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 프레임에 갇힌 ‘UHD’를 본래의 자리로

[사설] 정치와 경제 프레임에 갇힌 ‘UHD’를 본래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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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재현 방송기술저널 편집주간] 2009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HD 편성 비율이 국내에서 가장 높았던 필자가 속한 방송사는 백억대의 큰돈을 들여서 PDS(제작디지털시스템, NPS로 통용된다)를 구축 중이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필자는 해당 시스템에 투입된 각종 장비와 S/W 관련 이슈 해결의 특명을 받고 NAB에 파견됐다.

전시회 기간 내내 미팅이 잡혀있었던 터라 정작 전시회 자체는 미팅 중간에 틈날 때 부스 하나 정도 겨우 관람하는 수준이던 차에, NHK 부사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감상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본 필자는 혹시나 앉아서 쉴 수 있을까 싶어 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작은 영화관처럼 꾸며놓은 어둡고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서 편안한 의자에 앉으니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스크린을 통해서 나온 영상을 보고는 오던 잠이 달아나 버렸다. 난생처음 본 선명한 화면에 나타난 어떤 행성 혹은 위성(목성 혹은 달로 추정됨) 영상은 적어도 필자에겐 그해 NAB의 하이라이트였다. 10년 후, 도쿄에서 필자는 그때의 그 선명한 영상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NHK 부스가 아닌 NHK 방송을 통해서.

일본이 내년 올림픽 때 8K 방송을 본격적으로 송출한다고 한다. NHK는 이미 작년 12월부터 8K 본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일본은 궁극의 화질이 8K라는 결론을 일찍부터 내리고 집요할 정도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UHD 시대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작년에 이어 올해 2번째로 개최된 4K/8K Technology Expo에서 이러한 의도가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정부·방송사·산업계가 같은 방향성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고, 이것을 일관되고 꾸준하게 진행해 왔다. 이와 같은 일사불란함과 일관성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한다. 왜냐하면 일본이라는 나라(정부)의 일사불란함은 적어도 지금은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지금 다시 한번 우리의 UHD 상황에 대해서 돌아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우선 산업계의 협조다. 일본 샤프에 이어 최근 국내 제조업체에서도 8KTV가 출시되기 시작하고 있고, 공교롭게도 정부 관계자를 통해서 8K 방송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90년대 말 이후의 방송기술 특히, 화질 등 큰 변화를 동반한 발전은 산업계에 의해서 방송사가 끌려온 느낌이 없지 않다. HDTV, 3DTV, SmartTV 등등… 문제는 그에 맞는 콘텐츠와 서비스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UHD 방송시대에는 방송사와 산업계가 각자에게 필요한 조건을 서로 충족시켜주면서 그것이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만족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는 방송사의 의지다. 700MHz대 주파수 배정 이후 주요 방송사들은 앞다퉈 UHD 본방송 송출을 준비해 세계 최초로 UHD 송출을 시작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방송사의 수익 구조 악화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어차피 방송은 UHD로 가게 돼 있다. 어렵더라도 큰 전략을 세워 제작, 편성, 기술의 관점에서 UHD 시대에 대한 준비를 체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최근에 앞다퉈 없앤 UHD 관련 부서는 바로 지금 필요하다. 그때가 UHD 추진이었다면 지금은 UHD 준비에 방점을 찍자.

마지막으로, UHD에 쓰인 정치 프레임을 걷어냈으면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의욕적으로 청산 중인 적폐에 단지 지난 정권에서 추진됐다는 이유만으로 UHD도 탄압 아닌 탄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적지 않다. 하지만 UHD는 정치와는 상관없는 기술의 영역이다. 누군가는 먼저 해 앞서는 것이 바로 기술의 영역이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HD 시대에 이뤄냈던 ‘기술독립’이 UHD 시대의 ‘기술종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일본의 경제 도발로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 정부, 업계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방향을 다시 한번 설정해 하나 돼 나아갈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방송의 영역에서도 일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