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전성시대 2014’

[분석] ‘유료방송 전성시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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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최진홍) 지난해 12월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기점으로 정부의 유료방송 밀어주기가 점점 ‘대범’해지고 있다. 이제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규제완화를 통한 유료방송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총량제가 한시적이고 지엽적인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총리실에 제출할 ‘실적’을 만들기 위해 전사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 정부는 유료방송 규제완화에 방점을 찍은 토론회를 연이어 후원하며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며 뚜렷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자 정부가 나서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선언하는 분위기다. 이미 정부는 케이블 MSO의 권역별 규제를 완화했으며 추후 케이블 MPP 매출 제한 규제도 풀어줄 기세다. 한 때 ‘CJ 특별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특혜’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사례로 6월 2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미래부, 방통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후원한 한국방송학회 주최 토론회를 들 수 있다. 사실상 유료방송 규제완화의 면죄부 발행을 위해 마련된 본 토론회에서 정윤식 강원대 교수는 각 플랫폼에서 의무재송신 채널 15~19개를 반드시 편성해야 하는 규제를 철폐하고 별도의 방송평가제도를 만들어 이를 유동성있게 조절하자는 의견을 냈다. 얼핏보면 의무재송신 채널로 지정된 종합편성채널 특혜를 겨냥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 한미 FTA를 기점으로 토종-거대 유료방송 사업자를 양산하자는 주장과 결을 함께한다. 간단하다. 의무재송신 채널 지정과 같은 민감한 부분을 방송평가제도와 같은 계량적인 방법으로 측정하기에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정무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편 재승인의 경우 ‘누가 봐도 재승인 탈락이 확정적이지만’ 객관적 수치를 제외하고 주관적 수치에서 상당한 점수의 편차가 있었다. 해당 평가를 누가 하느냐도 문제다. 즉 종합하자면, 정 교수의 주장은 의무재송신 지정이라는 ‘권위’를 흔들 ‘규제완화’를 주문한 셈이다. 물론, 이는 의무재송신 확대를 원하는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있어 일종의 ‘여지’로 남겨질 수도 있다.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의 제도적 보장을 소유 및 겸영제한으로 제재하고 컨트롤하지 말고 내용규제, 사후규제, 평가제도, 시청자의 참여보장 장치로 전환하자는 정 교수의 발언도 위험하다. 이는 사실상 유료방송의 모든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자의 인수합병을 촉진시키자는 뜻인데, 그 수혜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명약관화다. 바로 대기업이다.

여기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불거진다. 현재 정부는 유료방송의 규제완화를 실시하며 방송의 산업화를 고집해 일종의 ‘부의 낙수효과’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정부의 최종목표인 ‘부의 낙수효과’는 커녕 ‘대기업 쏠림’현상만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료방송 진흥을 위해 규제완화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대기업을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꼴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한동안 쓸모없는 정부의 규제로 막강한 잠재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해외진출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정부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기는 커녕, "한 달안에 규제 30개를 철폐하겠습니다"라는 규제 총량제를 발표한다. 기업들은 황당하다. 반드시 필요한 규제완화가 절실한 마당에 숫자를 정해놓고 규제를 철폐한다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규제완화를 실시해버린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보니 더 가관이다. 규제완화는 규제완화인데, 그 규제완화가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발전적인 방향이 아니라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을 ‘잡아먹기’ 위해 규제들을 없애고 있다. 

지금 정부의 유료방송 규제완화는 이런 식이다. 한미 FTA 운운하며 대기업 밀어주기를 긍정적인 규제완화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기본방침과도 맞지 않는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군소 PP 상생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통령과 따로 놀고있다.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조화’다. 케이블 MSO 권역별 규제완화를 통해 케이블 MSO들이 몸집을 불리고 지역 SO를 흡수해 ‘로컬’에 기반한 케이블의 기본적인 속성을 무시하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게 ‘긍정적인’ 규제완화의 산물인가.

