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MHz 주파수 글로벌 통신 활용? 진실은?

700MHz 주파수 글로벌 통신 활용?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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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700MHz 대역 주파수의 활용을 두고 방송과 통신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방송은 해당 주파수의 할당을 통해 난시청 해소 및 UHDTV 발전을 위시한 공적기능을 주장하고 있으며 통신은 증가하는 모바일 트래픽을 이유로 해당 주파수의 할당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태생이 유료방송 진흥을 목표로 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주파수의 공적활용보다는 민영화에 관심이 많다. 이에 미래부는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주도하며 유료방송 중심의 UHDTV 정책을 추진해 사실상 700MHz 대역 주파수의 지상파 활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한편, 미래부 산하 연구조직인 TTA(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를 통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상파 UHDTV 표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무제한 요금제와 더불어 모바일 IPTV를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통신사가 심각한 주파수 남용 사태의 원흉이라고 지적한다. 더불어 이러한 통신사에 공적활용으로 쓰여야 할 700MHz 대역 주파수가 넘어갈 경우, 철도와 의료와 같은 국가 기간 인프라의 민영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것에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 통신사들이 미국 통신사에 비해 적은 가입자를 가지면서도 막대한 주파수를 할당받았다는 비판도 가세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7일 한국방송학회와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한국디지털정책학회 공동으로 개최한 ‘UHDTV 활성화를 위한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방안 세미나’에서 이상운 남서울대학교 교수가 ‘700MHz 주파수 수요 및 현황’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아 전 세계의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을 자세히 분석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700MHz 대역 주파수의 글로벌 통신 활용설’을 정면으로 반박해 눈길을 끌었다.

의미 있는 발언이다. 주파수 민영화가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민영화를 원하는 이들이 “외국도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한 ‘허구’를 조목조목 파헤쳤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철도와 의료 민영화를 해야 한다. 외국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한 사람에게 “아니다. 외국은 무작정 철도와 의료 민영화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친 셈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700MHz 대역 주파수를 원하는 방송과 통신이 각각 공적, 사적 활용을 목표로 힘겨루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주파수의 사적 활용을 원하는 이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의 통신 활용은 글로벌 추세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이 교수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반박한 셈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시간을 돌려 2012년 2월로 가보자. 당시는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이 측근 및 자신의 비리로 인해 낙마한 직후였다. 하지만 후폭풍은 엄청났다. 최 전 위원장이 사퇴하기 일주일 전, 기습적으로 700MHz 대역 주파수 40MHz 폭 상하위 통신 분할할당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면, 최 전 위원장은 방송과 통신이 대립하던 700MHz 대역 주파수의 알짜배기를 통신에 후다닥 밀어주고 장렬히 산화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때, 구 방통위는 문제의 보도자료를 하나 배포했다. 바로 WRC(세계전파통신회의)-12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활용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였다. 즉, 권위있는 세계적 회의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의 글로벌 활용을 결정했으니, 이제 더 이상 700MHz 대역 주파수의 방송 활용으로 왈과왈부하지 말라는 내용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당시 WRC-12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은 정식의제가 아니었다. 구 방통위의 보도자료는 마치 WRC-12가 700MHz 대역 주파수의 글로벌 통신 활용을 정식으로 승인했다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이다. 물론 WRC-12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하자는 논의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일명 제 3세계, 즉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국가에서 제기한 일종의 ‘의견’이었으며 이러한 ‘의견’에 EBU(유럽방송연맹)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결국 해당 ‘의견’은 2015년에 열리는 WRC-15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가닥이 잡혔다.

정리하자면,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은 WRC-12의 공식의제가 아니며, 일부 국가에서 통신용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있긴 하지만 이는 지극히 원론적인 입장으로 다뤄졌다는 뜻이다. 즉 일부 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들이 부족한 유선망을 대체 할 수 있는 4세대 이동통신을 도입하기 위해 전파특성이 좋은 700MHz 대역 사용이 시급하다며 해당 주파수의 이동통신용 분배를 긴급 제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700MHz 대역 주파수를 지상파 디지털 방송으로 활용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반대했으며, 결국 관련 사안은 차기 회의가 열리는 2015년 WRC-15에서 다루기로 합의된 것이다.

아래는 WRC-12의 공식 보고서 원문과, 특기할만한 부분이다.

