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연합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사설] 위기의 시대, 연합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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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장익선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올해는 한국 TV 방송이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70년 전 처음 켜진 TV 방송의 불빛은 수많은 방송기술인의 손을 거쳐 오늘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70주년을 축하하는 우리의 마음이 마냥 밝지만은 않습니다. 광고 시장의 위축과 방송 산업의 불황은 회원사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고, AI, OTT, IP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고는 방송기술인의 일터와 역할 자체를 재정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또 하나의 현실이 있습니다.

조직보다 개인을 앞세우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협회나 연합회 같은 직능 단체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회원사의 여력은 줄어들고, 젊은 세대에게 단체 활동은 점점 낯선 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방송이 어려우니 방송기술인 단체도 어렵고, 함께 모이는 문화가 옅어지니 연합회의 자리도 좁아지는, 이중의 역풍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저는 우리 회원들이 주신 사명에 따라 ‘이러한 흐름 속에 연합회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역사가 늘 일깨워주듯, 오히려 위기는 답을 분명히 제시해 줍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일수록,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납니다. 지상파의 미래, 기술 표준의 향방, 정책의 방향. 그 어느 것 하나 개별 회원사가 홀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회원사 간의 정책을 잇고, 회원 개인의 성장과 산업의 변화를 잇고, 학교와 현장을 잇고, 국내와 국외를 잇는 자리. 저는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연합회의 주요 역할, 곧 ‘Hub’ 라고 판단하고, 2026년 상반기의 모든 활동을 이 신념 위에서 설계하고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 연합회가 최종적으로 향하는 곳은 조직의 위상이 아니라, 회원 개개인의 마음이라는 것을 항상 유념하고 있습니다. 연합회 활동에 참여하는 순간마다 “내가 방송기술인이라는 것이, 이 연합회의 회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회장으로서 제가 품고 있는 가장 개인적인,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목표입니다. 위상과 성과는 그 자부심이 쌓인 결과일 뿐입니다.

지난 3월 우리는 BBC 지상파 종료를 주제로 포럼을 열어 한국 지상파 방송의 미래를 정면으로 짚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의 질문이 될 의제를, 회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들여다본 시간이었습니다. KOBA 2026에서는 인덕대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테크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해 산학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단체 활동이 낯선 세대에게 연합회가 먼저 다가가 현장과 배움을 이어 준 시도였고, 학생들의 눈빛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연합회를 지탱하는 네 축, 사무처, 방송기술교육원, 방송기술저널, 그리고 매월 운영되는 포럼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홍익대학교, 인덕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와의 MOU, 한국IT진흥(주), APUTURE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연합회의 외연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특히 한류지수 개발 관련 국책과제에 우리 연합회가 선정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회원사의 재정 여력이 줄어드는 시기에, 연합회가 스스로 사업 기반을 만들고 방송기술인의 전문성을 국가 정책 과제의 파트너 수준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위축된 위상을 되찾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전자결재·전자감사 시스템 도입, 뉴스레터 도입, 미디어홍보단과 회원 밴드 운영 등 디지털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축했습니다. 모이기 어려운 시대라면, 모이지 않고도 이어질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연합회의 몫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5월에 RAPA와 함께 기획했던 청년미래플러스 협력 트랙은 내부 여건으로 정상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회원사 간 공동 입장이 필요한 정책 의제들도 아직 충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미완의 과제들 뒤에는 앞서 말씀드린 구조적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과만을 나열하는 보고는 쉽지만, 그런 보고는 조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처한 역풍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회원사와 함께 답을 찾는 것이, 현재 연합회를 꾸려가는 사람으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반기 결산을 정책간담회 형식으로 회원사 앞에 내놓았습니다. 연합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회장단이 정해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사와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상은 선언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회원 한 분 한 분이 “연합회가 내 직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만족을 넘어, 회원이라는 사실 자체에서 자부심을 느낄 때 비로소 회복됩니다.

하반기의 모든 사업은 그 만족과 자부심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교육에 참여한 회원이 성장을 실감하고, 포럼에 참석한 회원이 산업의 흐름을 먼저 읽고, 저널을 펼친 회원이 동료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그런 경험이 쌓여 갈 때, 연합회는 비로소 진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조명을 다루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저는 빛의 속성을 자주 생각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작은 빛도 멀리서 보입니다. 방송 산업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지금이야말로, 연합회가 방송기술인들에게 방향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빛은 한 점에 모일 때 가장 밝고, 모인 빛은 다시 사방으로 뻗어 나갑니다.

한국 TV 방송 70년, 그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은 언제나 현장의 방송기술인들이었습니다. 다음 70년을 준비하는 하반기, 회원과 회원사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상반기 동안 연합회 활동에 헌신해 주신 사무처·교육원·방송기술저널·방송과기술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모든 회원과 회원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