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이헌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정책실장]
1. 서언: 포노사피엔스와 격리된 지상파 전파의 비극
요즘 출퇴근길 지하철 안이나 인파로 붐비는 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다루는 신인류,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가 미디어 소비의 완벽한 주류로 자리 잡았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손안의 조그만 화면을 통해 세상의 온갖 뉴스, 엔터테인먼트,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을 거침없이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직 방송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서글픔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그 수많은 스마트폰 화면 어디에서도 지상파 방송 전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한때 거실의 중심에서 온 가족의 안방극장을 책임지며 보편적 미디어 복지를 실현하던 지상파 방송이,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신대륙 앞에서는 비참할 정도로 외롭게 격리되어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상파의 위기를 말할 때 ‘콘텐츠 경쟁력 약화’나 ‘OTT 플랫폼으로의 시청자 이탈’ 같은 미디어론적 원인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바라본 본질적인 위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포노사피엔스가 매 순간 들고 다니는 모바일 단말기 안으로 지상파 전파가 물리적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한다는 ‘기술적 고립’입니다. 아무리 눈부신 4K 고화질 콘텐츠와 유익한 공공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들, 거실 TV 수신 안테나나 유선 케이블 셋톱박스에만 매달려 있어서는 손안의 세상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을 결코 다시 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지상파 방송 기술은 기존의 고정형 TV 수신기라는 한계를 깨부수고, 국민의 스마트폰 안으로 직접 전파를 쏘아 보내는 대담한 혁신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2. IBC 현장 참관기: 5G Broadcast 생태계와 상용화 로드맵
이러한 시대적 화두와 절박함을 안고 참관한 이번 IBC 현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기술적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머나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거나 개념 검증 수준에 머물던 5G Broadcast 기술이 이제는 가상화 시뮬레이터부터 엣지 노드, 코어 네트워크, 그리고 모바일 칩셋 거인인 퀄컴(Qualcomm)의 구체적인 상용 단말 로드맵까지 완벽하게 결합된 하나의 커다란 산업 생태계로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5G-MAG: 자체 오픈소스 시뮬레이터로 입증한 개발자 중심 생태계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 5G-MAG(5G Media Connectivity Association) 부스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기술 실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물리적인 기지국이나 대형 송출 장비가 없어도 전체 5G Broadcast 방송망과 단말 수신 과정을 가상화하여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자체 오픈소스 시뮬레이터(Developer Tools &Reference Architecture)였습니다. 3GPP Release 19 규격에 맞춰 송신기, 5G 코어 네트워크, 그리고 모바일 단말 미들웨어까지의 엔드투엔드(End-to-End) 데이터 흐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는데, 구역별 재난 정보가 5G Broadcast 전파 신호로 변환되어 단말 내 미들웨어를 통해 깔끔하게 표시되는 전체 과정은 무척 신선했습니다. 이는 방송사와 개발자들이 대규모 망 투자 이전이라도 모바일 방송 앱과 신규 서비스를 즉시 개발하고 검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반이 이미 완비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2) XGN과 ENENSYS: 코어/엣지/송신기부터 단말 미들웨어까지의 완성도
이어 방문한 XGN(X1 Mobile) 부스에서는 “5G Broadcast hardware and software. Delivered Everywhere”라는 슬로건 아래 eMBMS 수신 소프트웨어인 ARTHUR, 5G Broadcast 코어 네트워크 BEACON X1, 엣지 브로드캐스트 노드 CHARLIE 등 정교한 제품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TRedess, Dielectric, ATEME 등 글로벌 파트너사들과 완벽한 송출 생태계를 구축하고 실제 628.5MHz 전파 환경에서 MCC/MNC 세션 패킷을 원활히 수신하는 모니터링 화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ENENSYS 부스에서는 기존 DVB-T2나 ATSC 3.0 등 전통 방송망을 MediaCast Mobile Gateway를 통해 5G Broadcast SFN망으로 매끄럽게 전환하는 아키텍처를 제시했습니다. 특히 원플러스, 샤오미, 모토로라 등 상용 스마트폰에 CubeAgent Mobile 미들웨어를 탑재하여, SIM 카드가 없거나 데이터 과금 걱정 없이 LiveTV 애플리케이션으로 고화질 DASH 라이브 방송을 수신하는 시연은 포노사피엔스가 누릴 모바일 방송의 직관적인 미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3) 퀄컴(Qualcomm) 세션: 표준화 완결성, 멀티벤더 정합 및 2027~2028 상용화 로드맵
특히 이번 세미나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퀄컴(Qualcomm) 세션에서는 5G Broadcast의 표준화 완결성과 멀티벤더 간 상호호환성(Multi-vendor Interoperability), 그리고 구체적인 상용화 로드맵을 종합 제시했습니다.
