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BA 2016 유감

[칼럼] KOBA 2016 유감

2625

[방송기술저널=오건식 SBS 뉴미디어개발팀 부국장] 일본인들은 직접화법을 피한다고들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본어에서 맛있는 경우에는 ‘오이시’ 하고 말하지만 맛이 없을 경우에는 ‘맛이 없다’는 표현인 ‘마즈이(不味い)’ 대신 ‘오이시쿠 나이(맛있지 않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Dynamic Korea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어에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표현이 많은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은 그 유명한(?) 정치적 표현인 ‘통석(痛惜)의 염(念)’이 아닐까?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하면서 말한 사람도 면피할 수 있는 책임 회피성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Win-Win이고, 보통으로 이야기하면 Snake가 Wall 넘어가는 소리다. ‘유감’이라는 표현도 사과인지 아닌지 헛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 글 제목인 ‘KOBA 2016 유감’에서 ‘유감’도 필자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나름 적절한(?) 단어 같다. 물론 필자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정도로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그 전에 26회 KOBA 개최를 위해 억수로 노력한 방송기술인연합회에 깊이 감사드린다.

KOBA 전시회에 10년 정도 참여하면서 느끼는 점은 일단 KOBA가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벌써 나이가 26살이나 됐으니, 청소년의 풋풋함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방송 관련 장비 위주의 전시회로 출범한 초기와 달리 ‘초연결 사회’가 된 지금은 장비나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서비스’ 전시회로 변신해야 할 때인 것 같다. CES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전시회들에서는 여러 종류의 Hybrid Service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CES에 자동차가 크게 부상한 것은 ‘가전전시회’였던 CES로서는 엄청난 변신인 것이다. 물론 KOBA와 CES는 참여 대상자에서 일정 부분 차이가 나지만, 외연을 확대하는 전략만큼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변화를 두려워하고 공감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아픈 이야기이지만, 참관객 수가 작년에 비해 조금이지만 줄었다. 그리고 포털의 블로그에 KOBA가 언급되는 횟수 역시 줄고 있다.

이제는 추억(?)의 전시회가 돼버린 ‘ACM SIGGRAPH’라는 전시회가 있다. 올해는 미국 LA 인근 Anaheim에서 개최된다고 하니 없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한창 때의 명성은 좀 퇴색된 것 같다. 그 한창 때인 1990년대에 SIGGRAPH 전시회에 몇 번 참가한 적이 있다. 실험적인 3D Animation 작품을 상영하는 극장에서는, 소위 전문가(일명 ‘꾼’)들만이 느끼는 희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당연하다고 느끼는 ‘바람에 살짝 나부끼는 커튼’을 3D Rendering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한 CG Animation을 보고 ‘꾼’들의 감탄하는 환호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Algorithm으로 커튼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Animation이 Default가 돼버린 지금, 더 이상 커튼의 움직임만으로 공감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시대에 맞는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유사한 이유로 자라섬 Jazz Festival이나 펜타포트 Rock Festival에 참가하는 이유는 ‘꾼’이 아니면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시대정신에 ‘공감’을 하는 것이다. 공감이란 말 그대로 감정을 Share한다는 것이다. 공유경제 시대의 전시회에서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면 Dry한 행사가 될 뿐이다. 정부 초고위층 인사나 국회의원이 다녀가신다고 행사의 질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 참관인들이 고위층 인사를 보러 KOBA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KOBA가 언제부터인지 ‘의전’이 강화되는 행사가 되는 것 같다. 그보다는 ‘방송기술인의 축제’인 KOBA의 성격에 맞는 행사가 더욱 와 닿을 것이다. 어차피 이 축제의 주인공은 ‘방송기술인’이다. 은퇴하신 ‘전설의 방송기술 엔지니어’가 개막식 Tape Cutting에 참여하면 더 폼 나지 않을까? 비슷한 이유로 ‘Pre-Engineer 특별 세션’같이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행사가 더욱 많았으면 한다. 어떤 행사든 Story가 있어야만 오래 살아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서로 ‘자랑’보다는 ‘고민’을 더 할 수 있는 KOBA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필자의 희망에 ‘너나 잘해’라고 하신다면 겸허하게 그 지적을 수용한다. 필자 스스로 그동안 ‘자랑질’에 앞장섰음을 고백한다. 스펙이 화려한 장비나 시스템을 전시하며 ‘자뻑’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Story가 있어서 공감이 되는 서비스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Story가 있어서 공감이 잘 되는 도우미를 더욱 많이 섭외할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도우미들과 행사 전에 격의 없는 대화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