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재송신 논란, 억지를 걷어내야

[칼럼] 의무재송신 논란, 억지를 걷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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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지상파 재송신 중단과 합리적인 CPS 책정 논란에 이어, 이제는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에 대한 격렬한 대립이 표면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눈치만 보고 있던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르면 9월 안으로 제도 개선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시의적절하게도 학계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현재의 논의는 의무재송신 확대를 기정사실화하는 한편, 그 범위를 공영방송으로 하느냐, 아니면 민영방송까지 포함시키느냐를 골자로 하는 다분히 정치 역학적 냄새가 풀풀 나는 레토릭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에 갇혀 이미 의무재송신 확대를 기정사실화하는 측의 주장은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이들의 <디지털 전환을 맞아 방송의 무료 보편적 기능이 더욱 확대되기 위해서는 의무재송신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맞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무재송신 확대가 필요하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무료 보편의 수단=의무재송신 확대’이라는 고정관념이 진하게 베어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고정관념일 뿐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지상파 방송의 무료 보편성 구현은 단순히 의무재송신을 물리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이룰 수 없다. 그 보다는 현재 유료 매체의 사업적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방통위가 보류중인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의 조속한 현실화야말로 정답이다. 다양한 채널의 다양한 보급을 ‘무료’로 해낼 수 있는 다채널 서비스야말로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준다. 또 700MHz 대역 방송용 필수 주파수의 조속한 확보야말로 난시청 해소 및 뉴미디어 발전의 근간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즉 의무재송신 확대는 지상파 방송사의 재원 확보에 악영향을 미치고 유료 매체의 사업적 이득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당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무재송신 확대로 무료 보편의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은 70, 80년대 RO를 통한 난시청 해소를 추구하던 구시대적인 발상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는 측의 주장 중 하나인 <지상파 사업자들이 이미 재송신에 대한 국가적 보상을 받고 있다>는 논리도 어불성설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공영방송의 경우 수신료를 받고 있으며 민영방송의 경우 전파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에서 기인하는데, 우선 수신료만해도 나날이 발전하는 방송 기술에 따른 제작비용을 대비했을 때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물론 이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민영 방송사의 무료 전파 이용설은 방송통신발전기금 및 기타 방송사들의 공적 책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12일 관련 세미나에서 정인숙 가천대학교 교수가 주장한 <유료방송 가입자들은 시청료를 이중으로 지불하고 있다>는 논리도 자가당착에 빠진 전형적인 ‘잘못된’ 이론이다. 정 교수는 유료방송 가입자들이 공영방송에 CPS와 수신료를 모두 납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시청자들의 방송 수신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방법은 유료방송 뿐인 상황에서 의무재송신 범주 확대는 수용자의 편익 증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명백히 그릇된 상황판단이다. 유료매체는 자신들의 사업적 이득을 위해 가입자를 유치하고 직접수신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런 상황에서 CPS와 수신료가 가입자들에게 이중으로 납부된다는 논리는 힘을 잃는다. 이는 유료매체의 시스템이고 이를 택한 시청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수신가구는 CPS를 지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으며 시청자들의 방송 수신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방법이 유료방송 뿐이라는 상황파악은 오히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와 직접수신률 제고에 박차를 가하는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명확한 상황정리는 공영방송만을 기준으로 볼 때 ‘직접수신가구에는 수신료 부가, 유료매체에는 CPS를 부가’로 정리할 수 있으며 유료매체는 ‘자사의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CPS를 내고 지상파 콘텐츠 구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유료매체가 자신들의 CPS 부담을 온전히 가입자에게 돌리는 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된다. 즉 CPS는 유료매체 가입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 외 직접수신가구는 수신료만 부담하고 있으며 디지털 방송 전환을 맞이한 지상파 방송사의 난시청 해소 노력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면 자연스럽게 CPS라는 개념도 사라지는데 현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타개할 주장으로 자신들이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CPS를 들고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현재 의무재송신 확대 문제는 이미 확대를 ‘하느냐, 마느냐’에서 벗어나 그 범위가 ‘공영이냐, 민영이냐’를 두고 격론이 오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 이전에 다시한번 의무재송신 확대의 당위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료 보편의 공공 서비스가 제대로 안착되려면 시대착오적인 의무재송신 확대보다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와 700MHz 대역 주파수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전국 디지털 전환을 통한 직접수신률 제고야말로 ‘미디어 공공성’의 최후 보루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간단한 길을 무시하고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 한다.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의 음흉함은 본고에서 계속 강조하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 승인에 이르러 더욱 증폭된다. 특히 유료매체의 경우 더욱 노골적이다.

 

   
▲ 2000년대 초반, 의무재송신 축소를 주장하던 케이블 협회의 집회

이들은 10년 전 ‘의무재송신 확대는 지상파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할 소지가 있다’며 결사반대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CPS 현안이 불거지자 태도를 바꾸어 직접수신 시설을 훼손하며 가입자 유치에 혈안이 되었던 자신들의 모습을 숨긴체, 별 관심도 없던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구현하자’며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들 유료매체의 이론을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로 가져와보자.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가 처음 선 보였을 때 유료매체들은 ‘지상파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해줄 것이다’며 반발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닌가?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가 무료 보편의 방송 서비스를 구현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이 거세지기에 반대한다는 이 논리는 의무재송신을 대하는 10년 전 유료매체의 자세와 많이 닮아있다. 즉 결론은 하나다. 유료매체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 공공의 서비스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사업적 이득만 노리는 일반기업답게, 이들은 공공의 영역인 방송을 통해 장사를 더 많이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지상파 재송신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고를 터트리고 그 책임을 방송사에 넘기는 교묘한 문구를 화면에 새길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혹시 모를 일이다. 만약 10년이 흐르면 또 다른 이유로 유료매체들이 이렇게 주장할 지..“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는 무료 보편의 서비스를 추구하기 때문에 얼른 도입해야 한다”고. 꽤 현실성 있는 이야기다.

핵심을 읽고 행간을 파악해야 한다. 전국 디지털 전환을 맞이한 지금의 상황에서 물리적인 의무재송신 확대는 무료 보편의 서비스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지상파 방송사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자신의 콘텐츠를 영리를 추구하려는 자에게 제공할 때 합당한 금액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무료보편의 서비스답게 공영 방송의 경우에는 직접수신가구에게는 수신료만 받는 것이다. 정말 진실된 마음으로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를 구축하려 한다면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의 실현과 직접수신률 제고, 그리고 구속 중인 최시중 씨의 방통위 시절 마지막 작품, 700MHz 대역 주파수의 통신사 분할 할당을 전면 무효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의무재송신 확대는 아무런 공적 이익이 없는 ‘사적 이익’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