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최기창 EBS 방송기술인협회 회장]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당시의 경제는 물론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증기기관과 방적기의 출현은 숙련공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임금의 삭감과 해고의 위험에 분노해 기술과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대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항해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례로 교과서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10년 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바둑 기사와의 대국에서 승리하자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게 될 거라 두려움을 표했고 어떤 이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혁명에 버금간다며 기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AI가 산업, 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시키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침윤지참(侵潤之讒) 같은 변화에 ‘러다이트 운동’을 생각해 볼 기회조차 놓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A와 B의 힘이 평형을 이룰 때 본인이 처한 입장을 고려해 A나 혹은 B가 옳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힘의 균형이 깨져 한쪽으로 에너지가 이동하게 되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됩니다. 다수의 의견에 동조함으로써 개인의 위험성을 낮추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회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개별주체들이 군중에 속하게 되면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집단정신’이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군중의 일원이 되면 논리적인 사고 대신 감정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집단성이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유실은 결코 간과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20세기 초 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과 산업화의 폐해 속에서 다수의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의 주체성을 찾으려는 실존주의가 태동한 것도 이러한 이유와 맞닿아있습니다.
알파고가 등장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고 최적의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구글, OpenAI, 마이크로소프트, 앤스로픽 등과 같은 기업들이 피지컬 AI, 소버린 AI, AX, AI 인텔리전트, 바이브코딩 등과 같은 여러 갈래의 AI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제 AI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생활의 동반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AI를 통해 궁금한 걸 물어보고 자료를 정리하며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때때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상황에 맞게 수정하거나 새롭게 재코딩하기도 합니다. AI를 사용함으로서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고 여유시간을 자기 계발에 이용하거나 취미활동에 할애하기도 합니다. AI는 이제 당연함이 되었고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우매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부지불식(不知不識) AI의 집단에 속한 개체가 되었습니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이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측면도 있기 마련입니다. AI의 편리함에 취해 사고하는 힘을 잃어버린다면 ‘집단정신’ 속에 매몰된 개인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실존주의를 다시 소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AI의 바다 속에서 개개인의 색깔과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타인을 대할 때 능력치로 평가해 버리고 알고리즘의 일부로 인식할 우려도 존재합니다. AI가 제공하는 거대한 정보인프라 속에서 우리가 기준을 잡고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사고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감성과 지성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AI 의 데이터에 종속되지 않고 인간이 진실을 파악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독서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마이클 샌델 또한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고 윤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피력했습니다.
AI는 혁명과도 같은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혁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명한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햄릿의 대사로 끝을 맺고자 합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To Control, or not to do, that is ques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