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미디어기획부 이상술 차장
방송역사상 지금만큼 지상파방송사에게 중요한 시기가 또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흑백에서 칼라방송으로 전환되던 시절의 격변기 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는 지금의 시점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상파방송사와 케이블SO간의 재송신 갈등, 디지털화에 따른 방통융합 환경, 국경을 무너뜨린 뉴미디어 플랫폼 전쟁…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 올드미디어인 지상파방송이 디지털 전환과 함께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태평성대에서 춘추전국시대로
지상파는 아날로그 방송시절,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지상파의 난시청 환경을 배경으로 케이블이 동반 성장했지만 막강한 콘텐츠력을 가진 지상파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다만, 시대적·정치적 이슈만이 방송시장의 화두였다. 그 평화의 구도를 무너뜨린 것은 디지털이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수많은 디지털기기가 등장함으로서, 사용자들의 시간을 빼앗아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인터넷 포털이 광고를 기반으로 상장가도를 달리면서, 니치마켓을 비롯한 다양한 광고시장이 잠식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위성방송이 등장하고, 디지털케이블TV, IPTV 등의 등장으로 국내 방송 플랫폼 시장에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게 된다. 플랫폼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콘텐츠 측면에서 살펴봐도, 정부의 외주제작 활성화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시장의 시장산업화는 가속도를 얻게 된다. 그간 지상파방송사가 누리던 독점적 시장의 틀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통신영역의 단말기들이 속속 미디어 플랫폼 단말기로 진화하면서,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방송통신융합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고 하지만 필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전송방식이나 단말기의 융합이 진정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고 하는 것은 섣부른 정책적 과포장이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단지 이러한 혼돈의 시절을 촉발시킨 것은 디지털이라는 기술이 가져다 준 효율성과 그 이면에 숨은 사업자간의 생존경쟁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정리해줄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간 지상파방송사는 콘텐츠사업자와 플랫폼사업자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영위하고 있으면서 콘텐츠 경쟁력을 바탕으로 태평성대를 누려왔지만, 이제 그 어느 것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변화기류 속에 플랫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만 돌아보더라도, 지상파방송사는 아직 그 위기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을 위한 지상파방송 디지털 전환인가?
‘디지털’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나타내는 기술적 아이콘이다. 지상파방송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반으로 한 정책적 목적 선상에는 어떤 것들이 놓여 있는가?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을 홍보하는 광고를 살펴보면 “고화질의 영상과 고음질의 음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의 목적인가? 바꾸어 디지털수상기를 광고하는 가전사의 홍보내용은 어떠한가? 이상하게도 동일하다. 고화질이 생생한 영상을 현장에서 느끼듯,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의 목적과 가전사의 디지털수상기 판매 목적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목적 자체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면, 가전사는 디지털 수상기를 판매함으로서 이득을 취하지만, 지상파방송사는 디지털 방송을 함으로 인해 취하는 이득은 없고 오히려 비용만 상승한다. 지상파방송의 공익적, 공영적 정체성으로 모든 것을 포장하기에는 너무나 아마추어적이지 않은가? 즉, 지상파 방송사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 자체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한 지상파 디지털 전환인가?
현재 디지털지상파를 직접수신하고 있는 비율은 얼마인가? 아직 그 통계도 제대로 확보 되어 있지 않다. 단지 전체 가구 수 중에 유료방송 가입가구수를 제한 수치에 ‘지상파 직접 수신가구’라는 명칭을 부여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중에는 아날로그 가구가 대부분이며 대략 10% 내외로 추산된다. 이중 디지털 지상파 직접수신가구는 얼마나 될까? 디지털수상기를 살 정도의 여유라면, 대부분 유료방송에 가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감히 예상을 하지 못하겠다. 한마디로 지상파방송사는 자신의 고객이 얼마인지도 파악하고 있지 못한 셈이다.
