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장으로 살다

두 개의 심장으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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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방송기술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방송기술저널은 이번 호부터 인터뷰 지면을 대폭 확대하고 ‘인터뷰의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시는 방송기술인들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내는 ‘인터뷰의 기술’을 선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인터뷰의 기술’ 첫회를 장식해 주실 분은, 지난 2월 28일 열린 한국PD대상에서 제작부문 기술상을 수상하신 아리랑국제방송 방송기술팀의 황규익 차장입니다. 황규익 님은 방송기술에 발을 들인 지난 15년 중에서 12년 가량을 편집기술 분야에 매진하셨고, 지금은 동료들에게 편집기술의 베테랑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면서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방송기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황규익 님의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 아리랑국제방송 방송기술팀 황규익 차장

| 우선 이번 23회 한국PD대상에서 기술부문상을 수상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PD협회장님이 저를 추천해주셨는데, 솔직히 저는 이 상이 이렇게까지 큰 상인지 잘 몰랐어요. 받고 나니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네요.

| 짧게 나마 수상 소감을 부탁드릴께요.

시상식을 할 때도 다른 분들은 대체로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서 수상하시더라구요. 반면에 제가 받은 기술부문이나 미술, 음향, 촬영부문은 특정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오랫동안 작업해온 과정을 평가해 주신게 아닌가 싶어요.

|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제 이름으로 상을 받은 거지만 아직도 쑥스럽고 송구스러워요. 다같이 고생하면서 일하는데 저혼자 보상을 받은 느낌이어서요. 이 상은 저와 함께 팀 전체가 받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PD분들이 기술분야에게 준 상이어서 더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 시상식장에는 가족분들도 함께 하셨죠? 가족들이 뭐라고 축하해주시던가요?

사실 시상식 참석할 때까지도 그렇게 큰 상인지 몰랐어요. 그리고 쑥스럽기도 해서 가족들한테는 시상식장에 오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여러 동료들이 와서 많이 축하해주셨죠. 그런데 저희 집사람은 큰 시상식이란걸 알고 있더라구요. TV로 중계되는 시상식을 보면서, 주변분들에게 크게 한턱 내라고 하더군요.

그러잖아도 황규익 님의 작업실로 가는 길에 한 동료가 ‘언제 한 턱 쏠거냐?’고 묻던 차였다.

| 방송사에 입사하시기 전부터 영상과 편집에 대한 관심이 있으셨나요?

제 경우는 꼭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스틸사진을 촬영하는 걸 좋아했어요. 관심이 있다보니 취미생활로 시작을 했는데 그게 좀 발전한 케이스죠.

| 취미가 어디까지 발전된거죠?

처음엔 스틸사진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예전에 … VHS니 8mm니 하던 캠코더가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갖고 놀면서 실제로 찍어도 보고 VHS VTR 두 개 붙여서 녹화하고 편집했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개인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 전문적이지 않은 장비들로 편집하는게 쉽지 않은데 취미를 잘 발전시키신 것 같아요.

기회가 좋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이야 경제가 어렵지만, 그 당시만해도 케이블TV가 개국하면서 인력 수요가 많이 생겨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었거든요. 기회가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 처음 입사하셨을 때는 NLE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였죠?

아리랑국제방송도 이 NLE 시스템을 갖춘지는 3년정도 밖에 안됐어요. 과거에는 쭉 리니어 시스템으로 작업을 했었죠. 그러다가 NLE 룸이 하나 생기면서 다른 분이 먼저 시작하셨고, 1년 정도 후에 하나가 더 생기면서 제가 NLE를 시작하게 됐죠. 사실 이런 특수영상 부분에서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보다 저희 방송사의 역사가 짧은 편이죠. 그래서 앞으로도 좀 더 발전돼야 할 거라고 봐요.

| 리니어 장비를 다루시다가 NLE로 바뀌면서 새롭게 공부도 하셨겠군요.

일단 시스템을 구축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해주는 조건까지는 통상 포함이 되니까 기본적인 매뉴얼은 그렇게 습득을 하죠. 하지만 가장 좋은 공부법은 직접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보고 배우는 거에요. 하지만 그게 쉽진 않더라구요. 타 방송사를 가서 그분들이 작업하시는 걸 보고 배워야 하는데 어깨너머로 배우는건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저는 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하는 Color Correction 과정을 다녔어요. 그게 많이 도움이 됐구요. 결국에는 다른 사람이 작업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보고 흉내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에요.

| 리니어와 넌리니어 편집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보통은 NLE 장비를 처음 운용할 때 리니어 장비로 구현했던 작업을 NLE에서 똑같이 해보려고 많이 시도를 하더라구요. 하지만 NLE를 접근할 때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현실에는 없는 상상속의 무언가를 창조해보는거죠. NLE를 리니어의 연장선으로 보지 말구요. 하지만 실제는 말처럼 쉽지 않죠. (웃음)

   
▲ 황창규 차장님의 특수영상작업실

| 편집기술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텐데요.

