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재송신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 지상파에 귀 기울여라

[기고] 의무재송신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 지상파에 귀 기울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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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수 지역미디어연구회 연구원

영국과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근 5년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였다. 의정부에 마련했던 집을 처분하고 새로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직장 문제로 2개월동안 개인적인 휴식을 가질 시간이 생겼다. 당연히 TV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되었고 공부하고 있던 전공에 맡게 필자는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TV를 분석하고 프로그램의 성향을 파악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만 하지만, 매스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필자에게는 아주 좋은 오락거리였다.

하지만 그 오락거리는 2주일도 안되어 사라졌다. TV를 더 야심차게 즐겨보겠다고 설치한 케이블 TV가 갑자기 지상파 방송을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황당했다. 동시에 필자는 이 모든 것들이 지상파 의무재송신을 두고 벌어진 케이블 업체와 지상파 방송사의 알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막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자막에는 검은 화면에 큼직한 글씨로 ‘OOO 방송사의 요청으로 방송을 중단합니다’로 적혀있었다. 그 때 생각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지상파 방송사가 수틀린 나머지 방송을 끊어버렸다’라고 생각하겠다고. 그렇다. 사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전국 미디어 플랫폼을 가진 진영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다. 케이블이다. 케이블이 전국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여기인데, 케이블이 지상파 방송사보다 더 강력한 지역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머리로는 다 알고 있어도 막상 닥치면 이러한 부분은 너무 쉽게 잊혀져버린다. 필자는 의무재송신 문제의 가장 기본적인 진영논리와 어설픈 재단이 바로 여기에서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요한 대목은 아닐지 몰라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상파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는 케이블 업체의 주장은 허점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디지털 전환을 맞아 방송의 무료 보편적 기능이 더욱 확대되기 위해서는 의무재송신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맞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무재송신 확대가 필요하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무료 보편의 수단=의무재송신 확대’이라는 고정관념이 진하게 베어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지상파 방송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열이면 열 모두 말 그대로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지상파 방송의 무료 보편성 구현은 단순히 의무재송신을 물리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이룰 수 없다. 그 보다는 현재 유료 매체의 사업적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방통위가 보류중인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의 조속한 현실화야말로 정답이기 때문이다. 케이블 업체가 주장하는 부분은 하드웨어적인 기능을 중시했기에 생겨난 일종의 오류인 셈이다. 또 더욱 지상파 방송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이런 논리도 등장할 수 있다. 다양한 채널의 다양한 보급을 ‘무료’로 해낼 수 있는 다채널 서비스야말로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여기에 조금 더 노골적으로 지상파 방송사의 입장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주파수 문제도 포함된다. 700MHz 대역 방송용 필수 주파수의 조속한 확보야말로 난시청 해소 및 뉴미디어 발전의 근간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고.

즉 의무재송신 확대는 지상파 방송사의 재원 확보에 악영향을 미치고 유료 매체의 사업적 이득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당장 지상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무재송신 확대로 무료 보편의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은 70, 80년대 RO를 통한 난시청 해소를 추구하던 구시대적인 발상이다”고 주장하는 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작년 9월 12일 정인숙 가천대학교 교수가 공식 세미나에서 <유료방송 가입자들은 시청료를 이중으로 지불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 적이 있다. 당시 정 교수는 유료방송 가입자들이 공영방송에 CPS와 수신료를 모두 납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시청자들의 방송 수신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방법은 유료방송 뿐인 상황에서 의무재송신 범주 확대는 수용자의 편익 증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지상파 방송사는 명백히 그릇된 상황판단이라고 혹평했다. 논리는 이렇다. “유료매체는 자신들의 사업적 이득을 위해 가입자를 유치하고 직접수신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런 상황에서 CPS와 수신료가 가입자들에게 이중으로 납부된다는 논리는 힘을 잃는다. 이는 유료매체의 시스템이고 이를 택한 시청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수신가구는 CPS를 지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으며 시청자들의 방송 수신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방법이 유료방송 뿐이라는 상황파악은 오히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와 직접수신률 제고에 박차를 가하는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명확한 상황정리는 공영방송만을 기준으로 볼 때 ‘직접수신가구에는 수신료 부가, 유료매체에는 CPS를 부가’로 정리할 수 있으며 유료매체는 ‘자사의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CPS를 내고 지상파 콘텐츠 구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유료매체가 자신들의 CPS 부담을 온전히 가입자에게 돌리는 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된다. 즉 CPS는 유료매체 가입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 외 직접수신가구는 수신료만 부담하고 있으며 디지털 방송 전환을 맞이한 지상파 방송사의 난시청 해소 노력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무엇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매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괜찮은 주장들을 다루는 매체는 별로 없이, 그저 정치적인 아젠다에 함몰되어 새로운 이익단체의 글들만 천편일률적으로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면을 통해 의무재송신의 정당성을 논하기전에 지상파의 의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라는 의견을 전달하고 싶다. 그 거부감의 비율은 차치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