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KBS와 EBS를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정권 방송장악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노트북에 부착해 최근 임명 제청된 박민 KBS 사장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이를 놓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KBS와 EBS 국감은 시작부터 파행을 빚었다. 장제원 과방위원장의 중재로 국감은 속개했지만 KBS 신임 사장 임명 제청 과정, 수신료 분리징수, 편파보도 문제 등을 놓고 여야 의원들은 계속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민 신임 사장 후보자 임명 제청 과정 정당성 없어”
10월 17일 열린 과방위 국감에서 가장 논란이 된 건 박민 KBS 신임 사장 후보자 임명 제청 과정이다.
앞서 KBS 이사회는 10월 1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박 후보자를 최종 후보자로 선정했다. KBS 이사회는 10월 4일 서류 심사를 통과한 3인을 대상으로 면접 심사를 진행했으나 이날 최종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했다. 과반 득표를 한 후보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일 결선 투표를 진행해야 하지만 서기석 KBS 이사회 이사장은 결선 투표를 연기했다. 이후 여권 추천 이사 중 한 명인 김종민 이사가 사의를 표했고,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가 보궐이사로 선임됐다. 또한 결선 투표 대상에 올랐던 최재훈 KBS부산방송총국 기자가 사퇴하면서 박 후보자가 단독 후보가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숙정 민주당 의원은 “박 후보 내정설이 있었는데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졸속으로 해결했다”며 “김 전 사장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후임자를 선정한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었다. 허 의원은 김덕재 KBS 사장 직무대행에 이 과정에 대해 질의했고, 김 직무대행은 “이사회 결정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기 매우 난감하다”고 말하면서도 “매끄럽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이사회에서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해 신임 사장을 임명 제청했는데 이사회 없이 국감이 진행된다면 맹탕 국감”이라면서 이사진의 국감 출석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을 향해 “10월 4일 회의에서 과반 득표한 자가 있었느냐”고 거듭 질의했다. 이에 이 부위원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면서 답변을 피했다. 이에 고 의원은 “결선 투표가 안 됐으면 서기석 KBS 이사회 이사장을 향해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본인들이 정한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보궐이사로 선임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겨냥했다. 민 의원은 광주를 지역구로 갖고 있다. 민 의원은 “1980년 5월 광주는 철저하게 고립돼 있었다. 그런데 2023년 10월 다시 광주가 들끓고 있다”며 “이 보궐이사 선임을 방통위가 군부독재 작전하듯이 밀어붙였다”며 “당장 KBS에서 이 보궐이사를 끌어내리라”고 주장했다. 이 보궐이사는 “선량한 시민들이 소수 선동가에 의해 선동당한 것이 광주 사태의 본질”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던 대표적인 보수 인사 중 하나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도 “이 보궐이사는 우리나라 역사 왜곡하기를 밥 먹듯 한 사람인데 공영방송 이사로 추천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을 향해 물었다. 이 부위원장은 “역사 인식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고, 탐사 보도 전문성 등을 고려해 추천했다”고 답했다. 이에 이 의원은 “대통령실에서 (추천을) 요청받았느냐”고 거듭 물었고, 이 부위원장은 “아니다”라고 말한 뒤 “주위에서 추천을 받았고, 종전의 활동을 보고 추천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그동안 무슨 대책 세웠느냐” vs 민주당 “수신료 분리징수 과정 폭력적”
이날 김덕재 KBS 사장 직무대행은 인사말을 통해 수신료 분리징수로 실질적 재정 붕괴 상황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김 직무대행은 “총 재원의 45%에 해당하는 수신료의 분리징수는 KBS의 재정 위기 차원을 넘어 공영방송 근간을 훼손하는 상황까지 나아갈 수 있다”며 “온 국민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혜택을 누리고 대한민국 미디어 시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공영방송의 책무와 재원 구조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이 KBS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신료 분리징수 방송법 시행령이 시행된 이후 수신료 수납률은 8월 96%로, 9월 94.3%로 떨어졌다. 금액으로 치면 8월 23억 6,000만 원, 9월 33억 3,000만 원이 각각 감소한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수신료 분리징수 과정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이 의원은 “시행령 개정 과정을 보면 대법원 판례 등에선 신뢰보호 차원에서 유예기간 등의 장치를 두게 돼 있는데 이번엔 오히려 40일이 10일로 단축되는 등 비정상적으로 진행됐고, 방통위도 상임위원이 2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안건을 처리하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면서 “위원장 혼자 남는 상황을 유도해 전횡을 휘둘러도 되는 반민주적인 정신이 똬리 틀 수 있는 위험한 운영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유럽방송연맹(EBU) 가입국의 수신료 운영 방식을 언급했다. 이 의원은 “수신료 통합징수를 유지하는 나라가 23개국 중 11개국이다. 그 외 나라 역시 방송세 등과 같은 고정 세금, 정부 보조금 등이 혼합된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런 사례에 비추어 봤을 때 이번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는 과도하다”며 “사회적 합의라던가, 시간의 유예 등도 배제하고, 재정과 예산 대책 수립 과정들도 배제해서 폭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김 직무대행을 향해 “KBS는 이런 수신료 분리징수 과정에 대해 (정치적으로) 징벌적인 의미로 진행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더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느냐”고 물었고, 김 직무대행은 “수신료 징수방식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이 공영방송 미래를 위한 청사진과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이에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수신료 분리징수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나왔는데 여지껏 무엇을 했느냐”며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대책을 세우고 대비를 했어야지 응징이라고 어떻게 말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20년 전 KBS가 수신료 인상을 주장했었다. 그때도 지금 수신료 분리징수를 찬성하는 국민의 수만큼 인상에 반대했었다”면서 “당시 저희가 수신료 인상을 위해 KBS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제안한 것 중 하나가 분리징수해서 국민이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 넷플릭스처럼 콘텐츠 퀄리티를 높이라는 것, 회계 분리를 통해 수신료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는데 20년 동안 무슨 노력을 했느냐”고 질타했다.
“뉴스타파 인용 보도 등 편향적 부분 많아”
국민의힘은 KBS의 편파보도, 공정성 부분을 문제 삼으며 공격하고 나섰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뉴스타파 인용 보도를 놓고 SBS와 비교하며 “SBS는 해당 노출이 대선 판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지했는데 KBS는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사실관계 유무 확인이 어려운 폭로성 주장은 보도하지 않는다. 사실 여부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경우 전문가 자문을 거친 뒤 보도한다.’라고 돼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처럼 보도하고, 라디오 진행자인 주진우‧최경영 씨의 발언도 편향적”이라고 지적했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김 직무대행을 향해 “(뉴스타파 인용 보도는) 원본을 못 구해 공방으로 보도했다고 하는데 원본을 못 구하면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공방이라고 하는데 1분 42초 리포트 안에 공방이 7대3인데 이게 제대로 된 공방이냐”고 따져 물었다.
하영제 무소속 의원은 KBS를 비롯한 지상파가 받는 콘텐츠 비용을 언급하며 종합편성채널 등의 시청률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많이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 의원은 “지상파가 시청률과 무관하게 과도한 대가를 받아가면서 방송 생태계 재원의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직무대행은 “재송신료 문제는 사업자와 협상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라며 “사업자에게는 지상파의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지상파 채널 사이에 들어가는 홈쇼핑 채널 등 다른 가치도 적용되기에 지상파의 가치는 시청률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