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DTV의 주파수 정책인가?

누구를 위한 DTV의 주파수 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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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DTV의 주파수 정책인가?

/박상호 한국방송협회 연구위원

전세계적으로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서 상당량의 여유 주파수가 1㎓이하의 대역에서 발생될 예정이다. DTV 전환에 따른 여유 주파수 대역의 활용문제는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상이한 주장들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파수관리정책의 변화과정은 크게 1990년 이전(주파수공급 충분), 1990-2000년까지(주파수 수요 급증), 2000년 이후(주파수 부족) 등 3단계의 변화가 나타났다. 현재 전세계의 주파수관리체계는 명령과 통제(Command & Control)에 의해 다루어진 전통적인 면허시스템에서 시장기구방식(Market Model)과 공유방식(Commons) 등으로 전환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현재 디지털 전환 계획을 수립중인 세계 각국의 주파수 관리정책 추세는 점차 시장논리에 입각한 정책적 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영국과 미국 등의 국가들은 경매제와 주파수 거래제 등 시장 기반의 전파관리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국내의 경우 2000년 전파법의 전면 개정과 2005·2008년 부분 개정을 통하여, 시장적 관리체제의 구축을 위한 많은 규정들이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개정 내용 중 주요한 사항은 이전 전파법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파수의 할당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점이다. 주파수의 할당은 특정대역의 주파수를 특정인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행정행위로 정의될 수 있고, 이는 시장 기반 전파 관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700㎒ 주파수 대역은 라디오, TV, 이동통신 등 모든 통신수요를 만족시키는 가장 가치 있는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700㎒ 주파수를 두고 지난 3월 버라이존, 에이티앤드티(AT&T), 구글 등이 참여한 가운데 19조 6487억 원(195억 9000만 달러) 규모로 경매를 진행해 세계적으로도 이 주파수의 활용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 바 있다. 또한 SK텔레콤이 2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로 이용하고 있는 소위 황금대역이라 불리는 800㎒ 주파수보다 700㎒ 주파수는 경제성이 높고 간섭이 적어 효율이 높다고 평가받는 대역이다. 지상파방송사들은 이 대역을 무료 보편성·공익성의 구현과 주파수 효율성 확대를 위해 지상파방송 MMS 도입 및 미래방송을 위해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통신업계에서는 아날로그방송은 전 세계적으로 700㎒ 대역을 쓰고 있어 이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활용하면 로밍 없는 전 세계 단일 통화까지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4세대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큰 이슈이며, 각 국별로 디지털 방송산업의 선점을 위해서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추세이다. 국내의 경우 디지털 전환 완료시점이 초기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지만, 2008년 2월 22일에 입법화된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으로 인해서 2012년 말까지 지상파방송의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을 종료해야 한다.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디지털방송(DTV)의 채널배치 또는 주파수 확보가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익적 보편서비스를 지향해야 하는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주파수 분석과 배치안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계획대로 이루어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8년에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는 1990년 이전에 ‘명령과 통제방식’에 의한 규제기관 중심의 전파관리 시스템을 통해서 DTV 채널배치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방통위는 기존 주파수의 회수 재배치 과정에서 신규나 후발 사업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일부 주파수는 ‘경매제’를 통해 재배치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17일 방송통신위원회의 주파수정책과에서 주관하여 지상파방송사, 관련 협회, 학계, 연구소 등 23명이 참여하는 ‘DTV 채널배치 추진 협의회’ 회의를 개최하였다. 방통위는 2008년 1월에 방통위, 전파연구소, ETRI 등 관계자로 테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여 6월까지 전국 DTV 방송국용 채널 지정을 위한 도상검토와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서 ‘DTV 채널배치(안)’을 발표하였다.

이 회의에서 방통위 박윤현 주파수정책과장은 방통위 자체 TFT 연구결과 국내 TV방송 대역 총 68개 채널(2-69번)중 14-51번채널(38개, 470-698㎒)로 전국의 DTV 방송국의 채널배치가 가능한 것으로 1차 분석되었다고 밝혔으며, 오는 9월까지 DTV 채널배치안을 확정짓는다는 일정을 발표하였다. 현재 지상파방송사와 관련 협회의 요청으로 추진협의회 내에 DTV 채널배치를 위한 실무 연구반이 구성되어 실질적인 지상파방송의 디지털전환에 소요되는 주파수 대역에 대해 기간국을 중심으로 간이국(보조국)까지 포함하여 집중 논의되고 있다.

