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 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는 한편, 방송·통신 간 균형 발전과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방송·통신 관련 인허가 업무, 각종 정책 수립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주요 업무는 방송·통신·전파연구·관리에 관한 사항 등으로, 기존 방송위원회의 방송 정책·진흥·매체 정책과 정보통신부의 통신·전파·정보보호·인터넷 등 양 기관의 핵심 기능을 두루 포괄하게 된다. 방통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이 2인을 임명하고 그중 1명을 위원장으로 한다. 위원 3명은 국회에서 추천하며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의 교섭단체가 1명을, 그 외 교섭단체들이 2명을 추천한다.
방송은 오래전부터 신성 불가침의 ‘소도’역할을 부여받아 왔다. 인간의 역사와 비교해 엄청나게 유구한 시간을 내재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은 언론과 동일시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으로부터의 독립을 전제로 출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방통위의 역할은 단순히 정책을 입안하고 수립하여 추진하는 단순한 정부부처가 아니게 된다. 그런데 최성준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방통위의 기본적인 전제와 목적에서 완전히 부합되는 인사다. 시민단체들은 최 후보자의 전문성을 문제로 삼고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최 후보자가 방송의 독립, 더 나아가 언론의 독립을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인사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불만도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말대로 부적격 인사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법관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을 들어 도덕성에 관해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덕성마저도 기대에 어긋났다.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관용차 사적 유용 등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을 볼 때 ‘청백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지적이다. 뼈아플 만큼 타당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방통위 수장으로서 독립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최 후보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관해 공감하는 발언을 두고 여당 의원들의 호통이 이어지자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여당의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주눅이 들어버린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마치 임기 3년의 예고편을 보는 것과 같았다. 맞는 말이다. 독립성의 훼손과 더불어 여당 의원들의 흔들기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 그 장면, 법관 출신의 꼿꼿함과 공명정대함, 정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 지나친 기대였을까. 이러한 흔들림의 근원은 사법부의 인력 빼가기와 관련이 깊다. 현 정부는 벌써 2명의 고위 법관을 행정부의 요직에 임명한 전례가 있는데 이는 상당한 비판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자 삼권분립의 체계가 견고하도록 설계한 국가다. 그런데 사법부가 행정부의 산하로 들어가기 위해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상황이 계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삼권분립의 확고한 체계와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평생 법관제를 도입했지만 이번 최성준 후보자의 방통위원장 행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 되어버렸다. 씁쓸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사법부의 행정부 바라기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면면은 흔들기에 취약한, 나약하고 독립적이지 못한 행정부의 ‘장’을 양산할 것이다. 마치 컨베이너 벨트 위에서 자신이 간택되기를 바라는 상품처럼, 이제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그 폐허에는 선택되길 바라는 엘리트만 남을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이처럼 전문성도, 도덕성도, 독립성도 없는 인물을 방통위원장에 앉히려는 것은 결국 방통위를 정권의 입맛대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방통위 힘빼기’가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독립성이 강한 위원회의 수장에 말 잘 듣는 인사를 심으려는 것 아닌가. 방송시장의 균형추를 잡아야 할 방통위에 방송 문외한을 앉혀놓고 방통위를 사실상 빈껍데기로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최성준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이 되어서도 어제와 같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면 정권의 꼭두각시라는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연 그가 최선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