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방송계를 달군 현안

[송년특집] 2014년 방송계를 달군 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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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1월 카드 3사 정보 유출 사건으로 시작한 불안한 출발은 4월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졌다. 7월 광주 헬기 추락사고로 시작된 하반기는 10월 경기도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를 지나 12월 베링해 오룡호 침몰 사고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달이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지상파 방송업계도 2014년은 숨 가쁜 한 해였다. 

새해 벽두 지상파 MMS 시험방송과 지상파 UHD 실험방송이 시작되면서 서광이 비추는 듯했으나 700MHz 주파수를 둘러싼 통신업계와의 대립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끝을 맺지 못했고, 낙하산 인사에 불복했던 방송사 직원들의 저항은 바위 같은 권력 앞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이가 어른의 거울이듯 오늘은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다. 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올 한 해를 마감하며 지상파 방송업계를 뜨겁게 달군 현안들을 정리해 봤다. 

 

세월호 참사와 재난망 알박기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발생한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는 꽃다운 28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수개월 지속된 수색작업으로 수많은 국민은 두통, 불면, 우울증을 호소하며 ‘세월호 증후군’에 시달렸고, 사고를 통해 대두된 안전불감증 문제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국가재난안전망(이하 재난망) 구축을 서두르게 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재난망의 통신기술표준을 롱텀에볼루션(PS-LTE) 방식으로 결정한 가운데 국무조정실 산하 주파수심의위원회는 지난 11월 14일 재난망 용도로 활용할 주파수를 700MHz 대역 20MHz 폭(상향 718~728MHz, 하향 773~783MHz)으로 확정했다. 이 같은 결정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700MHz 주파수를 통신이 아닌 방송에 우선 할당해야 한다는 요지의 공청회가 있은 지 3일 만의 이뤄진 것이어서, 남은 주파수 대역을 통신용으로 할당하려는 미래부의 ‘재난망 알박기’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분분했다.

   
지난 11월 11일 ‘700MHz 대역 용도’ 관련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처럼 서둘러 추진된 재난망 사업은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이견을 낳고 있다. 먼저 재난망의 기술 방식인 PS-LTE로 단말기 간 직접통신을 구현하려면 단말기에 새로운 칩을 넣어야 하는데, 이 칩이 국내에서는 개발 불가능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다음으로 한 단말기가 이웃한 단말기들의 신호를 중계하는 기능을 갖추려면 별도의 중계기가 개발돼야 하는데 아직 제품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단말기로 그룹통신을 할 경우 PS-LTE는 즉각 응답성이 테트라 방식보다 떨어지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과정이 어찌됐든 이제 700MHz 대역 전체 108MHz 폭 중 남은 88MHz 폭을 방송과 통신 중 어느 쪽이 차지할지가 관건이 됐다. 지상파 방송업계로서는 전 국민에게 무료 보편적 UHD 전국방송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남은 주파수 대역을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지상파 UHD 전국방송에 필요한 11개 채널 혹은 최소 9개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채널당 6MHz 폭씩 총 66MHz 혹은 54MHz 폭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지상파 UHD 실현 노력과 기술표준 

700MHz 주파수 논쟁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방송의 편에 서는 이유는 다름 아닌 ‘공익’이라는 가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방송은 전 국민에게 무료 보편적 시청권을 제공해야 할 공적책무를 안고 있고, 거기에는 질 좋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초고화질(UHD) 전국방송도 포함된다. 하지만 700MHz 주파수를 획득하기 위한 통신업계의 방해공작은 단지 주파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상파 UHD 상용화 관문인 기술표준을 저지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미래부 산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지난 7월 2일 총회에서 지상파 UHD 표준을 부결시킨 데 이어 10월 13일 총회에서는 이례적으로 ‘잠정표준’으로 의결했다. ‘잠정표준’의 기술을 가지고는 UHDTV 생산은 물론이고 UHD 관련 방송산업의 개발·확산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부결이나 다름없다. 회비에 비례해 투표권을 부여하는 TTA의 의결방식에 계열사까지 동원하고 있는 재벌 통신사들이 지상파방송의 미래까지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UHD 방송을 하지 않고서는 지상파방송은 미래 미디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을 뿐 아니라 향후 방송 서비스의 지형과 방송 산업구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 국내 지상파 UHD가 세계 최초로 실험방송을 성공으로 이끌고, 지상파방송의 콘텐츠 경쟁력이 유료방송을 압도하는 것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UHD 관련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700MHz 주파수 확보와 함께 기술표준 채택은 시급한 상황이다.

