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 방송계 이슈

[신년특집] 용의 해 방송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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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 MBC‧KBS‧YTN 방송 3사 공동 파업(2012.01.30.)

출처: 전국언론노동조합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김재철이 MBC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MBC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나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뉴스 후’ 등 정부를 비판한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보복성 인사’를 자행했으며, 김미화, 윤도현 등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방송에서 하차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2011년 한미 FTA 반대 시위 현장에서 MBC 기자들이 시위자들에게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2012년 1월 25일 MBC 소속 기자들은 MBC의 불공정‧편파 보도를 비판하면서 방송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30일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보도국 책임자 전원의 퇴진을 촉구하며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어 3월 6일 KBS, 8일 YTN도 공정 보도 보장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동참하면서 방송 3사 공동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시작한 공정 방송을 위한 언론인들의 정부 언론 장악에 대한 투쟁은 MBC 170일간, KBS 95일간, YTN 55일간 이어졌다.

◇ 지상파 아날로그 TV 방송 완전 종료(2012.12.31.)

지상파 아날로그 TV 방송은 2010년부터 지역에 따라 순차적으로 종료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을 마지막으로 2012년 12월 31일 오전 4시에 완전히 종료했다. 이는 1956년 지상파방송을 시작한 이래 56년 만의 변화다.

원래 계획은 일괄 종료였으나 지상파방송 디지털 전환 당시 정부 지원 신청 문제 및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의 공시청 장비 교체 작업 시공 등의 문제로 전국에서 일제히 민원을 청구할 가능성을 고려해 지역별 순차 종료를 시행했다.

디지털 전환 준비 단계에서는 전송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적지 않았다. 화질이 뛰어난 미국식(ATSC) 전송 방식과 채널 수 확보에 유리한 유럽식(DVB) 전송 방식을 두고 방송계, TV 제조사,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온 것이다. 결국 1997년 미국식 전송 방식으로 결정하면서 갈등을 마무리했다.

또한, 지상파의 열악한 주파수도 문제가 됐다.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상파에 배정한 470~698㎒(채널 14-51) 대역은 228㎒에 불과했다. 미국 300㎒, 유럽 256㎒, 일본 240㎒와 단순 비교만으로도 적은 데다가 유럽의 DVB 전송 방식이나 일본의 ISDB 전송 방식이 우리나라가 채택한 ATSC 전송 방식보다 주파수 효율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턱없이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초 지상파는 ATSC 전송 방식을 택하면서 다채널 방송(MMS) 등의 도입을 고려했으나 주파수 대역 부족과 정부의 승인 문제 등으로 지상파 방송사가 구상했던 디지털 방송의 새로운 서비스 개발이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디지털 전환 이후 지상파의 직접 수신율이 현저하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케이블 등 유료방송의 위축을 우려해 유료방송에 가입하면 디지털 기기를 보유한 것으로 간주해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유료 방송사에서는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방송을 시청할 수 없는 것처럼 공격적인 자막 홍보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디지털 수상기를 보유하지 않은 시청자 상당수도 유료방송으로 넘어갔고, 2000년대 초반 90% 이상을 상회하던 지상파 직접 수신율은 디지털 전환 이후 10분의 1 수준인 10% 미만으로 하락했다.

◆ 2000년
◇ ‘통합방송법’ 제정(2000.01.12.)

출처: KBS 뉴스 화면 캡처

‘한국방송공사법’, ‘종합유선방송법’, ‘중계유선방송관리법’ 등 기존 방송 관련 법률을 통폐합해 흔히 ‘통합방송법’으로 부르는 새로운 방송법을 2000년 1월 12일 제정하고 3월 13일부터 시행했다.

통합방송법 제정으로 당시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등으로 분산돼 있던 방송 정책 담당 기구를 새롭게 출범한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로 통합했으며, 위성 방송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기존 방송법에는 없던 시청자 권익 보호 조항을 명시하는 등 시정차에 관한 규정이 양적‧질적으로 늘었으며, 외주 제작 방송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 국내 제작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 방송 광고의 편성 비율, 방송 프로그램의 유형별 편성 기준 등을 포함하는 편성 쿼터제를 도입했다.

◇ MBC, 국내 최초 HDTV 드라마 방송(2000.01.14.)

당시 방송 시작 전 고지 내용

MBC는 2000년 1월 14일 국내 최초의 HDTV 드라마 ‘베스트극장-사랑한다고 말해봤니’를 방송했다. 일본 소니가 내높은 HDTV용 카메라 HDCAM의 성능 시험을 겸해 제작한 이 드라마는 당시 여타의 방송 프로그램보다 20배 이상의 고화질로, HDTV용 수상기가 보편적으로 보급되지 않아 일반 시청자는 그 차이를 100% 느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기존 방송보다 4배 이상 선명한 화질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HDTV용 수상기 보급이 미흡한 점을 감안해 삼성전자의 협조로 공항, 주요 역 등 공공장소에 HDTV용 수상기를 임시로 설치하고 실제 화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KDB, 위성 방송 사업자 선정(2000.12.19.)

출처: KBS 뉴스 화면 캡처

당시 방송위원회는 2000년 12월 19일 무궁화 3호 위성을 이용해 위성방송을 제공할 위성방송 사업자로 KDB(한국디지털위성방송)을 선정했다. 1989년 통신‧방송위성사업 종합 추진 계획을 확정한 이래 약 10년 만의 결과였다.