퀄컴은 5G-MAG, 3GPP, DASH IF, ETSI, ATSC, DVB 등 글로벌 기구들과 연대하여 모뎀 계층의 3GPP Rel-19 스펙을 완비(Feature complete)했음을 입증했습니다. 서비스 계층의 미들웨어/API 규격화와 ETSI TS 103 720 v1.3.1 기술 프로필의 안정화, 그리고 네트워크 장비 간 플러그페스트(Plugfest) 성공에 이어 5G-MAG 주도의 단말 호환성 검증 단계로 진입했음을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기술 검증(QSIO)을 넘어 실제 상용 칩셋 부서인 QCT(Qualcomm CDMA Technologies) 차원의 제품화 단계 진입을 선언했습니다. 5G Broadcast를 플래그십 SoC 모뎀의 기본 기능으로 통합해 구현 비용을 최소화했으며, 2027년 Q2에 테스트 단말(Test Devices)을 OEM에 공급하고 2027년 하반기~2028년 상반기(H1)에 퀄컴 칩셋을 탑재한 주요 안드로이드 OEM 스마트폰이 시장에 상용 출시될 예정임을 공식화했습니다. Band 108(470-698MHz), Band 112, Band 113 등 3GPP 방송 전용 대역을 지원하는 QRD/CRD 플랫폼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CPE, 자동차(Automotive)로 확장되는 보급 전략도 제시되었습니다.

4) 5BSTF 세션: 단일 법인(Legal Entity) 설립 및 유럽 12개국 1억 8,800만 커버리지 로드맵
R&S 관에서 개최된 5BSTF(5G Broadcast Business Strategy Task Force) 세션 발표 현장은 기술 검증을 넘어 실제 사업화와 단권화된 세력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독일(Media Broadcast), 프랑스(TDF), 스페인(Cellnex), 이탈리아(Rai), 폴란드(Emitel), 체코(CRA), 스웨덴(Teracom) 등 유럽 12개국 지상파 방송망 사업자 중심의 5BSTF 연합은 EU 인구의 80%에 달하는 영역을 기반으로 1억 8,800만 명(188 Mio. pop) 인구 커버리지 가동을 목표로 확고한 롤아웃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특히 현장 슬라이드에서 강력히 선언된 핵심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EU 내 단일 법인(Legal Entity – Private Limited Company)으로 진화한다”는 점이었습니다. 5BSTF는 단일 창구(One face to the OEM)를 통해 스마트폰 및 칩셋 제조사들과 직접 탑재 협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5) 글로벌 필드 테스트: 인도 D2M 시험 및 아시아 확장 동향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거대 시장에서의 D2M(Direct-to-Mobile) 실증 데이터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공영방송 Prasar Bharati, Reliance Jio, Qualcomm, R&S가 참여한 인도 뉴델리 필드 테스트에서는 578MHz 대역의 HPHT(Pitampura 타워, 4.6kW)와 570MHz LPLT(Rohit House, 47W) 송신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SFN망을 검증했습니다. 스마트폰과 CPE 단말로 2개 고화질 방송과 공공 경보(Public Warning)를 전달했으며, 건물 투과 손실과 SNR(신호 대 잡음비) 기반의 도심 실내 수신 설계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방송사와 규제기관, MNO, OEM이 참여한 5G Broadcast 컨퍼런스를 통해 MyTV 기반의 Phase 2 연동을 완료하고 ASEAN 지역 전반으로 생태계 확장을 추진 중입니다.

