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DI 억지주장의 청부 보고서

[사설] KISDI 억지주장의 청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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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SDI 억지주장의 청부 보고서


  지난 1월 19일에 KISDI(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방송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요내용으로는 “우리나라 방송시장의 저성장의 원인을 낮은 콘텐츠 매력도에 있고, 이는 방송부문의 소유규제로 추가자본 투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유경영 규제를 완화하여 대기업의 자본이 투자되면 방송시장 규모가 1조 6천억원, 고용은 4천 5백명이 늘어나고, 유발효과는 2조 9천억원, 취업은 2만 1천명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지난 연말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갔던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률 개정의 논리적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기색이 역력하다. 한나라당의 억지 주장인 “경제살리기 법”, “일자리 늘리기 법”에 초점을 맞춰 허술한 논리를 전개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방송환경과 광고시장의 구조와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계적인 분석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고서에 나타난 각 매체의 광고시장 규모 추이는 매체환경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신규매체가 도입되고 케이블방송과 같은 기존 매체들이 활성화되면서 지상파방송의 광고가 타매체로 이동하는 것은 어느 수준이 될 때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신규매체의 등장과 활성화는 광고시장을 어느 정도 확대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기존 매체의 광고시장 상당부분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다양한 매체들이 무차별적으로 도입되는 상황에서 광고총량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늘어난 광고가 가능한 매체시장 확대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자본투자로 콘텐츠를 양산한다고 해도 콘텐츠시장 규모와 성공 가능성의 한계 때문에 광고시장 성장도 미미할 것이다. 국내광고시장 확대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수출주도형으로 짜여 있어 기업의 제품판매가 내수보다 수출이 많고, 내수기반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내수확대를 위한 기업의 광고물량 증가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 자본을 투자하면 콘텐츠 경쟁력이 높아지고 방송시장이 확대된다는 논리도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 영화산업에 호황기가 있었다. 과거의 구멍가게와 같은 소규모 투자 때문에 영화 콘텐츠가 경쟁력이 없었던 것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호황기를 맞았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어 생산된 영화콘텐츠도 흥행에 실패하는 사례가 대부분이고, 그 여파로 투자여력마저 잃어버린 투자사들이 많다. 방송이나 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는 어느 수준까지는 투입자본의 규모와 연동되겠지만 흥행이나 높은 시청률 확보는 투입자본과 절대적 종속관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보고서가 추정하는 대로 방송사의 매출 총량이 증가한다고 해도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지상파방송사의 현황을 보자. 현재 운용되고 있는 채널은 5개에 불과하다. 지상파방송망 구축에 필요한 방송주파수가 한정되어 있어 더 이상 지상파방송사가 생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디지털 전환을 핑계로 방송주파수를 회수하여 타 용도로 재배치하겠다는 정부정책이 실현된다면 지상파방송의 채널은 한정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주파수 부족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가용채널이 한정되면 방송시간도 늘어나지 않는다. 채널이 한정된 상태에서 매출 증가는 고품질 프로그램 제작에 투여할 수 있는 자본투자 기회만 늘어날 뿐이다. 따라서 증가된 매출에 비례해서 고용이 산술적으로 늘어난다고 추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도 지상파방송사에 근무하고 있는 인력이 과다하다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MBC본사만 하더라도 20% 정도의 인력감원 계획을 세웠고, 다른 방송사들도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와 같이 세계경제가 동반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도한 측면이 있다. 양질의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다년간에 걸쳐 쌓아온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PD, 카메라, 엔지니어의 축적된 경험과 숙련된 안목, 기술에서 고품질의 프로그램이 탄생한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프로그램 제작 역량 자체를 축소하는 것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한다.

  보고서에 나타난 고용창출이나 경제적 파급효과는 신규매체가 도입될 때마다 나왔던 여느 보고서와 다를 바가 없다. 지상파DMB, 위성DMB, IPTV 출범시에도 장밋빛 전망들이 나왔지만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과 같이 언론관계법을 경제살리기법이라고 포장하거나 새로운 매체 도입, 산업재편의 논리적 근거를 위해 항상 나타나 국민과 사업자를 혹세무민하는 엉터리보고서는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