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정부가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을 방송과 통신에 나눠 분배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지상파 방송사는 정부의 700MHz 주파수 정책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부의 700MHz 주파수 정책이 수도권과 지역 간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5월 19일 열린 주파수정책소위원회에서 국제적인 추세와 경제성, 공익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과 이동통신 상생을 위해 ‘균형 있는 분배’를 추진하겠다며 700MHz 주파수 ‘4+1’ 분배안을 내놓았다.
채널 1개당 6MHz폭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해 KBS 1TV, KBS 2TV, MBC, SBS 등 4개 채널에 700MHz 주파수를 분배하고,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MMS)를 하고 있는 EBS에는 향후 DMB 대역에서 1개 채널을 확보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에 따라 이동통신에 40MHz폭을 할당하고, 지상파 방송사에 24MHz폭만 분배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미래부가 내놓은 방안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DMB 대역을 활용한다면 기존에 각 가정에 설치된 디지털TV(DTV) 안테나로 UHD 방송 시청이 불가능해 전 국민이 안테나를 새로 설치하는 심각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는 어렵게 찾아온 난시청 해소 기회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서 정부가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고 난시청을 해소해야 할 의무는 방기한 채 일부 통신사의 이익만을 챙겼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도 지상파 방송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여야 의원들은 EBS에만 DMB 대역을 분배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EBS에 DMB 대역을 배정하는 것은 사실상 EBS에게 UHD 방송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똑같은 지상파 방송사인 EBS에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공익성이 강한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고 해서 EBS에 DMB 대역을 배정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전성배 미래부 전파정책국장은 “EBS에 DMB 대역을 분배한 뒤 UHD 방송에 필요한 송수신 설비 등에 사용될 약 500억 원을 별도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KBS 관계자는 “현재 DMB로 사용 중인 VHF 대역은 전파의 특성이 DTV와 맞지 않기 때문에 유럽도 디지털 전환을 하면서 VHF 대역의 TV 방송을 거의 폐지했고, 우리나라도 디지털 전환 당시 DTV의 채널들은 UHF 대역인 470~698MHz로 한정짓는 등 VHF 대역으로의 DTV 채널 재배치를 전혀 고려치 않았다”며 DMB 대역의 사용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김광호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관련 토론회 자리에서 “이미 보급된 DTV 수신 안테나는 UHF 대역만 수신 가능하므로 DTV 예비 대역을 사용할 경우 방송 수신자들은 VHF 수신용 안테나를 추가 구매해 2개의 안테나를 동시에 사용해야 하고, 두 가지 대역을 함께 지원하는 복합 안테나가 개발되더라도 이 역시 안테나 교체라는 부담이 있고, 복합 안테나는 개별 안테나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신 가능 지역이 축소될 수 있다”며 지적한 바 있다.
또한 VHF High 대역은 향후 디지털 라디오 방송 추진을 위해 활용할 예정이어서 UHD 방송용으로 전환 시 디지털 라디오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뿐만 아니라 5개의 채널로 시작하는 단계적 지상파 UHD 방송은 지역 차별을 조장할 수도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5개의 채널만으로는 전국적으로 주파수 혼신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도시 이외 지역에서는 UHD 방송이 불가능해 지역민의 시청권이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사는 이 같은 입장을 거듭 밝히며 6월 5일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지상파 UHD 정책협의회에 불참했다.
아무런 해결점도 찾지 못한 채 끝을 맺은 주파수소위에 이어 지상파 UHD 협의회도 지상파 방송사의 불참으로 700MHz 주파수 정책 논의는 무산됐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미래부뿐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지상파 UHD 방송의 단계적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700MHz 주파수를 방송과 통신이 나눠 쓰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편 미래부는 올해 상반기 내에 방통위와 정책협의회, 지상파 방송사 의견 수렴, 국회 논의 등을 거쳐 최종 정책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과 국회 논의 등에서 상당 기간 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