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사나이의 조합이 필요해

[칼럼] 진짜와 가짜 사나이의 조합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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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성환 EBS 정보보호단 단장] 2020년 여름은 ‘가짜 사나이’ 열기로 뜨겁다. 20대 이상의 남자들 사이에서 핫한 영상이다. 최장기간 장마철에 무슨 열기냐고? 2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인 ‘피지컬갤러리’의 인기 동영상 이야기다. 에피소드 7개에 예고편과 스페셜 버전을 포함해 9편의 영상으로 누적 조회 수 4천만 뷰를 상회한다. ‘가짜 사나이’는 MBC에서 방영했던 ‘진짜 사나이’의 패러디 영상이다.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초까지 18부작으로 방송한 MBC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최고시청률 7.7%를 기록했었다. 우리가 가진 진짜 사나이의 추억은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로 시작하는 군가이다. 군대를 다녀왔다면 더 친근한 노래일 것이다. 군복을 입고 불러보면 악으로~ 깡으로~ 용기가 저절로 샘솟는 마력이 있다. 예비역들은 훈련소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사회의 때(?)를 벗고 진짜 사나이가 돼가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남자 셋이 만나면 빠지지 않는다는 군대 이야기의 추억을 2020년에는 ‘가짜 사나이’가 소환했다. 방송사 수준의 전문성과 제작비를 투입하지 않는 유튜브 채널에서 해낸 일이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사나이에 열광하는 청춘 이야기이다. 남자들 대부분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군대 관련 영상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대리 체험형 현실감에서 찾을 수 있다. 대가리 박아! 흙탕물에서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숨이 턱에 차오르고 토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정신력으로 버텨내면서 성취감을 얻는다. 온통 옛날 군대의 얼차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위기에서 살아남는 생존 훈련이다. 몸이 고통스러워야 정신도 맑아지고 생존 본능이 살아난다고 했던가? 훈련에서는 몸이 좀 힘들면 튀어나오는 무책임한 말, 남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함에 대한 인성 교육의 일침도 있다. 고통 속에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무사트(MUSAT) 마크를 달 때 누리는 기쁨은, 훈련병을 지나 이등병 계급장을 달던 즐거움 이상이다.

또, ‘가짜 사나이’ 영상은 강한 남자에 대한 욕망을 꺼내 승리욕을 부추긴다. 가짜가 판치는 사회에서 더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도 준다. 훈련 참가자는 이 사회에서 경험했던 돈이라는 권력, 출세라는 권력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훈련을 통해 현실에서도 강해지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포기하고 싶은 참가자, 인성이 부족한 참가자도 동료들은 보듬고 같이 가는 아량을 보여준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말부터 바꾸라고 교육한다. 군대 생활이 그랬던 것처럼 훈련을 마치고 교육생들은 달라진다. 각자 혼자라서 힘들어하던 마음도,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면 쉽게 털어낼 수 있다. 체력과 정신력을 강화해 더 나은 생각으로 살아가도록 안내한다. 그것이 제도권이건 민간이건 교육자의 역량에 따라서 그 가치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짜 사나이 콘텐츠는 방송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숏폼 콘텐츠가 인기이다. 숏폼 콘텐츠는 TV 방송용이 아닌 OTT 플랫폼과 SNS 채널 등에 유통하는 10분 내외의 짧은 콘텐츠를 의미한다. 하지만 가짜 사나이는 1인 미디어 형식을 넘어 약 30분 정도의 분량으로 방송 예능을 닮아있다. 유튜브 자동 광고를 붙이기에도 딱 좋은 길이이다.

콘텐츠 제작 역량도 이제 방송사 고유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영상, 광고 연계를 하면서도 1인 미디어의 형식은 방송 영역을 넘보고 있다. 가짜 사나이 영상 앞에서 방송사는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선 ‘가짜 사나이’의 인기는 기존 방송보다 강한 대리 체험,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1인 미디어의 장점을 백분 활용한 리얼리티 웹 예능이다. 웹 드라마가 방송 드라마의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내놓고 광고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물론 관련 법을 몰라서 광고 관련 제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차라리 ‘뒷광고’ 논란보다는 낫다.

다음은 코로나19 상황의 수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TV 시청도 OTT 구독도 늘어났다는 점은 인기 상승에 도움을 준다. 또한, ‘코로나 블루’로 괜히 심심하고 우울해하는 시청자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군대라는 남성의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복고) 콘텐츠의 요소까지 만났으니 인기 폭발의 분수령이 됐다. 그리고 다음 콘텐츠가 더 기대된다는 점에서 성공은 이어진다. 구독자들은 2기의 활동을 기다리고 있다. 진짜 북한군 출신 유튜버인 ‘북시탈 TV’ 운영자의 사례처럼 가짜 사나이 2기 지원자의 영상은 예고편처럼 기대감을 올린다. 또한, 교육대장 이근 대위를 선두로 특수부대 출신인 나쁜(?) 교관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새로운 셀럽 탄생이다. 해병대 기수처럼 가짜 사나이 기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디어 시장에서 인기 콘텐츠의 사이클은 매우 짧다. 시청자는 항상 더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사나이’와 ‘가짜 사나이’의 컬래버레이션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 스포츠 콘텐츠의 리얼리티와 시너지도 고려할 만하다. 이것은 B급 콘텐츠의 흥미와 인기 위에 A급 퀄리티를 더하는 것을 의미한다. OTT 콘텐츠를 고민하는 지상파 방송사라면, 플랫폼에 따라서 A급과 B급을 오가는 매력적인 기획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