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경영진이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 강화’, ‘수익성 중심의 조직 재편’ 등을 명분으로 교양제작국을 해체하고 정부와 회사에 비판적인 PD와 기자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를 발표한 지 한 달이 훨씬 지났다. 지금도 MBC 내부에서는 거의 매달 정직, 징계, 부당전보 등 일련의 ‘축출’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한겨레21>이 입수·보도(제1039호 표지이야기 ‘치밀하고 교묘한, MBC 해고 프로젝트’)한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의 정당성을 법무법인에 자문한 자료를 보면 MBC의 인사발령은 여지없이 ‘축출’이라고 명명되기에 충분하다. MBC 경영진은 내부 인사평가 시 매겨지는 최저등급인 ‘R’ 등급을 통해 직원을 징계해고하기 위한 절차와 방안을 끈질기게 모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법무법인이 내놓은 ‘불가’라는 답변은 필시 당연한 결과지만, 이번 사안에서 문제는 ‘저성과자’라를 규정하는 방식이 전혀 정당하지 않다는 데 있다. MBC의 인사평가는 김재철 전 사장 당시 절대평가 방식에서 강제할당(상대평가)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후 이 강제할당으로 인한 직원들의 피해 사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부서 막내나 취재차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다친 직원, 안식년을 앞둔 고참 사원이 R 등급을 받았다는 얘기는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그런데 ‘국정원 댓글 조작 의혹 사건’ 취재중단과 통편집에 반발한 <시사매거진 2580>의 김연국 기자나 <불만제로>에서 ‘잇몸약의 배신’으로 한국PD연합회가 주는 작품상을 수상한 이우환 PD 등이 R 등급을 받은 대목에서는 급기야 분노가 차오른다.
MBC 경영진은 대외적으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역량 집중’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핵심역량을 발휘할 전문 인력을 얼토당토않은 부서에 배치함으로써 오히려 역량을 약화·분산시키고 있다. 이번에 유출된 증거자료는 사측이 정부와 회사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직원들을 용이하게 징계·해고하려는 속내를 여실히 증명한다. 아울러 그들이 징계·해고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근거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부실한지를 보여준다.
MBC의 추락은 곧 민주주의의 후퇴를 상징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 인사’에서 시작된 정권의 언론장악이 MBC 사태에서 정점을 찍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거시적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MBC 내부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오늘의 사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지난 12월 9일 언론인단체와 시민단체를 비롯해 학술·종교·문화예술단체 등 39개 단체는 결국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MBC를 바로 세우고자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제 방송사업자를 관리·감독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칼을 뽑고 MBC 경영진에게 공적책임과 공익성을 따져 물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