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KOBA 2026 Daily News』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박창홍 EBS 융합기술본부 본부장] 올해로 34회를 맞이한 KOBA 2026 전시회의 개최를 EBS 협회원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KOBA는 지난 수십 년간 방송·미디어 산업의 기술적 진보와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장이었으며, 기술의 변곡점마다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온 상징적인 자리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유사한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단연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AI 에이전트’로의 진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AI 산업의 흐름은 분명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더 뛰어난 성능의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경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모델을 어떻게 활용하여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가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AI의 무게중심이 ‘모델’에서 ‘에이전트’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PC 시대의 응용소프트웨어가 스마트폰 시대의 애플리케이션(App)으로 전환된 흐름과 유사합니다. 이제 AI 시대에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산업의 기본 단위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기술인의 역할에도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AI 에이전트로 발전하면서, 단순한 코딩이나 구현 능력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대신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를 설계하며, 사용자 경험을 기획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인문학적 통찰과 미학적 감각까지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과 감각을 더욱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과 AI 에이전트의 결합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방송기술인의 현장 업무 지식과 바이브 코딩을 접목하면 많은 혁신이 가능할 것입니다. 현업 담당자가 직접 AI를 활용해 업무를 자동화하고,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는 ‘현업 주도형 자동화’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AI 전환의 주체가 IT 부서에 국한되지 않고, 조직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거대언어모델(LLM)의 기술력은 점차 상향 평준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특정 모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구조는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성능 격차는 줄어드는 반면 비용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AI 모델 사용 비용은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방송사를 포함한 공공기관과 기업 입장에서는 AI 도입의 경제적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ChatGPT, Gemini, Claude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이 모든 IT 서비스를 흡수할 것이라는 초기의 전망이 과도하게 단순화된 해석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산업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보안과 기업 데이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각 기업은 자체 서비스에 LLM을 내장하는 형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는 플랫폼 종속이 아닌, 자사 데이터와 서비스 중심의 AI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시각은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의 발언입니다. 그는 “AI는 더 이상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기존 IT 서비스는 사용자가 증가해도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지 않는 구조였지만, AI는 다릅니다. 대규모 연산을 위한 전력, GPU, 데이터센터 유지 비용이 함께 증가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 중심의 기존 IT 산업과 달리, AI 산업은 물리적 비용 구조를 동반하는 ‘제조형 산업’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향후 방송사의 IT 운영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반면, 비용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도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AI 분야의 권위자인 앤드류 응은 기존 IT 개발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프로젝트 매니저 1명당 8명의 개발자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AI 에이전트와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특정 조건에서는 1:1 비율까지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IT 개발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신호이며, 조직 내부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AI와 IT 환경은 비용 증가와 비용 절감이라는 상반된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입니다.
이제 방송기술인의 역할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첫째, AI 에이전트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업무 파트너’로 활용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둘째, 기술 구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문제 정의와 서비스 기획 중심의 사고로 전환해야 합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기술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데이터와 보안을 기반으로 한 자사 맞춤형 AI 활용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넷째, 제작, 편집, 송출, IT 서비스 과정에서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는 과감히 자동화하고, 인간은 창의성과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방송은 기술과 콘텐츠,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 결합된 종합 산업입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기술은 평준화되지만, 창의성과 기획력은 결코 평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KOBA 2026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확인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회가 방송기술인 모두에게 새로운 통찰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고, 기술과 창의성을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KOBA 2026의 개최를 축하드리며, 이 자리가 방송·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여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