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들도 ‘제 2의 모피아’다

[칼럼] 이제 그들도 ‘제 2의 모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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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세미나실에서 민주통합당 언론대책위원회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바람직한 방송통신 정부 조직의 개편방안’이라는 이름의 이 토론회는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추진 중인 정부 조직 개편안 중 미디어와 관련된 부분, 즉 공룡 부처로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과 그에 따른 방송통신위원회의 축소를 두고 핵심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발제자로 참여한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한창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패널들 사이에서 차기 정부 인수위가 시스템의 문제를 이유로 방통위의 권한 축소와 미래창조과학부의 거대 신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였음을 지적하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조 소장은 인수위 업무 보고 당시 방통위가 통신 관련 업무 및 유료 방송, 기술 표준 및 콘텐츠 진흥 업무 등 관련 사업 일체를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에 이관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피력한 사실’을 두고 ‘참 나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실 이 대목은 정말 희귀한 대목이다. 굳이 2007년에 등장한 ‘관료는 영혼이 없다’라는 유행어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원체 공무원들이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공무원, 즉 관료의 성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특유의 조직 문화를 봐도 지금까지 관료들은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그 영역을 굳건히 하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방통위가 깬 것이다. 방통위는 정말 뿌듯하게도 대의를 위해, 그리고 국민과 차기 정부의 미래 정신에 힘을 보태기 위해 대승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조직이 관장하던 기능 중 상당부분을 미래창조과학부에 선뜻 양보했다. 통큰 결단이다. 훌륭한 상황판단이다. 물론 이렇게 믿는 사람은 없지만.

원래 방통위는 1월 중순 1차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 당시에만 해도 다른 관료 조직처럼 외연 확대를 노렸다. 정권 초기에는 뭐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ICT 발전을 위해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하는 ICT 대연합이 사실상 통신 재벌의 손에서 탄생한 직후부터 방통위는 이들 ‘대연합’을 애증의 눈으로 바라보며 내심 큰 꿈을 꾸었던 것이다. 물론 방송-통신의 이원화를 통해 인수위가 추구하는 철학에 일정정도 진정성을 보이는 척하며, 방통위 스스로가 ICT 전담 부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조직의 외연성을 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류가 내외부에서 노골적으로 읽혔다.

그러나 1차 정부 조직 개편안 결과가 발표되자 방통위는 침울해졌다. 그리고 각종 언론도 이 같은 방통위의 침울함을 보도하며 그들의 좌절을 간단하게나마 알렸다. 본지도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도 방통위 신년하례식에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되는 바람에 기분좋은 새해의 시작을 알리려는 방통위 관료들은 의기소침해진 어깨를 추스릴 수 없었다고.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방통위의 인수위 업무보고도 코앞이었다. 동시에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진 방통위가 어떤 업무보고를 할 것인가를 두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관료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들은 조직의 축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방통위가 업무보고에서 이러한 부분을 강하게 어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방통위는 당시 업무보고에서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많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거듭 피력한 것이다.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 파격은 정의로운 파격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는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방통위 관료들은 합의적 성격의 현재 방통위보다는 옛 정통부와 같은 독임제 부처를 그리워했으며, 이제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공룡 독임제 부처에 자신들의 영화로웠던 옛 날을 재현하려고 한다고. 절대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 노하우에 자신들을 희생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쯤되면 인수위의 1차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 당시 정말 방통위 관료들이 우울해 했는지도 의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앞날이 걱정된다. 공룡 부처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5년 후 결과를 점쟁이처럼 예측할 수 없기에 이 부처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른다고 쳐도, 최소한 이러한 관료들이 달려들어 구성하는 독임제 부처에 방송정책을 담아둔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인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미국의 FCC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방송은 정부의 직접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하고 합의적 위원회에서 그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대한민국이 현재의 미디어 역사에 발견한 긍정적인 진화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구성원을 보자. 가뜩이나 합의제의 이름을 내세운 방통위 내부에서도 규제로서의 부처 기능에 목을 매던 그들이 자신들의 ‘판타지’인 ‘독임부처제 미래창조과학부’에 협조하는 사실은 그 동기부터 탁하고 오염되어 있다. 역시 시스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문제였다.

물론 미래창조과학부의 등장이 방송정책의 발전에 좋은 약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확률적으로 50:50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진흥-규제를 구분하고 인문학적인 방송의 가치를 산업발전의 영역에서 무작정 연료로 쓰려고 한다면 이는 재앙일 뿐이다. 그리고 그 복선은 미래창조과학부를 원하는 방통위의 관료들, 그들의 웃는 얼굴이다.

옛 재정경제부의 관료들을 모피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제 옛 정보통신부의 관료들도 제2의 모피아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안타깝지만 그들은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