그런데 이 믿기 어려운 현실속에서 케이블과 IPTV, 유료방송은 의외로 견고한 합종연횡중이다. 쉽게말해 대기업 중심의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DCS를 원하는 위성방송, 직접사용채널을 원하는 IPTV, 전국 광역화를 원하는 케이블이 각자의 득실을 따져 ‘주고 받는 거래’가 암묵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나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위성방송과 IPTV를 동시에 보유한 KT가 합산규제의 단계에 이르러 파편화된 다른 사업자와 각을 세우고 있지만, 대기업 중심의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정부의 의도와는 궁합이 잘 맞는 편이다.

이처럼 정부의 유료방송 규제완화가 사실상 대기업 중심의 지원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그 반대급부인 무료 보편적 미디어 플랫폼의 약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에 등장한 유료방송 UHD와 같이 정부의 노골적인 ‘밀어주기’에 국가 인프라의 성격을 가지는 지상파 플랫폼이 사상 초유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는 2015년 제정 목표인 통합 방송법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현재 비밀리에 추진중인 통합 방송법 TF 내외부에서는 유료방송 규제완화는 물론, 지상파의 플랫폼 지위를 제로 베이스에서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UHD 정국에서 지상파의 UHD 가능성을 콘텐츠 제작에만 방점을 찍으면 위험한 이유다. 정부는 지상파를 PP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을 아우르는 UHD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지상파가 "우리는 콘텐츠 제작 능력이 있어요"라고만 주장하는 것은, 그냥 지상파가 UHD PP로 남길 원하는 정부의 의도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종합하자면, 현재 정부는 규제 총량제의 기치를 내걸고 KT와 CJ 같은 대기업에게 규제완화의 탈을 쓴 노골적 지원을 서슴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료 보편적 미디어 플랫폼은 말살된다. 비약이 아니다. 최근 정부는 브라질 월드컵 중계권과 관련된 지상파-유료방송 CPS 정국에 있어 각 이해 당사자에 공문을 보내 "지상파의 공적책무는 유료방송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고 정의내린적 있다. 이는 오롯이 통합 방송법에 반영되어 정부의 방송 산업화 정책이 유료방송 대기업 지원, 지상파 플랫폼 말살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6월 26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의미심장한 발표를 했다. 방통위가 발표한 ‘2013 회계연도 방소 사업자 재산상황’에 따르면 케이블 PP 방송매출은 6조756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2%이 증가했고 케이블 SO의 방송매출도 4.4% 증가해 2조3792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상파의 방송매출은 1.9% 감소한 3조8,963억 원을 기록했으며 당기순이익도 38.9% 감소한 1,241억원이다. 지상파 매출은 하락하고 유료방송 매출은 상승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밀어주기의 탈을 쓴 ‘규제완화’라니!

현재 유료방송은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에 편승해 교묘한 프레임을 구축했다. CPS 논란을 유료방송 사업자와 지상파 사업자의 문제가 아닌, 국민과 지상파 사업자의 대결로 몰아갔듯이, 유료방송 규제완화를 대기업 중심의 발전이라는 ‘진실’에서 빗겨나가게 만들어 본질을 호도했다. 거기에 무료 보편적 미디어 플랫폼의 말살은 일종의 ‘덤’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정점에는 통합 방송법이 있으며, 동일규제 동일서비스의 이름을 빌린 일종의 방송 산업화는 차근차근 방송의 공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6월 26일 참여연대는 케이블 MSO 티브로드의 협력사 쥐어짜기를 폭로했다. 이 자리에서 참여연대는 티브로드가 가입자를 무리하게 유치하기 위해 노약자 및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전환에 따라 자사의 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 TV를 시청할 수 없다고 속이며 셋톱박스를 설치하고, 심지어 다른 회사의 셋톱박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셋톱박스를 설치해 이중으로 금액을 징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물론 단적인 사례지만, CJ에 이어 케이블 업계에서 유일하게 ‘상대가 되는’ 티브로드가 이정도의 기업윤리를 가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이 루퍼트 머독의 수제자가 되는 것도 멀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