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제5기 방심위 출범…쌓인 심의 처리 6만 5천여 건

기약 없는 제5기 방심위 출범…쌓인 심의 처리 6만 5천여 건

536

인사 추천 뒷전 국민의힘, ‘방통심의위원장 인사청문회법’ 발의
언론시민단체 “심의 중단, 정치적 이유로 국민을 볼모로 잡은 것”

[방송기술저널 전숙희 기자] 아동학대, 청부살해 등 최근 잔혹한 내용의 드라마가 이어지고 이를 지적하는 민원이 쇄도하고 있지만, 제5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출범은 요원하기만 하다.

2월 19일 방송을 시작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는 살인, 청부살해, 집단 따돌림 등 폭력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첫 회에서만 무려 세 건의 자살 또는 살인 사건이 나온 것이다. tvN 드라마 ‘마우스’는 극 중 연쇄살인마가 어린아이를 폭행하는가 하면 목이 잘린 시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방송했다.

이에 각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에는 지나친 폭력성과 선정성을 지적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이러한 현상에는 방통심의위의 공백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월 29일 제4기 방통심의위의 임기가 종료됐지만, 제5기 방통심의위의 출범이 늦어지면서 방송 심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통심의위가 수행하는 방송통신 내용 심사는 제4기 방통심의위 임기 종료 이후 방치 상태다.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3월 16일 기준 방송통신 전체 분야의 심의 처리 대기 안건 수는 65,000여 건에 달한다.

방통심의위는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3인, 담당 국회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3인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3인을 지명해 9명으로 구성한다. 관행적으로는 여당에서 6명, 야당에서 3명을 추천해왔다.

현재 인사 추천조차 이뤄지지 않아 제5기 방통심의위의 출범은 요원하기만 하다. 국민의힘은 청와대가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추천했으며, 정 전 사장이 방통심의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설이 돌자 이를 반대하며 위원 추천을 거부하고 있다.

제5기 방통심의위의 출범이 늦어지자 2월 10일 민경중 방통심의위 사무총장은 국회에 편지를 보내 조속한 위원회 구성을 요청했지만, 여전히 공백은 계속되고 있다.

이원욱 과방위원장은 2월 23일 여야 간사에게 위원 추천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3월 초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를 추천 명단으로 냈다. 지난 1월 말 정민영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에 이어 공식으로 2명을 추천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의힘이 추천을 거부하자 이 과방위원장은 3월 11일 보도 자료를 내고 “국민의힘은 현재까지 방통심의위원 추천 인사를 확정하지 못하고 명단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며 “방통심의위가 본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야당의 조속한 방통심의위원 추천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위원 추천은 뒤로 한 채 방통심의위원장 인사청문회법을 발의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은 방심위원장을 국회 인사청문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박 의원은 해당 법안을 ‘정연주 방지법’이라고 명명했다. 과방위는 17일 해당 법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의한 인사청문회법은 방통심의위의 성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실은 이번 법안에 대해 “방통심의위원장은 처분 권한이 없는 민간 독립기구의 장으로서, 민간 기구의 장을 국회 인사청문의 대상으로 규정한 사례가 없다는 측면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검토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방통위와 방통심의위의 관계를 고려할 때, 방통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이미 존재하므로 방통심의위원장에 대해 별도로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석전문위원실은 “방통심의위는 구 방송위원회의 직무에서 방송심의 기능의 일부를 이어받은 민간 독립기구”라며 “심의위원 회의 위상을 민간기구로 만든 가장 주된 이유는 심의 업무의 공정성을 위한 것이다. 심의 업무는 무형의 가치를 표현하는 콘텐츠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이기 때문에 특정 정치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판단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제4기 방통심의위의 강상현 위원장은 임기를 마치고 이임사를 통해 방통심의위의 과제로 위상과 역할에 관한 인식 개선을 꼽으며 “국회나 정부 쪽에서 방통심의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힌 바 있다.

강 전 위원장은 “특히, 정치권에서는 잘못된 인식에 기초해 심의의 공정성과 심의 업무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며 “정부의 어떤 부처도 방송과 통신의 심의 업무를 가져가려고 해서도 안 된다”면서 민간 독립기구로써 방통심의위 업무의 독립성을 위한 법적·경제적 개선을 촉구했다.

또한, 수석전문위원실은 현행법상 방통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 할 수 있고, 국회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반면 방통심의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할 수 없고, 국회에 출석해 의견진술을 할 권한도 없다는 두 기관장의 차이를 설명했다.

다만, 수석전문위원실은 방통심의위가 일차적 심의 결정 권한을 갖고 있고, 방통위는 방통심의위 결정에 대해 최종적인 법률상의 처분을 하게 된다는 점 등을 볼 때 “그 성격이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은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의 의결을 전제로 한다. 향후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회법·인사청문회법 개정안 논의와 상임위 검토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전망이다.

최종선 전국언론노조 방심위지부장은 “방통심의위원 인선이 미뤄지는 건 정치인들이 이 자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치적인 이유로 국민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나 허위조작정보는 시의성이 중요한 안건이어서 심의 기능 중단 기간이 길어질수록 국민적 피해가 커진다”고 꼬집었다.

방통심의위 내부에선 향후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추천 권한을 제때 행사할 수 있도록 기한을 설정하거나, 다음 기수를 구성할 때까지 전임 위원의 임기를 연장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