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방송의 갈 길, DTV 전송방식 투쟁의 역사에서 묻다

[신년특집] 2014년 방송의 갈 길, DTV 전송방식 투쟁의 역사에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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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 그 안에 내재된 정부의 노골적인 유료방송 중심 정책과 지상파 방송의 형해화.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과 방송-통신 주파수 쟁탈전, 지상파 MMS와 UHDTV의 미래와 난시청 해소 및 방송 정책 이분화. 현재 대한민국 방송은 거대한 사영화의 바람에 휘둘리고 있다.

정부는 공공의 인프라를 해체하여 사익을 위한 도구로 둔갑시키는 한편, 허망한 경제적 낙수효과를 꿈꾸며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방송은 자신의 역할을 잡지 못하고 치명적인 방황 속에서 표류하며 보편적 미디어 플랫폼은 조금씩 사양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대위기의 시대. 백척간두에 선 우리는 시대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기본적인 질문이 우리를 2000년대로 자연스럽게 안내한다.

이에 본지는‘2014년 방송의 갈 길, DTV 전송방식 투쟁의 역사에서 묻다’를 통해 끈질기게 순환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현재와 미래의 비전을 모색해 본다.

 

2부 미완의 성공에서 피어난 희망

2003년 5월, KBS가 정식으로 미국식 DTV 전송방식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 이어 6월에는 DTV 특별 대책반이 출범했으며 7월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디지털 전환 일정 자체를 중단하라는 요청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결국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이하 KOBETA)를 중심으로 하는 DTV 비상대책위원회는 8월 19일부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장장 6개월에 거친 대대적인 투쟁을 시작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DTV 비상대책위원회는 삭발식 및 가두홍보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대정부 투쟁까지 불사했다. 그 과정에서 KBS, MBC, EBS는 정부의 디지털 전환 일정 백지화를 정식으로 촉구하는 한편 정확한 비교시험을 요구했으며 이에 10월 4일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해외실태조사 및 MBC 비교시험 결과를 검증하기로 합의했다.

▲ 2003년 8월 21일 디지털 방송 광역시 전환 저지를 위한 삭발투쟁

 

▲ 2003년 9월 3일 방송의 날, 디지털 방송 광역시 전환 중단 및 변경방식 촉구 기자회견

 

▲ 2003년 9월 3일 방송의 날, 디지털 방송 광역시 전환 중단 및 변경방식 촉구 기자회견

하지만 10월 21일 KBS 비교시험추진위원회가 발족했으나 정보통신부와 산업계가 불참해 또 한번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 붙었다. KOBETA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계는 11월 22일부터 12월 6일까지 디지털 해외방송 실태조사를 강행해 투쟁의 동력을 극대화 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11월 26일 DTV 비상대책위원회 철야농성은 100일을 넘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28일, 철야농성이 102일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방송위원회는 시군구 디지털 방송 허가 신청을 7개월 연기하도록 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동시에 KOBETA는 광역시 디지털 방송 저지를 위한 5대 광역시 순회집회에 돌입했으며 12월 4일 한국방송협회는 방송위원회에 광역시 디지털 방송 연기를 정식으로 요청한다. 그리고 12월 17일 MBC 노동조합은 광역시 디지털 방송 저지를 위한 철야농성에 들어갔으며 이에 한 발 물러난 방송위원회는 정보통신부와 함께 해외사례조사 결과 및 MBC 비교시험 결과 검토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 2003년 10월 24일 정보통신부 해체 촉구 기자회견

 

▲ 2003년 11월 26일 철야농성 100일, 광역시 디지털 전환 저지 투쟁 선포식

 

▲ 2003년 11월 28일 비상대책위원회, 광역시 디지털 방송 저지를 위한 5대 광역시 순회집회(대전)

 

▲ 2003년 12월 1일 대전방송 광역시 송출 저지 투쟁

 

▲ 2003년 12월 23일 전국 방송인 총파업 결의대회

 

▲ 2003년 KBS 정연주 사장 면담

그러나 이와 별도로 12월 19일 방송사 노동조합은 광역시 디지털 방송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으며 같은날 KBS 노동조합도 전격적으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이어 12월 23일 전국 방송인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리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12월 26일, 지상파 방송사들은 광역시 디지털 방송 연기 결정을 정보통신부에 정식으로 통보한다. 그러자 정보통신부는 12월 26일 부랴부랴 5개 항의 대책안을 발표했으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노무현 대통령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합리적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 김수태 KOBETA 연합회장 1인 시위

 

▲ 철야농성

하지만 2004년 1월 9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공식 석상에서 미국식 DTV 전송방식을 관철시키겠다는 발언을 하며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갔다. 동시에 1월 19일 방송위원회가 광역시 디지털 전환일정 중단을 선언했으며 1월 26일 전국 방송인 DTV 비상대책위원회는 161일만에 철야농성을 중지한다. 이어 1월 30일 노성대 방송위원장,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정연주 KBS 사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 4인 대표는 비교시험추진위원회 구성에 합의한다. 그리고 7월 8일 4인 공동 대표단은 DTV 전송방식에 최종 합의한다.

DTV 전송방식은 결국 미국식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잘못된 결정은 결국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의 총체적 부실을 야기시켰으며, 지금도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주파수 비효율에 따른 방송 주파수의 부족, 여기에 연쇄적 반응을 일으키는 700MHz 대역 주파수와 보편적 UHDTV 활용까지. 하지만 2000년대를 뜨겁게 달군 DTV 전송방식 투쟁은 완전한 실패가 아니다. 올바른 방송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과 신념이 모여 하나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지금도 방송기술인의 DNA에 각인된 궁극적인 비전으로 타오르고 있다. (3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