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언론도 공범이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언론도 공범이다
“언론 게이트 철저히 조사해야” “권력과 언론 분리시킬 제도적 장치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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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KBS, MBC 등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SBS까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들어보긴 매우 어려웠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함으로써 공범이 됐다. 이것을 어둠 속에 묻어두려고 한 거다. 반성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시크릿 편’에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한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으로 확산되면서 언론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언론 게이트_긴급토론회11월 23일 오후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박근혜, 비선, 재벌 이제는 언론 게이트다’에 참석한 김영미 PD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특이하게 언론계 비리는 안 나온다”며 “촛불이 언론을 향하기 전에 언론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PD는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장에 가보면 (국민들로부터) 언론도 공범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고, 저 역시 얼마 전 직접 들었다”며 “언론이 지금이라도 어떤 액션을 취할지 논의해야 할 것”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 곳곳에서는 ‘니들도 공범’, ‘각성하라’, ‘너희가 기자냐’ 등의 글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어 “저는 언론사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를 뽑는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용기를 내어 질문하는 기자가 한 명도 없을 수 있느냐”고 지적한 뒤 “예를 들어 ‘언론계 종사자는 청와대에 갈 수 없다’던지 권력과 언론을 분리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역시 “언론 게이트 가장 밑바닥의 기레기 기자들, 각하에게 질문 한 마디 못 던지는 청와대 어용기자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며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커넥션에 이은 언론 게이트 조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언론학회_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간담회같은 날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긴급간담회 ‘최순실 사태, 언론 보도를 논하다’에 참석한 정수영 KBS 기자, 이호찬 MBC 기자도 자사의 보도 행태를 언급하며 반성의 뜻을 표했다. 정수영 KBS 기자는 “촛불집회 취재를 간 취재진 차에 ‘니들도 공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며 “우스갯소리가 아닌 사실”이라고 말한 뒤 “JTBC에서 태블릿 보도를 안 했다면 KBS는 여전히 최순실에 대한 보도를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호찬 MBC 기자는 “공정방송협의회가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는 내부의 논의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른다”며 “현재 MBC 내부에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사측이 부당 전보를 내면 1심, 2심, 3심, 대법을 거쳐 2~3년 뒤에 복귀하고 또 다시 사측은 부당 전보를 내리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어 내부 구성원들이 문제제기 자체에 부담감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기자는 “이번 사태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현재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권력이나 경영진이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영미 PD와 마찬가지로 언론이 권력이나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지닐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긴급토론회의 토론자로 참석한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언론 게이트와 함께 학계에서도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정책국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정부 용역을 했느냐”며 “학계가 정부의 방송 미디어 정책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매일 매일 너무 많은 팩트들이 나오고 있는데 뭐가 중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 요즘에는 ‘내가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며 “‘시스템을 보지 못하고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과 같은 폐쇄적 시스템으로 굴러간다면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열린 토론회와 간담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언론 게이트 내용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동시에 권력 감시자로서 언론이 제대로 서려면 현재의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언론의 독립성을 위한 제도 개편이 수반돼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에서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개정안조차 통과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 언론계와 학계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반영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