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방송의 현재, 100년 슬기로움의 정책이 필요하다

[사설] 80년 방송의 현재, 100년 슬기로움의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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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인 경성방송국이 첫 전파를 띄웠다. 그리고 시간은 80년 넘게 흘러 지금의 방송환경은 매체는 물론 내용까지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바뀌어 있다. 당시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방송 서비스들이 개발되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 하면, 자고 나면 새롭게 나타나는 온갖 뉴미디어들은 늘 방송의 아성을 위협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런 뉴미디어들의 등장은 사실 기술발전에 의한 당연한 산물이거니와 역설적으로 ‘방송 산업이 타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신기루처럼 위태롭다. 우리나라 방송 산업을 둘러싼 방송정책의 현실이 마치 풀 한포기, 물 한 방울 찾기 힘든 사막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MFN 기반의 ATSC 기술은 주파수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로 꼽힌다. 수년 전 치열하게 펼쳐졌던 ‘국내 디지털 방송방식 논쟁’에서도 “유럽식이 비교적 SFN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중요한 논점이 됐을 정도다. 결국 DTV 역시 ATSC 방식이 채택되었고 주파수 배치의 효율성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거기다 지상파 방송이 사용해오던 주파수 중 일부를 DTV 전환과 함께 회수하려는 움직임은 근시안적 정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DTV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여유주파수를 단순히 ‘남아도는 상품’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고화질·고용량으로 방송 서비스가 진화하면서 필요한 주파수 대역도 더욱 넓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하는 결과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들쭉날쭉하며 신중하지 못했던 정부의 정책들도 문제다. 위성방송이 처음 시작되던 시기에는 서둘러 위성을 띄워놓고도 정작 관련법규가 미비해서 수년간 방송은 시작하지도 못했다. 헛도는 위성에 수년간 세금을 퍼부은 셈이다. 올 들어서 3DTV 정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시험방송실시에만 너무 급급했다. 지난 5월 Single Stream 방식으로 시험방송을 시작했으나 여섯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 Dual Stream 방식으로 기술을 변경했다. 결국 단기간에 Single Stream 3DTV를 판매한 가전사들만 이익을 챙기는 꼴이 됐다.

최근에는 형평성 없는 정책결정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종합편성채널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특정 예비사업자에게 유리한 규정을 두어 특혜 논란이 생긴 것이 대표적이다. 이어 경인지역 민방인 OBS의 역외재송신이 3년 넘도록 허가되지 않고 있는 반면, 동일하게 역외재송신 문제가 발생하는 KBS 및 MBC의 경인지사 설립에는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신속하게 허가결정이 난 것도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정부가 방송인허가 정책을 장기적이고 전국적인 큰 그림 아래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이해관계와 단기적인 미봉책 수준에서 바라본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정부가 지금껏 방송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일관된 철학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방송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며, 방송 산업이 다양한 뉴미디어들과 어떻게 어울려서 발전하는가, 또 어떤 기준을 통해 방송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역대 모든 정부에게 던져보자. 그간의 정책으로 정부의 대답을 미루어 짐작하자면 그 대답은 ‘철학 없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콘텐츠 경쟁력 강화’라든지 ‘글로벌 미디어 육성’ 등의 구호 또한 듣기에 좋은 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선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관되고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케이블TV, IPTV, DMB 등 매체는 다양해졌지만 어떤 경우도 정부가 공언한 만큼 번성한 매체는 아직 발견할 수 없다.

 

방송 산업의 발전에는 필연적으로 ‘일관된 방송정책’이라는 든든한 토양이 필요하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기술발전의 산물이지만 국가 전체에 문화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문화에 꾸준히 관여해 온 방송 산업을 단순히 장치산업이나 수상기 판매를 위한 시장정도로 봐서는 곤란하다. 문화적인 배려 없이 단순히 곶감 빼먹듯 이익만 창출하려는 이들에게 80년간 가꿔온 방송 산업이라는 기름진 토양을 쉽사리 맡겨서도 안 된다. 다음 세대를 책임질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말하듯, 방송 산업에도 나라의 100년을 내다보는 슬기로운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