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의 방송 제작, 축을 옮겨라

[칼럼] 언택트 시대의 방송 제작, 축을 옮겨라

2745

[방송기술저널=박성환 EBS 정보보호단 단장] 방송 제작 방식을 피버팅(Pivoting) 하라! 이것이 코로나19 시대의 방송사 혁신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 방송사 생존 방안으로 제작과 서비스 방식의 축을 옮겨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축이란 몸의 중심축을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이동시킨다는 스포츠 용어인 피벗(Pivot)에서 따온 것이다. 제작 방식도 전략을 수정 보완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피버팅(Pivoting)이 필요하다. 제작의 ‘축’은 크게 콘텐츠 내용 측면과 기술을 활용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지금이 미디어 융합 기술을 적용해 방송기술의 ‘축’을 옮길 좋은 시기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몰고 온 새로운 경제학이라는 브이 노믹스(V-nomics) 관점에서 방송 서비스의 생존 전략과도 직결된다. 지금은 제작비를 줄이면서도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그래서 제작 기술이라는 한 ‘축’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주변 산업의 변화에서 숨은 시사점을 살짝 살펴보자. 이동 제한으로 글로벌 교류가 축소되니 항공업계와 여행업이 타격을 받고, 이어서 숙박업, 서비스업도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도착지 없는 하늘 여행’ 같은 히트 상품으로 살길을 찾는다. 오프라인 학교 수업이 최소화되자 온라인 원격 교육이 맞춤형으로 성장한다. 고령자와의 접촉을 줄이니 반대급부로 원격 의료 산업이 성장한다. 방송 시장도 이러한 변화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 상황은 어떠했을까? 코로나19 감염으로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제작 중단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 여기고 싶었다. 미국 드라마 ‘블랙리스트’ 시즌7 에피소드19 제작분부터 일부 장면이 애니메이션으로 대체됐다. 이런 일도 빈번해지면 위기가 된다.

국내에도 콘텐츠 제작에 위기가 닥쳤다. 제작진이나 출연진의 의심 증세에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고, 뜻하지 않게 포맷을 변경하며 대응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여행 관련 예능 프로그램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주제가 있는 여행 프로그램인 KBS2의 ‘배틀트립’, 예산에 맞춘 기획 여행 프로그램인 tvN의 ‘더 짠내 투어’ 등이 중단되거나 촬영 무대를 국내로 돌리면서도 예능감은 높여본다. 또, 관객이 없는 공연 프로그램을 상상해 보았는가? KBS의 ‘열린음악회’나 MBC의 ‘쇼! 음악중심’ 같은 음악 프로그램조차 방청객 없이 진행됐다. 관객의 환호가 없는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매력 찾기 아이디어를 모은다.

어린이 공연은 더 심각했다. 공연 현장에서 율동을 따라 하며 하나 되는 재미없이 어린이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EBS는 대응책으로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인 ‘모여라 딩동댕’을 ‘랜선 참여’로 빠르게 전환했다. 시청자를 랜선으로 소환해서 ‘공연 현장에 참여한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시도는 나름 성공이었다. 대형 스크린 배경에 보이던 내 모습이 메인 모니터에 나오면서 어린이들은 마냥 즐거워한다. 요리나 먹방 프로그램도 반쪽이기는 마찬가지였다. SBS ‘만남의 광장’,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서도 휴게소 신메뉴 홍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비중 있는 출연자 섭외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고, 시청자 접점을 넓혀 본다.

방송 제작이란 기본적으로 출연자와 제작진이 협업하며 콘텐츠를 창작해 가는 오프라인 활동인데, 이런 방송의 특성을 무시하고 언택트 제작을 접목하려니 어려운 도전이긴 하다. 그래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는 정도로는 위기 극복이 안 된다. 물론 제작 현장에도 관성의 법칙이 존재해서 하루아침에 새로운 방식으로 갈아타기는 어렵다. 하지만 방송·미디어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의 ‘축’을 바꿔서 새 기회를 얻어야 한다. ‘축’을 바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신 제작 방식’이라는 ‘축’은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훌륭한 무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작 현장에서 언택트 시대의 파도를 넘는 방향은 무엇일까? 방탄소년단의 ‘방방콘(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이라는 랜선 공연 성공 사례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자. 동시 접속자 수 76만 명에 24시간 조회 수 5,000만 건 이상으로 추정 수익이 250억 원 이상의 대박 사례였다.

방탄소년단 온라인 콘서트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세계 공통어인 음악의 힘과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힘이 만나서 만든 성과이다. 음악은 ‘팬들의 심리적 방역’에 명약이 됐다. 이처럼 언택트 시대에 방송사가 준비할 첫 번째 ‘축’은 시청자가 기다리는 ‘약’과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시청자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위안과 감동을 담아야 한다. 두 번째 ‘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을 활용한 제작 방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방방콘’ 공연은 세계 어디에서 접속하더라도 끊어짐 없이 서비스하는 IT 기술의 도전이었다. 방송에서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드러나지 않는 기술의 융합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근간 기술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5G 등이다. 여기에 눈앞에 보이게 하는 대표 기술인 VR, AR, MR 같은 응용 기술의 접목으로 서비스를 구성하자. 기존 고정 관념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 이를테면 VR·AR 기술로는 어린이 프로그램, 의학 관련 영상이나 교육 콘텐츠 만들기가 쉽다거나, VR 기술은 안전 프로그램이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접목에 최적이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방송은 ‘슬기로운 미디어 응용 기술’이 제작 현장과 서비스 기획에서 새로운 ‘축’이 돼야 한다. 이 ‘축’은 지상파 방송의 신성장을 위한 도약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