 

지상파 재송신, 제2국면 

2014년 12월 지상파 재송신 계약이 만료되는 티브로드를 시작으로 지상파방송사와 케이블TV 간 재송신료(CPS) 협상이 진행 중이다. 올해 협상에서 지상파방송사는 CPS를 가입자당 월 280원에서 4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케이블방송TV협회가 지난 11월 25일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와 위성방송(KT스카이라이프)을 포함한 공동협상 △CPS 대가산정 방식 논의 등을 요구하는 공문을 지상파 3사에 보내 양자 간 타결점을 찾기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앞서 11월 18일 재송신 분쟁으로 인한 블랙아웃 등 시청자 이익 침해가 우려되는 경우 △당사자의 신청 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게 하는 직권조정제도를 도입하고 △올림픽·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 등 프로그램의 공급·수급과 관련된 분쟁 발생 시 당사자 신청에 따라 조사 심문 등 준사법적 절차를 거쳐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재정제도를 신설하며 △방송유지·재개명령권을 신설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시장 질서에 어긋나는 방통위의 개입으로 향후 협상이 난항을 거듭할 경우 지상파로서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재송신료 논쟁에 있어서는 지상파방송을 이용한 유료방송의 부당이득이 문제로 자리하고 있다. 지상파가 방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비용을 들여 개편을 단행하거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과 달리 유료방송은 이 콘텐츠를 자사에 유리한 채널에 편성하거나 탈락시키면서 가입자들로부터 수신료를 챙기는 모순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시청률이 높은 지상파 채널 사이사이 TV홈쇼핑 6개 채널을 배치해 연간 1조 원의 수익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지상파에 대해 자의적 해석에 의한 공익성을 요구하는 반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게는 수신료의 25%를 지불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통합방송법 밑그림 

미래부와 방통위가 공동연구반을 꾸려 지난해부터 밀실에서 논의가 진행됐던 통합방송법안이 10월 28일과 11월 28일 두 차례 공청회를 통해 대략적인 밑그림이 공개됐다. 밀실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방송업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의 최대 관심사였던 특수관계자 합산규제는 1차 공청회에서 제외됐다가 2차 공청회 시 제도를 도입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지난 11월 18일 ‘유료방송 규제체계 정비법안 공청회’가 방송회관 3층 회의장에서 열렸다.

‘특수관계자 합산규제’는 IPTV(올레tv)와 위성방송(KT스카이라이프)을 동시에 소유한 KT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것으로, 미래부는 점유율 제한 비율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는 1안과 점유율제한을 33%로 하되 3년 후 일몰(재검토)하는 2안, 총 두 개의안을 제시했다. 둘 중 어느 안이 채택되더라도 현재 양 유료방송 사업을 합쳐 가입자 30%에 육박하고 있는 KT로서는 가입자 확대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해 KT 측은 “합산규제 법안은 소비자의 선택권과 공정경쟁을 침해하는 법안”이라는 기본적 입장과 함께 “33% 합산규제는 사실상 KT를 고사시키기 위한 법으로, 이것이 처리도리 경우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는 강수를 두고 있다. 반면 합산규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방송산업의 가치는 다양성과 공정성으로, 위성방송 역시 소유제한, 최대출자행위, 시청점유율 등을 3분의 1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는 방송법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수관계자 합산규제법안은 12월 17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재상정됐다. 앞서 12월 2일 처리될 예정이었던 이 법안은 사전규제 방식이나 33% 점유율을 두고 위원들 간 이견차가 커 처리되지 못했으며, 특수관계자 규정을 우선 도입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져 미래부가 추진하는 통합방송법 시행에 앞서 방송법과 IPTV법 개정안이 우선 처리될 전망이다.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 난항 

방통위가 8월 3기 정책과제를 발표하면서 지상파 광고총량제 연내 도입을 밝힌 가운데 12월 중 입법예고한다는 전망이다. 이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의 연장선상에서 제시된 안으로, 그동안 지상파방송에만 엄격하게 적용된 광고규제를 일정 정도 완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광고총량제 도입을 통해 방통위는 현광고 6분, 토막 광고 3분, 자막 광고 40초 등 유형별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지상파 광고제도를 앞으로는 전체 광고 허용량만 정해 주고, 종류·횟수·시간 등 세부사항은 각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총량제가 도입된 유료방송의 경우 광고 총량이 평균 10분, 최대 12분으로 책정돼 있는 가운데 지상파는 광고 독점 우려가 있는 만큼 광고 허용량을 최소화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지상파 광고총량제와 관련해 종합편성채널과 PP 등 유료방송업계가 반발하는이유는 지상파가 토막·자막 광고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프로그램 광고를 더 많이 판매하게 돼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수익이 급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한정돼 있는 방송광고시장에서 지상파에 광고가 몰리면 그들의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광고’가 없는 상태에서 광고총량제의 도입은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수익을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의 판단이다. 침체된 광고시장을 살리고 시청자 복지를 지키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광고총량제와 함께 중간광고를 허용하고, 우려하는 시청자 복지 문제는 그 수익을 통해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4일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제3기 방송통신위원회 비전 및 주요 정책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