 

resolves 1 to allocate the frequency band 694-790 MHz in Region 1 to the mobile, except aeronautical mobile, service on a co-primary basis with other services to which this band is allocated on a primary basis and to identify it for IMT; 2 that the allocation in resolves1 is effective immediately after WRC‑15; 3 that use of the allocation in resolves1 is subject to agreement obtained under No. 9.21 with respect to the aeronautical radio navigation service in countries listed in No. 5.312; 4 that the lower edge of the allocation is subject to refinement at WRC‑15, taking into account the ITU-R studies referred to in invites ITU-R below and the needs of countriesin Region 1, in particular developing countries; 5 that WRC‑15 will specify the technical and regulatory conditions applicable to the mobile service allocation referred to in resolves 1, taking into account the ITU-R studies referred to in invites ITU-R below,

(region 1의 경우 boradcasting이 primary이며, mobile 할당은 co-primary 의 할당이며, 이 역시 2015년 WRC-15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5.313A The band, or portions of the band 698-790 MHz, in Bangladesh, China, Korea (Rep. of), India, Japan, New Zealand, Pakistan, Papua New Guinea, Philippines and Singapore are identified for use by these administrations wishing to implement 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s (IMT). This identification does not preclude the use of these bands by any application of the services to which they are allocated and does not establish priority in the Radio Regulations. In China, the use of IMT in this band will not start until 2015. (WRC‑12)

(위의 원문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이 주파수 대역을 통신용으로 사용하겠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되어 있음. 즉 구 방통위는 700MHz 대역 주파수가 전세계적으로 통신에 할당되는 것이 추세라고 주장하면서 뒤에서는 각 나라 정부에 해당 주파수를 통신용으로 사용하겠다고 설득하는 형국이다. 게다가 한 가지 주지해야 할 사실은 정부의 나홀로 ‘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 할당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다른 용도의 사용제한 금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방송용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구 방통위 김정삼 당시 전파기획관 주파수 정책과장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WRC-12가 700MHz 주파수의 글로벌 통신을 성급하게 정의 내린다는 문제의 보도자료에 대해 “해당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분배는 했다”는 전제로 “유럽은 방송용으로 쓰고 있어 확보를 못 할 수도 있고 ‘인접국가’간 간섭문제 등으로 2015년까지 연구를 하기로 한 것”이며 “분배한 것은 결의한 것이고 기술적 조건에 대해 추가 검토를 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또 대한민국 정부가 해당 주파수 대역을 통신용으로 사용하겠다는 주장을 한 부분은 “700MHz 대역을 이동통신용으로 분배 자체를 안 하면 논의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태지역 결의에 따라간 것”이라고 설명하며 “700MHz에 대한 이동통신용 사용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리하면, WRC-12에서 일부 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가 공식의제가 아닌 700MHz 대역 주파수의 통신 활용을 주장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이에 동조했지만, 방송 선진국인 유럽 EBU의 반대에 직면해 결국 해당 논의는 3년 후인 WRC-15에서 다뤄지게 되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구 방통위는 “700MHz 대역 주파수 글로벌 통신 활용”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한 셈이다.

하지만 진위야 어찌 되었든 그 여파는 상당했다. 당장 대부분의 언론은 구 방통위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가져와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어뷰징에 가까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량 오보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굳어진 구 방통위의 희한하고 교묘한 전략은 지금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해당 주파수 통신 활용의 모델인 미국에서 Apple의 아이폰 5s가 700MHz 대역 주파수 BC 12,13,14,17 중 BC 13과 17만 지원한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700MHz 대역 주파수 중 BC 12 중 A 블록의 군소 통신사가 집단 반발을 해 FCC가 전향적인 판단을 내려도 마찬가지다. 700MHz 대역 주파수의 글로벌 통신 활용은 이미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음에도 미래부와 통신사들은 이 논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업을 매개로 주가조작 사건을 일으켰던 C&K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C&K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회사의 가치를 부풀렸으며, 대한민국 외교부는 별도의 확인 없이 이를 외교적 성공으로 포장해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많은 언론은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이를 받아썼고, 결국 끔찍한 파국을 맞았다. 구 방통위의 잘못된 보도자료도 당시의 외교부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주파수 민영화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