지상파의 디지털방송 최대 수혜 사업자는 단연 케이블SO이다. 공중의 전파를 획득하여 가입자에게 재송신을 하며, 그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는 반면 디지털방송 패키지를 통해 기존의 아날로그 방송의 3배가 넘는 수신료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지상파가 디지털 전환을 위해 2조나 되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가령 시청자가 유료방송을 통해서라도 디지털 지상파방송을 볼 수만 있다면 문제없다고 볼 수 있는가? 시청자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고가의 유료방송 수신료를 지불하고 있는 마당에 KBS의 수신료 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으로 예측가능하다. 어찌 보면 유료방송보다 무책임한 지상파 방송을 원망할 듯싶다. 과연 지상파방송사가 디지털 전환을 위해 막대한 돈을 들인 것을 아는 시청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돈쓰고 욕먹기 좋은 일을 지상파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상파와 케이블의 재송신 소송
모든 창작물은 그 권리를 발생시킨다. 방송 또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서적인 문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작권하면 VOD를 떠올린다. 실시간 방송은 광고를 시청하기 때문에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지상파 방송은 광고를 제공하기 때문에 무료 보편적 서비스이다. 하지만, 그 대상은 직접수신을 하는 일반 시청자에 한정된다. 지상파 방송을 가져다 고가에 판매하고 있는 사업자에게 무료일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B2C에는 무료이지만, B2B에는 무료일 수 없는 것이다.
지상파는 2005년부터 줄기차게 케이블의 재송신 저작권 해결을 요구해 왔고, 2009년 소송에 이르렀다. 4년이란 긴 시간동안 지루한 협상의 시간을 거치며, 결국 양쪽의 견해차만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던 셈이고 법의 판단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되어 버린 꼴이다. 1년간의 소송 끝에 재판부는 케이블의 재송신이 수신보조행위에 해당되지 않으며, 지상파의 저작인접권인 동시중계방송권을 침해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 지상파는 케이블에게 재송신료를 받기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과연 돈을 목적으로 한 소송으로만 한정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상파라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플랫폼사업자로서 케이블 플랫폼사업자와의 경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동일 경쟁사업자에게 자신의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을 정당하게 행사하고, 그 대가를 더 나은 콘텐츠 제작과 플랫폼 경쟁력 확충에 사용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이를 두고 사업자간의 이전투구라고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경쟁은 이전투구일 것이다. IPTV와 위성방송이 지불하는 재송신 대가에 합당하게 재송신료를 요구하는 것은 유료방송사업자간의 공정경쟁 환경조성과 지상파 플랫폼과 유료방송 플랫폼간의 공정경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어느 식당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고 가정해 보자. 손님들에게 다양한 요리를 정성 드려 만들고 화려하게 테이블까지 셋팅했다. 많은 요리사와 종업원들이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음식을 먹기 위한 수저가 없다면 손님들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식당에 수저를 팔고 다니는 장사꾼이 있어서 손님들이 돈을 주고 수저를 비싸게 사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손님들이 그 식당이 무료식당으로 생각할 것인가? 식당주인이 그 수저장사를 방관하고 있다면, 손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방통위의 제도개선
지상파 재송신 관련 민사금지청구 판결 직후, 케이블은 지상파 방송의 광고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점진적으로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을 중지하기 이전에 지상파의 수익원인 광고를 빼고 재송신 하겠다는 것이다. 기왕 불법으로 판결난 상황에, 그 불법의 일부(광고중단)를 행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협박이다. 플랫폼의 지배력을 무기로 한, 독점 사업자의 횡포인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지상파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자괴감마저 든다. 그동안 지상파의 플랫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플랫폼이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방통위는 광고 중단, 재송신 중단을 통한 시청자의 불편을 방지하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과 더불어 재송신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한다. 사업자간의 분쟁이 발생하고 그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불편을 겪는 일은 분명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특정사업자의 일방적인 물리력 행사에 제도개선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규제기관으로서의 객관적인 자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위성방송과 IPTV가 지상파 재송신 계약을 체결할 때는 그 어떠한 중재나 개입이 없다가, 케이블의 위협에는 바로 제도개선이라는 대안을 꺼내 든 점에서부터, 제도개선의 정당성은 상실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제도개선을 통해 케이블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된다면, 앞으로 모든 방송사업자들은 실력행사를 통해 제도개선을 하려고 할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임을 방통위는 진정 모르고 있을까?
