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자산으로 AI 시대의 경쟁력을 갖추자

[칼럼] 콘텐츠 자산으로 AI 시대의 경쟁력을 갖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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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성환 박사, EBS 자기주도학습센터장]

방송 제작 현장에 들어온 AI
최근 국내 방송사들은 생성형 AI를 단순한 업무 지원 도구를 넘어 방송 제작 혁신의 핵심 기술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뉴스와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AI 기반 자동 자막 생성과 음성 인식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영상 속 인물·장소·사물을 자동으로 인식하여 메타데이터를 생성하는 기술도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또한 수십만 시간에 이르는 방송 아카이브에서 원하는 장면을 자연어로 검색하거나,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과거 영상의 하이라이트를 자동 편집하고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방송사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방송 콘텐츠를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기 위한 기반 구축에도 적극 나서는 것이다. 방송 콘텐츠에 대한 자동 태깅, 객체 인식, 장면 분석, 의미 기반 검색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위험하거나 시대적 재현이 어려운 장면을 생성형 AI와 가상 제작(Virtual Production) 기술로 구현하는 사례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방송사가 단순한 콘텐츠 제작 기관을 넘어 데이터와 AI를 활용하는 지식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은 기술 + 콘텐츠 자산
그러나 현재 방송사들의 AI 활용은 여전히 제작 효율화와 비용 절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동 메타데이터 생성, 장면 검색, 음성 인식, 자동 편집 등은 분명 중요한 기술이지만 이것만으로는 AI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진정한 경쟁력은 방송사의 축적된 콘텐츠 아카이브를 어떻게 AI 자산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BBC의 전략은 매우 시사적이다. BBC는 오랜 기간 축적한 뉴스, 교육, 시사, 다큐멘터리 콘텐츠를 미래 AI 서비스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누구나 최신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BBC가 수십 년간 생산해 온 신뢰성 높은 콘텐츠는 BBC만의 독점적 자산이다. 결국 AI 시대에도 알고리즘 이전에 미디어 콘텐츠 데이터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할리우드가 보여주는 콘텐츠 자산의 미래 가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설 등 주요 스튜디오들은 생성형 AI 기업들과 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협상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저작권 보호 차원을 넘어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 콘텐츠 자산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과거 방송사와 영화사는 콘텐츠의 제작·유통이 주요 사업 모델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콘텐츠가 새로운 생산 원천이다. AI는 콘텐츠를 학습하고 이해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한다. 아카이브된 양질의 콘텐츠는 AI에게 학습 데이터로 제공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며, 미래 수익 모델을 창출하는 전략 자산이다. 앞으로는 어떤 콘텐츠 데이터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생존전략, 그리고 EBS의 기회
이러한 관점에서 아카이브를 단순한 보존 자산이 아니라 AI 생산 자산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첫째, 방송 아카이브의 AI 학습 데이터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프로그램 단위의 관리에서 벗어나 장면, 객체, 인물, 감정, 사건 단위의 정교한 메타데이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향후 방송 특화 AI 모델과 생성형 서비스 개발의 핵심 기반이 된다.

둘째, 방송사 고유의 AI 모델 구축도 필요하다. 범용 LLM은 강력하지만, 방송 제작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지는 않다. 방송사가 보유한 뉴스, 시사, 다큐멘터리, 교육, 문화 콘텐츠를 활용하여 방송 전문 AI 모델을 구축한다면 자료 조사, 콘텐츠 추천, 영상 검색, 편집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아카이브 기반 신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시청자가 자연어로 질문하면 수십 년간 축적된 방송 자료를 기반으로 답변하는 AI 서비스, 특정 주제의 역사적 영상을 자동 편집하여 제공하는 서비스, 개인 맞춤형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특히 EBS에는 기회이다. 초·중·고 교과과정, 직업교육, 평생교육, 외국어 교육, 교양, 다큐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교육 역사가 집약된 데이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콘텐츠는 미래 교육 AI의 핵심 학습 자원이 될 수 있다. EBS는 보유한 교육 콘텐츠를 기반으로 교육 특화 LLM(Educational LLM)을 구축하면, 이를 통해 교과 지식과 교육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신뢰성 높은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학습자의 수준과 진도에 맞추어 학습을 추천하는 “AI 단추+”를 개인 맞춤형 교육 서비스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또한 유명 강의 콘텐츠와 음성, 영상 데이터를 활용한 교육용 디지털 휴먼도 가능하다. 학생들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AI로 구현된 교사와 대화하며 학습할 수 있고, 역사 속 교육 콘텐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재활용을 넘어 교육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유사한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 차별화 방안은 결국 독점적 콘텐츠 자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BBC가 콘텐츠 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콘텐츠 권리를 미래 전략의 중심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BS가 보유한 교육 콘텐츠는 방송 자료를 넘어 대한민국 교육 AI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AI 모델을 가진 조직이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콘텐츠 자산을 AI와 결합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지금 방송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새로운 AI 기술의 도입 자체가 아니라, 각 사가 보유한 콘텐츠 자산을 어떻게 미래 AI 생태계의 핵심 경쟁력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