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보고 말을 끌고 가란다

[이종화칼럼] 마차보고 말을 끌고 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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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컬럼>

마차보고 말을 끌고 가란다

– 급하다고 첫 단추를 잘못 꿴 IPTV –


   지난 2월 하순,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가 주최한 ‘IPTV산업진흥’세미나에서 IPTV 업계전문가들의 뒷북치는 주장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고 한다. 이른바 IPTV 활성화를 위해 ‘개방성’과 ‘표준화’를 통한 통합플랫폼이 필요하다며 목청들을 높인 모양이다. 그 이후 숨죽였던 IPTV 비관론과 함께 책임없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머지않아 네탓 내탓 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풀이하자면, 현재 3개 IPTV사업자가 서비스하고 있는 IPTV 표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셋톱박스가 서로 호환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 관련 규격과 애플리케이션 구현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라서 규모의 경제를 말하기도 어렵고 따라서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상용 서비스를 시작해버린 지금에 와서 뒤늦게 표준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음은 우리나라 IPTV 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IPTV 표준화 문제를 지적해왔지만(http://blog.kbs.co.kr/digital/2580), IPTV 정책이 사업자 선정과 사업자간 갈등 해소에 치중한 나머지, 과연 IPTV가 과연 어떤 문제가 있고 앞으로 어떤 서비스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WBC 야구 결승을 생각하면 일본 이야기를 당분간 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은 2006년 말 셋톱박스 등 수신단말 표준화에 이르기까지 IPTV 국내표준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일본의 IPTV 정책은 우리보다 분명히 한 수 위인 것 같다. 일본이란 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부 주도형 정책을 잘 펼치기도 하고 잘 먹히기도 하는 특성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IPTV 국내 표준화 정책에 일찍부터 관심갖고 이해가 상충하는 사업자들 스스로 군소리없이 시장의 파이를 키워가는데 합심토록 하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현실이 참 안타깝게 느껴진다.

 
 혹자는 IPTV망이 프리미엄망(폐쇄망)이기 때문에 개방화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지만, 콘텐츠와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제대로 유통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열린 생태계’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IPTV가 바보파이프로 전락할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결국 IPTV 활성화를 위한 개방형 플랫폼까지 등장하는 등, IPTV 사업이 총체적으로 앞뒤없이 진행되어 왔다는 비판을 듣게 되었다. 보랏빛 전망치와는 다르게 IPTV 가입자 증가세가 저조한데다 국제적인 경제 한파와 맞물려 비관론이 늘기 시작하면서 이런 비판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쯤해서 새로운 시각에서 이 문제를 언급해 본다.


  IPTV특별법이 전국 단일시장에서 세 사업자가 무한경쟁 할 수 밖에 없는 체제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표준화가 더욱 뒷전으로 밀리지 않았나 하는 분석을 해본다.


  만약 전국 시장을 적절히 분할하여 사업자를 선정했다면, 사업자들이 굳이 폐쇄적인 사업모델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셋톱박스 표준화를 비롯하여 Open API 기반의 각종 서비스나 관련 콘텐츠 시장이 개방형으로 활발하게 전개되는 등, 유리한 생태계가 조성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업자간에 합리적인 사업모델을 공유하면서 일정수준 규모의 경제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전국에 걸친 과도한 네트워크 투자 문제나 말많은 필수설비 공유 문제도 완화될 수 있으며, IPTV 사업자간의 무리한 경쟁으로 인한 시장질서 왜곡도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권역으로 나누어 각 권역에서 단일 사업자를 선정한다면 소비자 권익 문제가 지적될 수 있지만, 케이블TV 사업자가 이미 해당 권역에서 다채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소비자 권익은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부분의 문제는 IPTV 법제화 과정이 숨가쁘게 추진되면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잠복해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나마 IPTV 사업이 초기 시장형성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덮여진 채로 진행되었겠지만, 시장이 예측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전개되면서 속속 드러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제 와서 개방형 플랫폼을 추진하자면, 셋톱박스를 비롯하여 서비스 인프라 구축에 투자된 상당부분이 손실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방형 플랫폼의 논의구조가 사업자간의 새로운 갈등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결국 가입자 실적을 토대로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방통위가 이런 문제제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새로운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할 경우, 지상파방송사 입장에서는 DTV기반의 하이브리드 IPTV 서비스 플랫폼(Hybrid TV) 구축에 아이디어를 내고 적극 참여할 필요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그럴 경우, 현재 지상파방송사 및 가전사들이 참여하여 진행 중인 닷TV 표준도 결국 폐쇄형으로부터 개방형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서비스 및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할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