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는 살아있다

[사설] 라디오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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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라디오는 살아있다

지난 11월 23일 오후, 북한의 폭격으로 인해 연평도에 설치된 일부 전력·통신시설이 피해를 입었다.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폭격으로 인해 화재와 정전이 발생하면서 통신시설에 이어진 전력공급 시설이 일부 손실됐다. 전력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이동통신 기지국은 단 1곳만 운영됐다고 한다. 개인용 통신기기가 보편화된 오늘날이지만 3G 및 WiFi 신호를 중계할 기지국이 동작을 멈추니 최신 스마트폰 조차도 무용지물과 다름없어진 그야말로 재난상황이었다. 반면, 미처 섬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대피소에 기거하면서 TV와 라디오를 통해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다고 한다. 비록 정보전달이 더디고 내용또한 다양하지는 못하지만 고전적인 정보수집 도구로써 TV와 라디오 같은 방송의 힘이 다시 한번 입증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TV와 라디오에 대해 ‘재난방송매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두 매체에 대한 평가는 다시 극명하게 달라질 수 밖에 없다. TV는 영상과 음향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고정식 수상기의 경우 110V 혹은 220V의 전력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동수신이 불가능하고, 침수나 지진 등으로 인해 전력공급이 중단될 경우에도 전혀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반면, 라디오의 경우는 들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다 전력소모가 적어 배터리만 공급되면 장시간 동작하므로 이동수신이 가능하고 재난상황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매체이다. 재난방송매체로서 라디오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특징이다.

최근 전세계적인 기상이변과 예측하지 못한 군사적 긴장 등으로 인해 재난방송매체로서 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라디오는 가장 오래되고 단순한 형태의 방송매체인 반면, 채널 급증으로 인한 혼신 증가와 주파수 부족, 고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전력을 소모하며, 오로지 음향만 전달할 수 있다는 매체적 한계를 극복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전세계적으로 라디오를 보다 자원효율적이고 정보집약적인 매체로 만들기 위한 연구가 20여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돼 왔다. 현재는 아날로그 라디오의 여러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전송방식이 등장해서, 이미 여러 나라에서는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라디오 디지털 전환은 더디기만 하다. 오디오 코덱과 전송기술은 이미 다양하게 발전해서 디지털 라디오방송의 기술적 기반이 조성됐지만, 타 미디어에 비해 그리 크지 못한 산업적 효과가 디지털 라디오의 저해요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가 지난해부터 디지털라디오 비교실험방송을 실시하고 있지만, 어떤 전송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주파수의 분배가 달라지고, 방송사의 장비교체 비용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며, 가전사들의 이해관계도 엇갈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전송방식이 쉽사리 결정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 때문인지 정부도 비교실험방송을 거친 후 지상파 TV방송의 디지털화가 완료되는 2012년 이후에나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산업적인 논리로만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라디오 방송은 텔레비전 방송에 비하면 규모도 적고 산업적인 파급효과도 미약하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로 자리매김해왔으며, 각 지역·종교 등 텔레비전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룰 수밖에 없는 분야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재난방송 및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통한 정보격차 해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고 서민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산업적 효과에만 몰두하지 말고 공익성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을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