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정치 논리’를 집대성한 종합편성채널 선정방안

‘나쁜 정치 논리’를 집대성한 종합편성채널 선정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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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현 정권에게 종합편성채널은 ‘도깨비 방망이’이다. 방통위가 오는 17일 확정하고자 하는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승인 기본계획안’을 보면, 종합편성채널은 국내 콘텐츠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비약시키는 처방이며, 국내 콘텐츠 시장을 활성화시켜 유료방송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시키는 보약이다. 게다가, 국내 방송시장의 다양성을 높여 시청자의 선택권을 확대시키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국내 콘텐츠 산업이 앓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불로초를 얻으려 했던 진시황의 허황한 꿈이 보여주듯,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것은 언제 ‘사기꾼’이나 ‘거짓말’과 밀접한 친화성을 띠어 왔다. 종합편성채널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본계획안에서 말하는 ‘방송 다양성 제고’와 ‘시청자 선택권 확대’라는 처방부터 살펴보자.

 

한나라당이 종합편성채널 신규 도입을 위해 거대신문은 물론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까지 방송뉴스채널을 소유·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언론장악 입법을 발의한 게 2008년 12월이었다. 그때까지 현 정권은 MBC는 물론 KBS마저 완벽히 장악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지상파방송 시장에서 ‘(의견의) 다양성’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철저히 장악돼 ‘관제방송화’했다. MBC에서도 현 정권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보도를 발견하기가 힘들 만큼, ‘초록이 동색’인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 졌다. 현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의식적으로 삼가고 정치적 조언자 구실을 하는 신문들이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한다고 해서 방송 다양성이 높아지고 시청자 선택권이 확대된다‘고 내세우면 그건 저질 코미디에 해당된다.

 

국내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시켜 유료방송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한다는 정책 목표도 사기꾼의 협잡이나 마찬가지다. 지상파방송과 견줘 온갖 비대칭 규제로 범벅이 된 종합편성채널이 새로 등장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바로 방송채널사용사업자로 불리는 PP들이다. PP들의 난립 속에서 나름의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키워온 중견 PP들도 막대한 피해가 불기피하다. 종합편성채널로 PP산업에 흘러들던 방송광고가 급속히 쏠릴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이 국내 외주제작 산업을 진흥하는 정책적 효과를 낳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지상파방송(80%)과 달리, 종합편성채널의 국내 제작 프로그램 편성 쿼터는 40%에 그친다. 나머지는 외국 제작 프로그램으로 채워도 된다는 얘기다. 외주제작 편성 비율도 40% 전후에 이르는 지상파방송과 견줘 현격히 떨어진다. 종편 준비사업자들이 외주제작사들과 별도의 콘텐츠 공급 양해각서(MOU)를 맺었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전의 관례에 비춰보건대, 아마도 외주제작사들은 나중에 ‘팽’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내 콘텐츠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기본계획안의 정책 목표에 이르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수준으로 키운다면서, 종합편성채널의 최소 납입자본금 규모를 “현 종합편성 방송사업자 중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사업 초기 수준의 종편을 고려하는 경우 연간 약 3000억 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자본금 규모마저도 특정 신문들에 주기 위해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종합편성채널이 지상파방송에 주는 타격도 매우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종합편성채널의 먹거리 창출 차원에서 미디어렙 경쟁체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지역 지상파방송에 대한 큰 타격은 불가피하다. 특히 지역MBC의 경우 강제 통폐합과 맞물리며 그 피해가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KBS, MBC, SBS와 같은 키스테이션의 경우도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 방송의 계열PP들의 광고 수입의 일부가 잠식당할 것이다. 미디어렙 경쟁체제가 어떤 형태로 도입되느냐에 따라, 특히 광고 마케팅 비용이 크게 높아지는 방식으로 도입될 경우 이들 방송의 광고 수입 역시 일정한 타격을 받는 게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들 방송은 제작 재원 마련을 위해 중간광고 허용을 요구하는 쪽으로 내몰리게 되고, 광고매출 압박을 타개하기 위해 광고주 쪽에 더 다가가는 방향으로 저널리즘의 막대를 구부리는 강한 유혹에 빠질 위험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 개든 두 개 이상이든 종합편성채널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도입되는 한, 국내 콘텐츠 산업은 엄청난 부작용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이 지상파방송을 장악하기 이전에는 대항마를 키우겠다는 차원에서, 장악한 이후에는 그 필요성이 반감됐음에도 정권의 유지에 혁혁한 기여를 해온 특정 신문들에 보은하고 정권 재창출에 동원하는 차원에서 도입하겠다는 ‘나쁜 정치 논리의 집대성’이 바로 종합편성채널이기 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은 애초 국내 외주제작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측면이 강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늘 도입하고자 했던 ‘외주전문채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종합편성채널 1개를 새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에 글로벌 콘텐츠 산업 육성이라는 허황한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 외주제작산업 육성에 맞게 현행 종합편성채널의 과도한 외국 프로그램 편성 비율 등을 손질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 한, 종합편성채널은 시청자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유전자변형생물체’(LMO)로 남을 것이다. 국내 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파괴시켜, 결국에는 암흑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유전자변형생물체, 그것이 바로 현 정권의 종합편성채널 도입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