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상파방송의 중간 광고를 禁하는가?

[기고] 왜, 지상파방송의 중간 광고를 禁하는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광고시간 단가가 지상파방송 광고시간 단가를 추월했다는 소식이다. 방송광고시간을 거래하는 시장에서 광고주들이 지상파방송의 방송광고시간보다는 PP의 방송광고시간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을 이용한 광고에 대한 광고주들의 기대가 낮아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한 진단과 해법이 제시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광고 단가 추월 현상은 중간 광고의 허용 여부라는 변수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광고업계가 CJ E&M 계열의 PP 가운데 하나인 tvN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의 중간 광고 단가가 15초당 2천500만 원으로 현재 지상파 프로그램 가운데 기본 단가가 가장 높은 KBS 2TV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1천530만 원)보다 1천만 원가량 높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간 광고를 통해 지난해(2015년) 케이블과 종편이 11%, IPTV가 32% 가까이 광고매출을 늘렸다는 지상파방송 관계자의 언급을 통해서도 중간 광고라는 변수의 실체와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터

한국광고주협회 등 광고 관련 업계는 물론 한국광고학회 등 관련 학계도 지상파방송을 포함한 모든 방송에 중간 광고가 허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광고계 주요단체는 정부와의 간담회 자리를 통해 지상파방송에서의 중간 광고 허용을 직접적·명시적으로 건의한 바도 있다. 방송광고시장 혹은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상파방송에서의 중간 광고 허용이 절실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지만, 방송광고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며 전문위원회까지 설치한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의 반응은 오히려 냉기마저 감돈다. 지상파방송에서의 중간 광고 허용은 “당연히 생각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지상파방송에서의 중간 광고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물론 관련 학자들까지 한목소리로 방송광고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지상파방송에서의 중간 광고 허용을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합리적 논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정책 방향의 타당성 내지 정당성이 수용될 수 있는 까닭이다. 기존에 방통위가 지상파방송에서의 중간 광고 허용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각 요소는 무엇이고, 타당한가? 살펴보자.

중간광고
ⓒJTBC·Mnet 캡쳐 화면

먼저, 중간 광고가 허용될 경우 프로그램 시청의 흐름이 중단돼 이른바 ‘시청권’이 침해되는지 여부다. 여기서 ‘시청권’이라는 권리가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권리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한 법 이론적 혹은 규범론적 논의는 따로 미뤄놓는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지상파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의 시청 흐름은 중단돼서는 안 되고, 유료방송을 통해 공급되는 채널 즉, PP가 공급하는 채널을 시청하는 사람은 시청의 흐름이 중단돼도 되는가? 시청 흐름의 방해가 이른바 매체별로 허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맞는가? 오롯이 중간 광고가 시청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즉, 시청자의 권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지상파방송과 PP가 공급하는 채널을 시청하는 시청자의 권익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정당화될 여지는 없다. 혹자는 매체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판단의 기준은 오직 시청자의 시청 흐름에 방해가 되는지 여부이지 매체균형발전이 고려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논점 일탈의 오류다. 더욱이 오류를 전제로 하더라도 의문은 여전히 제기된다. 방통위는 지상파방송의 직접수신율이 7%대 미만이라고 한다(다만, 이와 같은 수치에 대해서는 조사방법의 적정성 혹은 수치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통계에 기초해 보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유료매체를 통해 지상파방송 채널과 PP 채널을 시청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의 시청 흐름의 방해 여부를 매체별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또한 어떻게 설득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두 번째 판단요소는 앞서 언급한 이른바 ‘매체균형발전’이라는 것이다. 방통위는 이른바 매체 간 불균형 우려에 따라 ‘유료방송’과 지상파방송을 차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른바 매체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비대칭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매체균형발전론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후발 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의 근거로 사용됐고, 방송의 독립성과 의견 형성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에 엄격한 소유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거나, 방송의 공익성·공공성을 전제로 국내제작 프로그램 또는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을 확대하거나 미디어렙을 통해 광고를 판매하는 미디어렙 제도에 관한 논의까지 폭넓게 그 적용의 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 아무튼, 방송영역에서 비대칭 규제에 관한 다른 쟁점은 일단 차치하고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방통위가 광고제도에서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채널을 차별적으로 취급하고자 하는 근거다. 방통위가 비대칭 규제의 이유로 제시하는 근거는 오직 하나, 즉, 후발 사업자인 유료방송채널이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광고재원의 일부를 지상파방송에 잃게 될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이유가 지상파방송의 공적 기능 수행을 저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시장의 기회라는 것은 경제적 문제이지 의사 형성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방송영역에서 국가에 주어진 우선적 과제는 의견 형성의 다양성 보장이다. 지상파방송과의 저널리즘적 경쟁을 하지 않고도 유료방송채널이 경제적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오히려, 이원적 방송질서의 형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급함으로써 의견 형성의 다양성을 증진하고자 하는 목적에 위반되게 된다. 때문에 유료방송채널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지상파방송의 공적 기능 수행을 저해하는 제한을 두는 것은 방송의 자유를 허용된 방법으로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지상파방송이 공적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간 광고가 필요조건이 된 상황에서 매체균형발전을 이유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채널 사이의 저널리즘적 경쟁을 저해하는 것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하겠다.

세 번째 판단요소는 명시적으로 제시된 바 없지만 신문업계의 반발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상파방송의 광고제도 변화에 따라 신문기업의 수입저하에 대한 우려는 헌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신문의 기능과 존속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출판의 자유’가 침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기존 신문에 돌아가던 광고수입이 지상파방송으로 전입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신문기업들이 채산성 한계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점 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전제조건들이 실제로 발생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전체 광고규모가 경제적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불확실성은 더 높아진다. 또한, 어떤 광고수입이 지상파방송으로 넘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일의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광고의 목적에 따라 광고의 방법(혹은 매체)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른바 “선택적 효과”를 지향하는 광고라면, 여전히 신문을 선호하게 될 것이며,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집중적인 광고는 전자매체보다 신문에 게재하는 것이 훨씬 적합하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특히, 지상파방송 광고제도의 변화에 따라 중간 광고 혹은 광고총량제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또, 그러한 효과가 신문기업의 존속 그 자체를 위협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따라서 출판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신문기업의 존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면 충분하고, 신문기업의 존속 그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증거가 제시될 경우에 대비해 입법자가 사후개선의 방식으로 조치를 취하는 내용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사후적인 방법을 통해 신문기업의 존속 그 자체를 보호하고자 할 경우 지상파방송의 광고수입만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인터넷 등 전체 광고규모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유료방송의 도입 이후 방송 영역에 대한 주류적 담론은 이른바 산업론적 시각에 치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보다 전향적인 가치 전제와 적극적인 문제 인식을 가지고 새로운 방향의 논의가 필요하다. ‘방송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는 이러한 뜻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 뜻은 방송을 산업으로, 경제성장의 동력만으로 파악하라는 것이 아니다. 저널리즘적 경쟁을 통해 다양한 의견 형성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료방송의 도입 이후의 방송질서를 형성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헌법적 명령은 변치 않았다. 오히려 강조된다. 공적책무가 강조되고 또 그에 따른 지상파방송의 의무를 누구도 부정치 않는다면, 기능수행에 필요한 재원 확보수단의 수단 역시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지상파방송의 재원은 방송광고에 기초한다. 그런데 지금 당장의 광고제도만으로는 지상파방송이 부여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떠한 논리적 정치성이나 화려한 관념적 수사에 의해 뒷받침되는 논쟁도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듯, 과제를 부여했다면 그 과제수행을 위한 조건의 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