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 대처하는 언론

<미디어 비평> 파업에 대처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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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파업이 더욱 불붙고 있습니다. 그리고 MBC에서 시작된 이 정의의 불꽃은 지금 이 시간에도 KBS와 YTN을 넘어 시대적 가치로 진화하는 중입니다. ‘공정방송 복원’이라는 뜨거운 가치를 가슴에 품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점에서, 올바른 여론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요 언론사의 보도를 살펴봐야 합니다. 물론 진보매체로 분류되는 언론사들이야 다양한 기사들을 송고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흔히 말하는 대형 신문사들은 상대적으로 어떤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을까요? 지면관계상 모두를 설명할 수 없기에 <조선일보>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월급쟁이 기자처지에 내 돈 주고 이 신문을 사 볼 생각은 전혀 없기에,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겠습니다.

예상대로 <조선일보>의 방송사 파업 관련 기사는 상당히 적었습니다. 그러면 기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습니다. <MBC 39일째… KBS·YTN도 도미노 파업>기사 이군요. 그런데 기사 내용이 참 묘합니다. 파업 상황을 주욱 설명하다가 노조의 입장을 달랑 두줄 쓰고 다시 사측의 ‘엄정대처’방안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네요. 게다가 ‘정치파업’운운하는 사측의 입장을 자세히 적은 반면 노조의 입장은 “파업한다” 딱 이것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사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방송사 사장을 임명할 때마다 불거지는 편파 보도 논란’이라는 소제목에 ‘방송사가 사장 선임이나 총선 등 선거철을 맞을 때마다 주기적으로 파업 내지는 내부 분규’라는 대목. 아주 깨알같은 멘트입니다. 작금의 파업 사태를 항상 있었던 연례행사 정도로 폄하하고 그 본질을 ‘정치파업’으로 몰아가려는 술수라고 분석한다면, 제가 너무 과민반응 하는 것일까요.

또 있습니다. <민주당 "방송인 투쟁은 聖戰… 총선 승리땐 언론학살 청문회">라는 기사는 더 노골 적입니다. 이번 방송사 파업을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으며 만약 이들의 뜻대로 일이 풀리면 정치적 지형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이는 이번 파업을 ‘정치파업’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조선일보>의 아주 고약한 꼼수입니다. 안철수 씨가 재단설립을 위한 미국방문 당시에도 보수매체들은 ‘대선행보’라고 한 목소리로 전했던 사실을 기억해보세요. 이들 매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보이나 봅니다.

물론, 해당 매체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언론사가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기사를 재단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니까요. 하지만 이는 도가 지나칩니다. 이번 파업을 정치적 사안으로만 분석하기 보다는 실제적 사건으로 평가하지 못하는..아니 안하는 그들의 대응이 아쉬울 뿐입니다. <조선일보>는 <국민일보>나 <부산일보>같은 용기있는 기자가 없나 봅니다. 그저 ‘회장님 힘내십쇼!’라고 외치며 줄서는 모 언론사 기자들의 생각이 보수매체의 모든 것이 아니길 그저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기사 말미에, 전 작은 ‘희망’을 하나 보긴 했습니다. <조선일보> 연예면 홈페이지에는 ‘방송사 파업’기사가 많이 있었던 겁니다! 물론 그 자체가 아니라 대부분 ‘무한도전’이나 ‘해품달’ 결방에 따른 네티즌들의 아쉬운 목소리를 담은 기사더군요. 하루에 2, 3개는 꼭 관련 기사가 있을 정도니, <조선일보> 연예뉴스팀은 사회정치 팀보다는 세상을 읽는 눈이 탁월하다고 봐야 할까요? 하여튼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자들이 ‘해품달’을 못봐서 참 아쉬워 한다는 사실은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저에게 해당 연예 기사들이 갑자기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랍니다. 아마 <조선일보> 모니터링을 하다가 저에게도 해당 매체의 ‘모든 사안을 정치적으로 파악하는 병’이 옮았나 봅니다. 이거 큰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손해배상 청구도 진지하게 고민중입니다. 요즘은 밑도 끝도 없이 ‘고소’하는게 ‘대세’잖아요? 이러다가 국회의원 될지 누가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