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탑골공원에서도 만나요

[칼럼] 온라인 탑골공원에서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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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성환 EBS 정보보호단 단장] 시대성을 반영한 ‘새로운 미디어 융합 서비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방송 미디어는 110여 년 역사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선구적으로 해왔다. 시대 변화에 따라서 그때마다 ‘뉴미디어’라는 이름으로 각종 매체, 플랫폼이 등장하고 진화해 왔다. 위성방송, 케이블 방송, IPTV, 인터넷 방송 등도 한때는 뉴미디어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처럼 방송기술의 역사도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일을 현장에서 이끌어 온 사람이 바로 방송기술인이다. ‘편집기가 나오기 전에는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했었는데…’, ‘나 때는 말이야 2인치 녹화기를 기가 막히게 다뤘지’,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선배님들의 무용담에는 애정이 넘쳐난다. 선배들의 방송 DNA는 언제나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드는 지혜의 샘이다. 선배의 장인 정신에서 열정과 추억을 꺼내 다듬고, 신 미디어 기술을 입혀서 방송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후배의 역할이다.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온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미디어의 주연은 ‘방송장이’이다. 이제 그동안의 기술 중심에 문화를 입혀서 새로운 ‘인간 중심’ 방송으로 확장해야겠다.

기술의 가장 큰 시대 구분은 아날로그(Analog)와 디지털(Digital)이다. 2001년 디지털 HD 본방송 서비스가 시작되고 11년 후인 2012년 말에 아날로그라는 한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인터넷 기술은 어떤가?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확산으로 ‘닷컴 버블’ 시기를 보내고, 실질적으로 역사를 바꾼 것은 1998년 구글 탄생을 기준으로 한다. 그래서 BG(Before Google)와 AG(After Google)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아날로그 감성은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한 구글은 인터넷 서비스 혁명을 주도했고, 오늘날 모바일 시대에도 세계 제일의 IT 기업이 됐다. 디지털 기술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것 같던 기세였다. 하지만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살펴보니 결국 모든 일은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만나게 된다. 사람의 인간관계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9년에 일어난 현상을 참고해서 소셜미디어 시대, 지상파방송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자. 먼저 SBS의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을 통한 시도가 물꼬를 텄다. 1990년대~2000년대 음악 서비스의 동시 접속자·구독자 수가 증가하면서 20~40대들이 모여들었다. 이어서 ‘MBC 케이팝’ 채널의 연도별 히트곡 모음, KBS ‘스튜디오 K’ 채널을 통한 뮤직뱅크 등이 연속으로 릴레이를 이어갔다. MBC 대학가요제는 7년 만에 ‘2019 대학가요제’로 부활하기도 했다. 역시 음악은 세대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예술이었다. 음악 외에도 ‘순풍 산부인과’, ‘쟁반 노래방’, ‘유머 1번지’, ‘보고 또 보고’ 등 예능, 시트콤, 드라마,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이어졌다. 마침내 오프라인 탑골공원을 풍자해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복고풍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른바 추억이라는 의미의 레트로(Retro) 현상이다. 이를 통해서 40대는 과거를 추억하면서 즐거워하고, 10~20대는 이전 시대의 문화인 음악, 패션을 공감하게 됐다. 이는 여백과 감성이라는 아날로그의 장점이 유튜브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나서 세대를 뛰어넘는 문화 코드로 부활한 현상이다.

지금의 복고열풍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도 있지만, 복고열풍은 노후에 대한 불확실성, 현실에 대한 불안 등의 심리에서 일어난다는 분석이 있다. 방송 콘텐츠의 복고형 서비스로 이들의 불안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자. 지금은 국제적인 코로나19 사태로 프로야구, K리그 축구 중계 등 각종 스포츠 개막이 연기돼, 스포츠 팬들은 온라인으로 예전의 경기를 다시 보면서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바로 ‘스포츠 탑골공원’ 현상이다. 또한, 더불어 사는 이웃을 보며 시청자가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도록 아날로그 정서를 소셜 플랫폼에서 유행시키자.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작은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인 ‘백종원의 골목 식당’ 등이 융합 서비스의 훌륭한 재료가 될 것이다. 여기에 현대인들의 외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파고드는 프로그램도 믹스해 보자.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외로움을 달래주는 ‘나 혼자 산다’, ‘나는 자연인이다’ 그리고 이웃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인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등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 프로그램도 참고하자.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시대에 따라 각자 최고의 자리에서 그 위상을 뽐냈다. 따라서 현시대의 주류인 디지털을 아날로그와 떨어뜨려 생각하기보다는, 둘이 다리로 연결돼 만날 때 균형 잡힌 혁신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적 요소를 융합시킨 이른바 디지로그(Digilog)가 미디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다. 2020년에도 디지털 플랫폼에서 만나는 복고 프로그램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깨우며 고객에게 다가가자. 고립감으로 ‘코로나 블루’에 빠진 시청자를 어루만지는 서비스도 꽃피우자.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지상파 콘텐츠는 녹슬지 않고 빛나고 있고, 누구나 수시로 추억의 페이지를 열어볼 수 있다. 디지로그라는 결합에너지로 미디어 판을 바꾸는 새로운 서비스 물결을 지상파방송이 앞장서서 제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