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어른거리는 파시즘의 그림자

[기자수첩] 대한민국에 어른거리는 파시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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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최근 한 달 남짓한 기간의 시차를 두고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과 북한의 노동당 창건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특히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은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승절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날로 공식 명칭은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이다.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등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전송절의 더 큰 목적은 파시즘의 부활을 경계한다는 데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 등은 모두 파시즘 국가였다. 파시즘(fascism)이란 원래 ‘묶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비롯된 것으로 권위주의, 국수주의, 극단적 반공주의적인 정치 이념이다. 파시스트들은 국가나 민족이 개인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인간 평등을 부정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나라나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며 그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막연한 선민의식과 근거 없는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파시스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근 정부‧여당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밑어붙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서도 파시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독일과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정제를 시행한 사례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다. 심지어 독일과 일본에서도 군국주의 정부 즉 파시즘 시절에만 국정제가 시행됐을 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검정제로 바뀌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정제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에 민감하지 않은 현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국정제를 밀어붙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KBS 사장 선임 과정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동안의 모든 행적이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지원을 하는가 하면 정부‧여당 측 KBS 이사들은 설령 내외부의 반발이 있더라도 극우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부적격 인사를 KBS 사장으로 선임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현 상황이 파시즘 국면과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극우적 방향으로 KBS를 재편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는 인사들을 굳이 이사나 사장으로 선임하는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파시즘의 결말이 어떠했는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 퇴행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부‧여당이 스스로 파시즘적 발상과 행태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역사가 기억하는 그들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