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화폐

[칼럼] 가상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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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오건식 SBS 뉴미디어개발팀 부국장] 새해가 밝았습니다. 방송기술인 여러분 모두 무조건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연말 필자의 아들이 다음과 같은 개그를 보내왔다. 지금은 방송에도 나와서 누구나 다 아는.
“아빠, 비트코인 하시던데 생일선물로 1 BTC만 주세요…”
“뭐, 1,570만 원을? 세상에 1,720만 원은 큰돈이란다. 대체 1,690만 원을 받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냐?”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적절한 비유라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개그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AI가 아니라 가상 화폐 혹은 암호 화폐라고도 하는 물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미래학자들이 예견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학자들은 주로 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변화에 중점을 둬왔다. 심지어 미래학자들도 가상 화폐에 대해 언급을 안 했을 정도이니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 암호 화폐의 미래는 극히 부정적이다. 이들이 가장 많이 드는 예는 과거 네덜란드 튤립 파동이다. 그러나 가상 화폐 옹호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면들도 있다.

핵심은 화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부터 시작이 될 수 있다. 선사시대 조개껍데기를 화폐의 시초 비스므리한 것으로 본다면, 그리고 지금 다시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하기로 했다면 레알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동네 바지락 칼국숫집이나 조개찜집 사장님이 가장 부자일 것이고, 다들 바지락 칼국수집이나 조개찜집에 가서 먹지는 않고 포장을 해 갈 것이다. 조개를 교환의 매개체로 사용하다가 다른 물건, 일례로 금을 화폐로 사용하게 된 것은 그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한 변혁이었을 것이다. 그런 결정의 이면에는 조개 이상으로 금이란 물질의 가치가 훨씬 크고 보편적이라고 평가했을 것이다.

금본위 화폐 제도가 퇴출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란 것의 본질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한 종이에 대해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상 화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얼마 전 모 방송사 프로그램 중에는 세계의 대표적 의혹 16가지를 선정한 것이 있었는데, 그 의혹 중 하나가 뉴욕에 있는 미연방준비위원회 지하에 어머어마한 양의 금이 보관돼 있는데 이것이 과연 진짜 금일까 하는 점을 방송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는 정권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 설왕설래 말들이 있어왔다. 그만큼 중앙은행은 정치 권력으로부터 그 독립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가상 화폐의 선두주자인 비트코인의 출현 시기가 2008년도 금융위기 즈음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에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소위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현상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인플레가 매우 심한 짐바브웨의 화폐인 짐바브웨 달러에는 100조 달러짜리 지폐도 있다고 한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장이라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짐바브웨에서 점심 한 끼 먹는데 300조 달러를 썼다면 잘 먹은 것일까? 아니면 바가지 쓴 것일까?

이렇게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에 대한 회의가 가상 화폐의 출발점일 수 있다.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공유되면서 폭압적 정권에 대한 항거, 소위 ‘ ~의 봄’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항거라면, 가상 화폐는 기존 중앙은행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앙은행이 계주로 있는 통화계에서 계주인 중앙은행을 믿지 못하게 되면 그 계는 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가 되는 것이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4차산업의 가장 큰 충격은 AI가 아니라 가상 화폐일 수도 있다. AI는 기술적 요인이므로 그 효과가 점진적일 수 있으나,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가상 화폐는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는 프레임의 전환이 될 수 있다. 가령 어느 날 갑자기 원화를 폐지하고 달러로만 거래하라고 한다면 엄청 혼란스러울 것이니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는가? 주조나 부조에서 ‘TAKE’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도 가상 화폐 시스템은 변화하고 있다.

아직 가상 화폐가 현재의 화폐를 대체할 수단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100% 대체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한 번 고기 맛을 본 이상 기존의 화폐 시스템에 대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영화 에서 보면 미래에는 화폐의 단위가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가상 화폐 시스템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안정적 방송 송출만큼 가상 화폐의 진화에도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떻게 진화할 것 같다고는 안 갈쳐줌.

그나저나 아빠에게 비트코인을 달라고 하지 말고 아빠에게 선물하는 센스 있는 아들은 어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