KDB는 한국통신과 지상파 3사가 주도한 컨소시엄으로, 1,000점 만점에 754.60점을 획득해 727.14점을 얻은 KSB(한국위성방송)을 27.46점 차이로 따돌렸다. KDB는 선정 결과가 알려진 후 △시청자 중심의 국민 방송 구현 △방송의 공적 책임 실천 △국내 영상 산업의 획기적 진흥 △멀티미디어 시대 선도로 국가 경제 활성화 등의 계획을 책임 있게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업권을 획득한 KDB는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1년 디지털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를 탄생시켰다.

◇ 디지털 시험 방송 시작(2000.08.31.)

출처: KBS 뉴스 화면 캡처

2000년 8월 31일 SBS를 시작으로 9월 3일 KBS, MBC 등 지상파방송 3사는 디지털 시험 방송을 시작했다. 이는 2001년 디지털 본방송을 앞두고 시행한 것으로, 2012년 디지털 완전 전환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각 방송사는 매월 약 120분~900분씩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을 전송했다.

◇ 한국교육방송공사 출범(2000.06.22.)

한국교육방송공사 설립 현판식
출처: EBSstory 네이버 블로그

10년간 교육부 산하에 있던 EBS가 정부출연기관에서 벗어나 2000년 6월 22일 설립등기를 마치고 독립법인으로 정식 출범했다. 2000년 1월 12일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이 제정되면서 기존 ‘한국교육방송원’이 ‘한국교육방송공사’가 된 것이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KBS가 방송한 ‘라디오 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EBS는 2000년에 조직 정체성을 확립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 1988년
◇ ‘월간 방송과기술’ 창간(1988.07.)

‘월간 방송과기술’이 1988년 7월 ‘방송기술인’이라는 제호로 창간했다. 창간호에는 안덕상 당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의 창간사와 방송기술인연합회의 창립 경과, 조직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각 회원사의 동정과 국내외 방송기술 동향 등을 담았다.

이후 1992년 5월 ‘월간 방송과기술’이라는 현재의 제호로 변경했으며, 2024년 1월 337호까지 발행한 국내 유일의 권위 있는 방송기술 전문지로 자리하고 있다.

◇ 방송문화진흥회 설립(1988.12.31.)

삼화그룹 창업주이자 제2~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지태가 소유하고 있던 MBC는 김지태가 5.16 군사정변 직후 당시 중앙정보부에 글려가면서 소유권을 사실상 강탈당하며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로 넘어갔다. 이후 신군부 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5.16장학회가 소유한 지분 30%를 제외하고 민간 기업이 나눠가지고 있던 지분 70%가 강매로 KBS에 넘어가면서 MBC는 국가가 운영하는 방식이 됐다.

이후 6월 민주화 운동으로 방송계에도 민주화 물결이 일면서 MBC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는 1988년 8월 우리나라 방송 역사상 첫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12월 14일 국회 문교공보위원회 MBC 주식처분소위원회에서 방송문화진흥회법안을 확정하고 26일 법을 제정했으며, 이 법에 근거해 한국방송공사가 가진 주식 전량을 양도받아 31일 비영리공익법인 방송문화진흥회를 설립했다. 정부 또는 외부의 간섭없이 MBC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 1976년
◇ KBS방송종합청사 준공(1976.12.01.)

출처: 국가기록원

1974년 초부터 시작한 공사가 2년 6개월만에 끝나면서 KBS방송종합청사가 1976년 12월 1일 준공식을 가졌다. KBS 남산 청사가 비좁아지면서 고민하던 중에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연희송신소 부지와 현재의 여의도 청사 부지를 교환했다. 처음에는 20층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 했지만, 국회의사당이 들어서면서 높이 제한으로 지상 6층 건물이 됐다.

준공 당시 KBS방송종합청사는 7개의 TV 스튜디오와 19개의 라디오 스튜디오, 자동화 시스템 등을 갖추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설을 갖췄으며, 현재의 본관만이 존재했다. 이후 TBC 사옥이 KBS 별관이, 국회 의원회관이 연구동이 되고, 신관을 신축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규모로 확장했다.

◆ 1964년
◇ 동양방송(TBC) 개국(1964.05.09.)

출처: 국가기록원

TBC의 전신인 라디오서울방송주식회사(RSB)가 1964년 5월 9일 우리나라 다섯 번째 라디오 방송국을 개국하고 5월 9일 정오부터 출력 10㎾, 호출부호 HLKC, 주파수 1,380㎑로 하루 20시간의 정규 방송을 개시했다.

같은 해 12월 7일에는 동양텔레비전(DTV)이라는 이름으로 서울국이 호출부호 HLCZ, 채널 7로 개국한 데 이어 5일 후인 부산국이 호출부호 HLKZ, 채널 9로 개국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본격적인 TV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후 독립해 있던 라디오방송과 TV 방송을 주식회사중앙방송(JSB)로 통합했으며, 1966년 사명을 주식회사동양방송(TBC)로 변경했다.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던 시절, TBC는 개국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녹화기를 도입해 국내 첫 녹화 드라마를 제작했다. 다만, 당시 녹화기는 편집이 불가능한 기종으로,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찍으며 사실상 생방송처럼 제작했다.

이외에도 TBC는 국내 전자 기술 수준으로는 상당한 기술력을 발휘했다. 개국 당시 방송 경험이 있는 KBS에서 인력을 스카우트했으며, 방송 장비 일부는 수입을 하고, 일부는 방송기술진이 국내에서 조립‧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