리니어, 넌리니어를 막론하고 이 쪽 분야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라면 엔지니어적인 면과 미술가로서의 면을 왔다갔다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어느 쪽에 비중을 더 줄 수도 없는 분야에요. 공대출신이라면 대체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게 예술적인 부분이잖아요. 색감도 잘 모르겠고, 구성과 구도도 난감하구요. 이건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쉽게 어디서 배울 수도 없는 거구요. 저도 오랫동안 이 일을 했지만 사실 아직도 잘 모를 때가 간혹 있어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어딘가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종합편집 기술인은 늘 ‘엔지니어’임과 동시에 ‘미술가’라는 ‘두 개의 심장’으로 살고 있다.

| 국제방송이라서 편집이 특별히 다르기도 한가요?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일단 프로그램들이 거의 다 영어를 사용하죠. 한국인이 영어를 하는 것과 네이티브 스피커가 영어를 하는 것이 표현은 물론이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도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번역하시는 분이나 작가분들께서 거의 다 해주시구요. 저희는 주로 자막을 많이 만들다보니까 오타가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편이에요. 또, 우리가 만드는 포맷과 화면들을 해외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많이 신경이 쓰이죠.

| 아리랑국제방송은 해외 몇 개국에 송출되나요?

총 몇 개국인지 합산은 안 해봤는데… 거의 전세계적으로 송출된다고 보시면 되요. 위성송출을 하다보니 전세계에 커버리지를 확보하고 있구요. 직접 위성수신이 안 되는 지역같은 경우에는 SO를 거쳐서 방송하기도 하죠.

| 해외제작물을 많이 참고하실 수 밖에 없겠군요.

네, CNN이나 DW(도이치벨레), 디스커버리 채널을 자주 보구요, 특히 저는 스테이션ID나 필러를 많이 담당하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유심이 살펴보죠.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유념해서 보시나요?

깔끔한 이미지나 독창적인 배색 등이 눈에 끌려요. 그것들이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를 결정하는 거니까요.

해외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눈이 남다른 황창규 님, 그를 거쳐간 프로그램들이 궁금하다.

| 직접 담당하셨던 작품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잠시 중단된 프로그램인데 The M Wave 라는 가요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HD로 제작했던 작품이었고, 덕분에 많이 공부하게 되면서 실력이 좀더 나아지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 지금 작업하고 있으신 프로그램은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올해 개편을 맞아서 새로 방송된 ‘Contenders’라는 프로그램이에요. 저희가 아직은 HD송출을 실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촬영, 편집까지는 HD로 진행하고 있어요. 나중에 HD로 제작한 콘텐츠를 여러 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카메라로 촬영된 소스에 여러 가지 추가영상을 입히고, 텍스트 자막도 넣고, 여러 가지 그래픽처리를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전체적인 색상 보정까지 맡고 있어요.

| 시상식에서 언급된 Korea’s Nation Brand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Korea’s Nation Brand는 2009년 1월 출범한 ‘국가 브랜드 위원회’가 2009년 3월에 대통령 및 관계부처 장관, 저명인사, 주한 외국인들을 초청해서 열었던 보고대회의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이었구요. 저는 그 프로그램에서 타이틀 제작을 맡았습니다.

   
▲ 봄 개편으로 새로 시작한 ‘Contenders’ 작업에 한창이다.

편집기술의 베테랑인 그에게서 이제 깊은 내공을 전수받을 차례다.

| 오랜기간 종합편집을 하셨으니 나름의 편집철학이 생기셨을 법도 합니다.

음.. 철학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한데. 저는 나름 튀지 않으려고 해요. 전체 프로그램에서 흡수되는 듯한 영상을 만들고 싶죠. 저의 손이 닿는 곳에는 제 개성이 뭍어날 수밖에 없지만 어차피 프로그램은 PD가 이끌어가는 거니 전체적인 의도 속에 튀지 않게 녹아나도록 하는게 저의 편집 철학이라고 할 수 있죠.

| 편집기술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뭘까요?

처음에는 전문적인 지식들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교양이 넓어야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방면에 걸친 지식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있다고 보고 사물을 보는 철학이나 스스로 판단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보여요. 그러면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본인 스스로 발전하고 다른 사람보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 편집기술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우선 신체적으로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걸 느끼는데 그 때는 푹 쉬는 것 밖에 도리가 없어요. 정신적인 면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주의해야죠. 매번 새로운 걸 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새로운 걸 시도해봐야하는데 어느 시점이 돼서 보면 자기도 모르게 똑같은 것, 비슷한 것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귀찮기도 하고 스스로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요구받는 것과 할 수 있는 것과의 차이를 느낄 때 힘들죠. 그걸 이겨내야 돼요. 심리적으로 벽에 부딪혔들 때… 그때도 쉬어야되는 것 같아요. 관련된 작업에서 일단 손을 때고 다른 일을 하면서 하루가 바뀌던가, 그래서 다음 날 일찍나와서 작업을 다시 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되기도 하구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는 나긋나긋한 말투를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묻는 말에 그는 그저 ‘회사에 있는 동안은 그저 책임감 있게 맡은 일을 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말했다. 깜짝 놀랄만큼 대단하고, 부담스러울만큼 뛰어나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계속 손사래를 치고, 자랑스런 수상의 영광조차 기꺼이 동료들의 공으로 돌리는 그였기에 그의 바람은 분명 진심이었을 거라고 믿게 된다.

* ‘인터뷰의 기술’이 만날 인터뷰이를 추천해 주세요. 무대 뒤편 혹은 중계차, 송신소 등 잘 보이지는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다하는 여러분의 동료가 인터뷰의 주인공이 됩니다. ( journal@kobet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