, 상호인정은 온데간데 없이 ‘내편은 선, 남의편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과연 ‘좌파’는 친북인가? ‘우파’는 수구이며 친일파 후손인가?
좌파가 전부 친북이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마치 우파가 전부 친일파 후손이며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추한 집단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하다. 좌파는 사회 시스템에 있어 사회적 계층과 약자에 대한 보호, 공정한 분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의 이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어느 하늘아래 김정일 정권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정신나간 사람이 있단 말인가. 모든 일은 상식 선에서 생각해야 일이 풀리게 되어 있는 법이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좌파를 친북–있다는 걸 믿을 수도 없거니와 있어봤자 얼마 되지도 않을– 과 싸잡아버리는 것은 보수가 아닌 ‘수구 꼴통’의 문법이자 프레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민족과 국가 안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수 전체를 ‘수구 꼴통’이자 ‘가스통’, ‘김구선생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는‘이란 프레임으로 싸잡아 비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은 사상에 관계 없이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썩어빠진 정치인들과 왜곡된 프레임을 생산해내는 언론 때문이다.
사상이 아니라 사람이, 소통이 중요하다.
인터넷에 한때 ‘좀비’라는 말이 대유행한적이 있다. ‘수구 꼴통’세력이 작년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보고 ‘촛불좀비’라고 불렀던게 시작이며 이후 소통을 거부하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보고도 꿈쩍하지 않는 한나라당 지지층을 보고 ‘30%좀비’라고 맞받아치면서 자기 의견에 동조하면 정상적인 인간이고 아니면 뇌없는 좀비취급을 하는 웃기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늘아래 절대선은 없다고 이야기했듯이 누군가에게 절대로 옳은 일이 누군가에겐 절대로 틀릴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어떤 사상 그 자체보다는 그 사상을 남과 공유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소통의 방법은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네 생각도 일리가 있다. 같이 이야기해보자’이어야 하지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 나를 반대한다면 너는 친북좌파/수구꼴통이며 무뇌아 좀비이다’이어서는 안된다.
사회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현 이명박 정부에게 정말 하고싶은 이야기이다.
현 감사원장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좌파는 철없고 우파는 추하다.
소유 계층은(저소득층을) 보듬는 중도 저파(低派)가 돼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물론이요 모든 분들이 이 말을 곱씹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권태훈 KBS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