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을 천명하자 방송 현업인 및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엄청난 후폭풍이 일고 있다.
3월 11일 미래창조과학부는 논란이 되던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디지털 TV를 가진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는 별도의 작업이 없어도 고화질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으며 아날로그 TV를 가진 아날로그 가입자는 DtoA 컨버터를 설치하면 고화질 방송을 이용할 수 있다. 이번에 미래부가 발표한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 방침’은 ‘전격’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빠르고 기민했다.
▲ 지난해 10월, 시민사회단체와 방송인총연합회가 공동으로 보편적 미디어 구현과 8VSB 허용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는 지난해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8VSB 상용화를 공식적으로 천명했지만 이해 당사자의 반발이 상당했음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늦어도 1월 말이나 2월 초에 8VSB 기술기준 개정 고시를 발표하고 이후 입법예고기간 및 케이블 MSO의 상품구성과 약관승인, 시설 변경허가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도 이와 결을 함께한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정부의 편향된 방송정책에 반대했던 시민사회단체와 방송인총연합회의 반발도 주효했다.
하지만 반쪽짜리 디지털 전환이라는 오명과 특정 사업자에 대한 특혜논란은 8VSB 허용이 추진된다고 해도 여전히 심각한 결격사유로 남을 전망이다. 여기에 케이블 MMS 현실화와 지상파 MMS가 상충되는 문제는 지상파 방송의 형해화라는 점에서 잡음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DtoA 컨버터 비용을 아우르는 막대한 초기 사업비도 변수로 부각된다. 미래부가 컨버터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아날로그 TV를 보유한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먼 훗날의 일이지만 지상파 재송신 문제와 관련된 CPS 논쟁도 뇌관으로 꼽힌다.
이에 한국방송협회는 성명을 내고 “미래부의 이번 결정은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정책적 일관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등 특정사업자들에 대해 특혜를 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회는 “업계 관계자들은 ‘케이블 8VSB 허용’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종합편성채널’이라고 하나 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이 조치 하나로 종편 채널들이 전국 850만 가구에 이르는 아날로그 가입자들에게 단번에 지상파와 동등한 화질로 제공될 수 있는 막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협회는 “8VSB 허용은 양방향 서비스조차 불가능한 변칙 디지털 전환으로 유료방송의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을 후퇴시킬 뿐 아니라, 저가 유료방송 시장을 고착화시켜 미디어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파괴시키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변칙 디지털 전환이 가입자는 지키면서 지상파 재송신료 지불은 회피하기 위한 케이블 측의 꼼수”라고 단언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논평을 내고 미래부의 결정을 반박했다. 언론연대는 “종편이 요구해온 8VSB 전송방식 변경이 시청자복지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따져보면 종편만을 위한 특혜임이 분명해진다”고 전제하며 “채널 수 제한으로 인한 중소 PP 고사 위기, 아날로그 수상기 보유자들의 시청권 박탈, 유료방송 플랫폼의 미래 방송 서비스를 불가능케 하는 주파수 낭비 등에 대해서는 각각 나름의 보완장치와 컨버터 무상 지급, 문제없다고 밝혔지만 시청자 복지의 핵심인 다양성과 양질의 콘텐츠 제작기반을 붕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뻔히 보이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방송현업인으로 구성된 방송인총연합회도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연합회는 “8VSB 허용은 ‘고화질’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종합편성채널에 주어진 또 하나의 특혜”라며 “미래부는 종편 재승인 심사 졸속을 통한 생명연장을 시도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더불어, 종편에게 기어이 8VSB 허용이라는 선물까지 바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합회는 “케이블 MSO는 8VSB 허용이 디지털 전환의 일환이라는 ‘거짓말’로 일관하며 종편과 더불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투자비용을 아끼기 위해 ‘고화질만 가능한’ 미디어 서비스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연합회는 보편적 미디어 정책인 지상파 UHD 실험방송이 말 그대로 ‘실험’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시청자의 고화질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절름발이 디지털 전환, 종편 및 케이블 TV 특혜, 유료방송 시장의 저가화 등을 야기하는 8VSB 허용을 추진하면서 왜 무료 보편의 지상파 UHD 상용화에는 미온적인가”라고 되물었다.
▲ 지난해 10월, 시민사회단체와 방송인총연합회가 공동으로 보편적 미디어 구현과 8VSB 허용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물론 미래부는 3월 11일 발표를 통해 8VSB 허용을 천명하며 이용자의 시청권 보호와 PP의 인위적 퇴출 방지를 위해 현재의 아날로그 케이블 상품의 상품별 채널수와 요금을 그대로 8VSB 상품에 대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8VSB 상품 전환 지역의 기존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 시청자들에게 전환 동의를 받은 이후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물론 컨버터 교체 비용은 전적으로 케이블 MSO의 몫이다. 다만 해당 비용은 통신비 인하 정책에 따른 책임이 이용자에게 전가된다는 우려처럼, 가입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유료방송, 특히 케이블 MSO는 지난해 10월부터 100%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2015년까지 지역 가입자의 디지털 전환을 독려하는 한편 2017년에는 모든 가입자의 디지털 전환을 완료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10%에 해당되는 단체 계약자에게 8VSB를 임시방편으로 허용하여 목표를 이루겠다는 복안이다. 즉, 케이블 MSO는 8VSB가 디지털 전환으로 가는 과도기며, 불분명하지만 디지털 전환의 일종으로 해석한 격이다.
앞으로 8VSB 허용이 케이블 MSO와 미래부의 바람대로 추진될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미래부는 20일간의 행정예고를 거쳐 8VSB 허용을 골자로 하는 유선방송국 설비 등에 관한 기술기준 개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변경허가, 준공검사, 약관 신고 및 요금 승인 등의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