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경영진의 자가당착(自家撞着) 혹은 무한도박(無限賭博)

[사설] MBC 경영진의 자가당착(自家撞着) 혹은 무한도박(無限賭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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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는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를 타사 대비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주말방송 시간대를 8시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MBC 경영진은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뉴스 시청률이 지상파 3사 중 꼴찌가 된지 오래며, 시청자들이 주말에는 8시 뉴스를 더욱 선호한다는 조사결과를 근거로 편성변경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MBC 경영진이 내세운 이런 이유는 일견 타당한 듯하다. 3사 대비 최저의 시청률, 주말에는 8시 뉴스를 선호한다는 조사결과. 순진하게 ‘우선 변화를 줘서 상황을 반전시켜 보자’는 정도의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변화의 대상이 방송사의 메인 뉴스프로그램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원론적이지만 방송 뉴스의 본질은 그날의 소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있다. 그리고 빠르고 정확한 뉴스의 전달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편성 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송뉴스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시청자에게 전달되야 한다는 일종의 약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방송편성의 대표적 원칙 중 하나인 ‘시청취의 습관화’를 말하는 것이다. 매일 방송되는 프로그램일 경우, 그 프로그램은 매일같이 동일한 시간대에 편성시켜서 시청자들에게 일정한 ‘시청습관’을 형성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전략이 이른바 ‘줄띠 편성(Strip Programing)’이며,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줄띠 편성 프로그램이다. 또한 각 방송사의 뉴스에는 일정한 논조라는 것이 있어서 시청자는 익숙한 논조의 뉴스프로그램을 습관적으로 꾸준히 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의 메인 뉴스프로그램이 주말 이틀 동안만 다른 시간대에서 방송을 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평일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방영되던 뉴스프로그램의 시간대가 달라지면 시청자의 시청습관에 불편이 생길 것이며, 이 불편이 시청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기존에 경쟁하던 뉴스프로그램에게는 더이상 경쟁자가 없는 독점적 위치를 부여하게 되며, 뉴스 시청자는 동일 시간대 채널선택권을 제한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말 뉴스데스크의 시청률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경영진의 발상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문스럽다.

 

이번 MBC의 가을개편안의 또다른 논란거리는 국제시사교양 프로그램인 ‘W’와 보도 프로그램인 ‘후 플러스’를 폐지한다는 결정이다. 이 두 프로그램이 페지되면 MBC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시사매거진 2580’과 ‘PD수첩’만 남게 되고, 평일 프라임 타임대 오락프로그램 비율은 53%에서 57.6%로 급상승하게 된다. 이는 상업방송인 SBS의 56.3%보다 높은 수치이다. MBC 김재철 사장은 공정방송협의회에서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시청률부터 올리고 난 뒤에 공영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는데 이는 공영방송의 사장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비록 공영방송답지 못하게 광고수익에 기댄 재원구조가 한계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영방송은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지 시청률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둘 수는 없다. ‘시청률부터 올리자’는 발언 자체가 스스로 공영방송으로써의 소임을 잊어버렸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보도·교양 프로그램의 시청률 하락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전문성 강화가 아닌 폐지라는 카드을 들고 나섰다는데서 MBC 경영진의 근시안적 처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후 플러스’는 ‘뉴스 후’로부터 시작해서 4년 이상, ‘W’는 5년 이상 방송되면서 자타공인 독보적인 정체성을 구축한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말하자면 이 두 프로그램은 MBC의 장기적인 스테이션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될 것은 전혀 없는 콘텐츠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이 이 두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MBC의 보도·교양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을 논하기 이전에 MBC의 값진 콘텐츠를 상실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하겠다.

 

위의 두 가지 상황들을 미루어 봤을 때, 이번 MBC의 가을편성안을 결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름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구축한 세 프로그램의 편성이 의도적으로 훼손된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경영진은 파격이라고 이야기하고, 노조는 도박이라고 이야기하는 MBC의 가을개편. 김재철 사장은 “책임은 내가 질 것이고, 실패한다면 제가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MBC 구성원에게는 그가 나가지 않는 것 만큼이나 그가 나가는 것도 모두 걱정거리일 것임에 분명하다. 그가 나간다는 것은 곧 이번 편성이 실패한다는 것의 반증이 될 것이며, MBC에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남은 후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