보편적 시청권과 콘텐츠 경쟁력의 혼동
방송법상 의무재송신의 대상을 KBS1과 EBS로 한정한 것은 방송의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해, 수신료로 운영되는 일부 채널을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재송신 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반면, 그 이외의 채널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방송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저작권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의무재송신 채널 이외의 재송신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주장하며, 재송신 유료화의 근거가 없다고까지 한다. 보통 법 규정에서 타 법에서 정한 규정을 예외로 적용할 시에만 그 사항을 적시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번 판결에서도 의무재송신의 대상이 아닌 채널의 권리를 저작권을 통해 인정해 주었으며, 그 권리의 침해를 제한할 근거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방통위의 제도개선의 핵심은 이러한 저작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의무재송신 대상의 확대에 있다. 그 확대의 이유는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방송법상의 명분이다. 보편적 시청권은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방송의 최소한의 기본권이며, 그 대상은 중요행사 등의 일부 프로그램에 한정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케이블의 주장은 지상파로 운영되는 모든 방송콘텐츠는 보편시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의무재송신 대상이 KBS 전 채널에서 KBS1로 축소하는데 일조했던 케이블이, 이제는 그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상파의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개념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보편성을 마치 방송법상의 보편적 시청권과 동일하게 적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시청권과 콘텐츠 경쟁력이 혼동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국민들이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 경쟁력을 가진 방송은 무조건 보편적 시청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이 나라의 모든 콘텐츠 산업은 붕괴하고 말 것이다. 아니, 자본주의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일일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직접수신환경
케이블 재송신 소송을 통해 재송신료를 받는 것과 더불어, 지상파의 플랫폼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디지털 전환의 완결인 직접수신환경 개선이다. 디지털 제작설비를 구축하고, 송신시설을 확충하여 전파 커버리지를 확대한다고 해서, 디지털 전환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시청자들이 무료로 지상파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완결지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디지털 전환정책은 지상파방송에 한정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지상파 수신환경 취약이라는 문제점 때문에 유료방송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완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코 공익적 정부정책의 해결방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전환의 시기에 목표달성을 위한 행정편의주의 적인 발상이라 아니 할 수 없지만, 이를 전면 비난할 수 없는 이유에는 지상파의 소극적인 수신환경 개선의지 부족이라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상파 무용론이 나올 것이며, 지상파 주파수를 회수하여 통신주파수로 활용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상파가 사라지고, 지금의 모든 방송사는 종합편성PP로 전락해서 대만과 같이 외국콘텐츠로 안방이 채워지는 극한 상황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방송협회의 지상파 직접수신환경 개선 실무자회의의 보고서에 따르면, 직접수신율을 40%로 올리기 위해서는 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간 디지털 전환에 투자한 비용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당장 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료보편적인 서비스라는 지상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돈이 결코 아까워할 만한 금액은 아닐 것이다. 직접수신환경 개선이라는 공익적 사업에, 정부 또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무료로 지상파방송을 볼 수 있게 하겠다고 지상파 방송사들이 팔을 걷어붙일 경우, 이를 두고 사업자만의 일이라 방관한다면, 정부는 스스로의 역할을 저버리는 일일 것이다.
결국, 직접수신환경 개선은 시청자들의 방송시청 선택권을 확보해주는 일이다. 다채널방송을 보고 싶은 시청자들은 유료방송에 가입하면 되고, 지상파 방송만으로 족하다는 사람들은 안테나를 통해 무료로 직접 수신할 수 있게 그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변혁은 전환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방송이라는 전환기에 지상파는 콘텐츠의 권리를 확보함과 동시에 그간 방관해 왔던 플랫폼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콘텐츠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재송신의 정상화이며, 플랫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은 직접수신율 상승에 있다. 이 두 가지는 급변하는 뉴미디어 환경에서 반드시 확보해야할 핵심사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상파방송이 자전거라면, 콘텐츠와 플랫폼은 두 바퀴와도 같다.
아직 우리에겐 2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