방통위 주파수정책과의 DTV 채널배치 논의과정에는 몇 가지 큰 문제점이 도출된다. 우선, 지상파방송 DTV 주파수의 실제측량이 가능한 지상파방송사를 배제하고 정부기관인 방통위의 주도하에 DTV 채널배치의 1차 분석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 측량이 아닌 도상검토와 시뮬레이션을 통한 DTV 채널배치 분석자료를 근간으로 올해 9월까지 DTV 채널배치안을 확정짓는다는 언론플레이를 하였다. 두 번째, 방통위 주파수정책과에서 제시한 DTV 채널배치안은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주파수 대역(난시청, 간섭, 사이멀캐스팅, 간이국 등) 및 종료방식(매체별, 권역별 순차, 동시 등)에 따라 소요 주파수가 더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분석이 빠진 상태에서 디지털 전환 이후의 DTV 채널배치안이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국민이 주인인 주파수의 DTV 채널배치안의 수립과정에서 여론 수렴과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영국의 Ofcom에서는 DTV 전환에 따른 주파수 이용방안(470~862MHz)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국민 수렴을 거쳐 여유 주파수 이용 가능성 계획에 대한 상세한 의견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방통위에서는 주파수의 주인이 국민뿐만 아니라 DTV 채널배치의 당사자인 지상파방송사의 의견도 무시한 체로 DTV 채널배치안이 제시되었다. 또한 올해 7월-9월 동안에 채널배치안을 확정짓는다는 일방적이고 수행이 불가능한 일정이 발표되었다.

이밖에도 방통위의 DTV 채널배치(안)의 문제점은 디지털 전환 과정이 무시된 채 전환 이후의 주파수 대역만이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디지털 전송방식이 미국식(ATSC)이기 때문에 가용 주파수 부족으로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주파수 배치 기술에는 동일한 주파수로 전국을 동시에 방송하는 단일주파수망(SFN : Single Frequency Network)과 서로 다른 주파수를 배정해야 하는 다중주파수망(MFN : Multi Frequency Network)이 있다. SFN 방식을 택했을 경우 회수 주파수의 수는 늘릴 수 있으나,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미국식 디지털 전송방식(ATSC)은 SFN을 구성하기에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 국내 방송구역이 권역별로 많고 방송구역간 거리가 짧으며, 동일 방송구역 내에서도 산악지형과 아파트 위주의 주거환경으로 SFN 구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매체, 지형·건물 조건이 외국(미국)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파수 정책을 답습하여 주파수를 분배할 경우 가용 주파수 부족으로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다.

DTV 채널배치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현재 방송을 위해서 자연적·인위적 지형지물을 반영한 시뮬레이션과 실질적인 측량에 따른 정밀한 검증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주파수 수요 산출이 필요하다. 또한 미래방송을 위해서 초고선명TV(Ultra Definition TV), 3차원입체영상TV와 ‘HD다채널이나 UDTV’의 복합형 서비스 등 같은 차세대 방송 서비스를 위한 실험용 주파수의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유료방송환경 속에서 공공성이라는 지상파방송의 역할을 지킬 수 있는 주파수 분배정책 확립(지상파방송 MMS 서비스 등)도 필요 있다. 지상파방송에서 정체성의 근간인 주파수를 빼면 일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방송위의 디지털 전환 사업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서, 방통위는 범국가적인 디지털 전환 사업을 합의된 로드맵 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DTV 채널배치과정에서 범국가적인 디지털 전환이라는 염불보다 여유 주파수 경매 수익이라는 잿밥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방통위가 출범한 이후로 주파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산업적인 논의가 확대되면서 디지털 전환 이후의 잉여 주파수에 대한 경매제 논의가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주파수 활용의 주요한 원리인 공익성을 확대하기 위한 지상파방송정책은 아직까지 요원한 상태이며, 과연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할 주파수가 국가와 주파수 경매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특정 기업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DTV 채널배치안에 관한 의견수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효율적인 주파수 배치가 이루어질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주파수의 주인인 국민과 디지털 전환의 해당 사업자인 방송사보다는 통신사에 포획된 주파수 정책이 입안된다면, 방통위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것이다. 방통위는 주파수의 효율적 이용도 중요하지만, 주파수의 공익성과 지상파방송의 설립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DTV 채널배치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디지털시대에도 무료 보편적·공익적 서비스의 구현이라는 지상파방송의 기본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디지털 전환의 주파수 정책이 확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