3. 포노사피엔스를 위한 방송 기술의 3대 핵심 대응 과제
글로벌 방송 기술계와 퀄컴과 같은 칩셋 거인이 명확한 표준 완결성과 상용화 타임라인(2027~2028년)을 제시한 지금, 한국 지상파 방송 기술계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속히 추진해야 할 3대 핵심 과제를 제언합니다.
첫째, Direct-to-Mobile(D2M) 수신망 구축을 위한 주파수 및 송출 규격 정비
방송 전파의 최종 도달 지점을 거실 TV 안테나가 아닌 국민의 ‘스마트폰 내장 모뎀’으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600MHz 대역 등 모바일 수신 및 전파 전파 특성에 유리한 주파수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국내 방송 송출 규격을 3GPP Release 19 및 ETSI TS 103 720 기반의 5G Broadcast 국제 표준과 완벽히 호환되도록 신속히 정비해야 합니다.
둘째, 글로벌 상용화 타임라인에 맞춘 단일 추진 창구 결성 및 OEM 협상
유럽 5BSTF처럼 국내도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사,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단일 통합 추진단을 조속히 결성해야 합니다. 퀄컴이 2027년 Q2 테스트 단말 공급 및 2027/2028년 상용화를 예고한 만큼, 국내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삼성전자 등)의 플래그십 단말에 5G Broadcast 수신 기능 및 미들웨어가 탑재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단일화된 협상력(One-face to OEM)을 발휘해야 합니다.
셋째, 무제한 무료 수신(Zero-rating)기반의 공공 안전망 구축 및 모바일 특화 서비스 발굴
5G Broadcast는 통신 데이터 차감이 전혀 없는 무제한 무료 수신(Zero-rated)과 획기적인 배터리 절감 효과를 자랑합니다. 통신망 과부하나 대형 재난 상황에서도 실시간 비상 경보와 파일을 스마트폰으로 다중 송출하는 ‘손안의 24시간 공공 안전망’으로서의 공적 가치를 입증하여 국가 예비 재난망 인프라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한편, 모바일 숏폼 라이브, 스포츠 멀티앵글 중계 등 포노사피엔스의 시청 습관에 최적화된 모바일 전용 미디어 서비스를 다각도로 발굴해야 합니다.
4. 결언: 상용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IBC 현장에서 확인한 가장 결정적인 메시지는 “5G Broadcast가 머나먼 미래의 개념이 아니라, 퀄컴의 2027년 Q2 테스트 단말 배포 및 2027/2028년 상용 스마트폰 출시라는 구체적이고 불가역적인 로드맵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ATSC 3.0의 ‘대부’라 불리는 Sinclair / ONE Media의 마크 아이켄(Mark Aitken) 회장이 R&S(로데슈바르즈)의 5G Broadcast 세미나마다 깊은 관심을 표하며 매번 현장에 직접 참석해 진지하게 경청하던 모습이었습니다. 북미 차세대 방송 표준을 이끌어온 거장조차도 미디어 패러다임이 스마트폰 중심의 D2M(Direct-to-Mobile)으로 이동하는 커다란 기술적 흐름과 5G Broadcast의 파급력을 예의주시하며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포노사피엔스를 무작정 거실 TV 앞으로 다시 불러올 수 없다면, 지상파 전파가 그들이 거주하는 스마트폰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퀄컴과 글로벌 주요 송출사들이 설정한 2027년 상용화 골든타임이 불과 1~2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내 지상파 방송 기술 진영 역시 즉각 통합 추진단을 결성하고, 모바일 5G Broadcast 상용화를 위한 정책 법제화와 단말 제조사 협상이라는 대장정에 지체 없이 착수하기를 강력히 제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