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전숙희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는 SBS를 포함해 12월 31일로 허가유효기간이 만료되는 21개 지상파 방송사 162개 방송국에 대한 재허가를 12월 18일 의결했다. 심사 전부터 화두가 됐던 SBS에 대해서는 방송의 사적 이용을 금지하는 등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했다.
앞서 방통위는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11월 23일부터 12월 2일까지 8일간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회는 재허가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전문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5개 분야의 전문가 12인으로 구성했다.
심사 결과, 1,000점 만점에 EBS가 700점 이상으로 평가됐고, KBS 1TV 등 159개 방송국이 650점 이상 700점 미만을 획득했다. SBS와 KBS 2TV는 재허가 기준 점수인 650점 미만으로 평가됐다.
650점 미만을 획득할 경우 재허가 거부 또는 조건부 재허가 요건에 해당하며 행정절차법상 청문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에 방통위는 14일 청문 절차를 시행했으며 18일 전체 회의를 거쳐 재허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방통위는 650점 이상 700점 미만인 150개 방송국에 대해 허가유효기간 4년을 부여했으며, 700점 이상인 EBS와 650점 이상 700점 미만인 대구MBC 등 9개 방송국에 대해서는 자사의 타 방송국 허가유효기간과의 일치 요청을 수용해 각각 4년과 3년을 부여했다. 650점 미만인 SBS와 KBS 2TV에 대해서는 조건부 재허가로 3년을 부여했다.
이번 재허가 심사를 앞두고 언론시민사회단체에서는 엄정한 심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국민참여 방송법 쟁취를 위한 시민행동은 7일 성명을 발표하고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 사례를 꼬집으며 이를 형식적 대응으로 이를 방임한 것과 다름없는 방통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었다.
이어 “SBS 재허가 여부를 판단할 청문이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지상파 및 종편 민영방송 사주를 향한 준엄하고 강력한 경고인 동시에 실질적 책임을 묻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방통위의 엄정한 심문을 요구했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청문 절차가 이뤄지는 14일에도 ‘SBS에 대한 재허가 청문은 민방 대주주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돼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청문회가 형식적 절차가 돼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오랫동안 방송의 소유·경영 분리 등을 두고 대주주와 내부 구성원 간 갈등이 있었던 SBS에 대해 4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이는 △SBS 대주주 윤석민 회장에게 변경허가 조건의 불성실한 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고 최소 3개월 간격의 이행실적 보고를 요구할 것, △시기별 이행실적 보고는 반드시 대주주 윤석민 회장이 해야 하며 부실한 이행 시 재허가를 취소할 것임을 경고할 것, △윤석민 회장의 직접 SBS를 쥐락펴락했던 지난 10년, SBS에서 유출시킨 방송 수익과 기능을 제자리에 환원하도록 근본적인 방안을 강제할 것, △지난 10년처럼 방송을 대주주의 사익추구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전횡을 막을 수 있도록 경영 투명성과 상시적 감시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강제해야 할 것 등이다.
방통위가 재허가를 의결한 후 방송독립시민행동은 논평을 통해 요구했던 주요 사항이 재허가 조건으로 부가됐다고 평했다.
SBS는 심사 평가에서 방송광고 등 관련 법령 위반 과다, 투자 효율성을 우선시해 콘텐츠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 등이 지적됐다. 이에 청문 과정에서 자체 심의기준 강화 및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공익성 실현 등 개선 계획을 제출했다.
방통위는 이에 대한 이행 의지를 보인 점을 고려해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하되 ▲최다액출자자 변경 사전 승인 시 제출한 이행각서를 준수하고 소유와 경영분리를 실현할 것, ▲최다액출자자 및 계열사에 유리한 보도, 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방송이 사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할 것, ▲SBS 수익배분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SBS 지주회사와 계열사 간 이전 거래 가격의 타당성에 대해 종사자 대표가 포함된 전담기구의 검토를 거칠 것, ▲향후 지배구조 개편 시 SBS 재무건전성 부실을 초래하거나 미래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할 것, ▲SBS 콘텐츠 경쟁력 제고를 위한 최다액출자자의 투자 등 기여 방안을 마련할 것 등을 관련 조건으로 부가했다.
이에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이로써 공공성과 공익성이 우선돼야 할 방송을 대주주가 사익추구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견제와 감시 장치가 마련됐으며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서 생존의 위기에 처한 지상파 민영방송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초가 마련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천박한 자본의 행태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방통위의 의지가 이후 재허가 조건을 이행하는 과정까지 관철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KBS 2TV는 방송평가 점수가 낮고 방송법령위반 감점이 많았는데, 이에 대해 청문 과정에서 방송평가 미흡사항인 시청률 낮은 시간대 시청자평가프로그램 편성, 주시청시간대 균형적 편성 미흡 등에 대한 시정 및 개선계획을 제출했다.
방통위는 “KBS 2TV가 방송 콘텐츠의 공공성‧공익성 제고 및 콘텐츠 차별성을 통한 공영방송 채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점 등을 고려해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단, 방송평가 미흡 항목 개선계획의 충실한 이행, KBS 2TV 방송 콘텐츠의 공공성‧공익성 제고 및 콘텐츠 차별성 확보 계획 제출 등을 관련 조건으로 부가했다.
한편, 이번 재허가 심사에는 2020년 신설한 ‘국민이 묻는다’를 포함한 시청자 의견을 한 달간 청취했으며, 접수된 총 357건의 의견(중앙 4사 282건, 지역방송사 58건, 라디오 12건, DMB 5건)을 분석해 심사에 반영했다.
특히, 재허가 대상 방송사업자 전체를 대상으로 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인력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개선방안을 마련해 이행하도록 조건을 부가했다.
또한, KBS, MBC, SBS, EBS에 대해서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특정 건강보조식품을 소개하고 인접한 시간대에 TV홈쇼핑에서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이른바 ‘홈쇼핑 연계편성’으로 시청자를 기만하고 비합리적인 소비를 초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품의 협찬 사실을 3회 이상 고지할 것을 조건으로 부가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이번 재허가 심사가 지상파방송 사업자가 방송 환경이 어려워지고 경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공적 역할과 책무를 다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방송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지상파방송사업자들이 재허가 기간 중 사업계획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을 준수할 수 있도록 이행점검 등을 철저히 해 나갈 계획”이라며, “향후 폭넓은 의견수렴과 정책연구 등을 통해 방송매체별 허가‧승인제도, 허가유효기간 설정 방식, 방송 평가 등을 전반적으로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