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포함된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가짜 뉴스” vs “언론 겁박”

언론인 포함된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가짜 뉴스” vs “언론 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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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쿠팡이 기자와 PD 등 언론인이 포함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채용을 제한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쿠팡은 “가짜 뉴스”라며 반발했고,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는 “언론인의 취재를 차단하려는 목적”이라며 “언론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MBC는 2월 13일 보도에서 엑셀 문서 파일을 공개하며 쿠팡의 블랙리스트를 단독 입수했다고 밝혔다. 해당 파일에는 과거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인물들의 신상정보나 블랙리스트 등록 사유가 담겨 있다. 사유로는 △음주 근무 △정상적인 업수 수행 불가능 △건강 문제 △직장 내 성희롱 △반복적인 무단결근 등이 있다.

해당 보도가 나가자 쿠팡은 즉각 반발했다. 쿠팡은 14일 공식 입장을 통해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 절도, 폭행, 반복적인 사규 위반 등의 행위를 일삼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함께 일하는 수십만 직원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회사의 당연한 책무”라며 MBC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쿠팡풀밀먼트서비스(CFS)의 인사평가 자료는 MBC 보도에서 제시된 출처불명의 문서와 일치하지 않으며, 어떠한 비밀기호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MBC의 비상식적이고 악의적인 보도 행태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소를 포함한 강력한 법적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쿠팡의 반박에 MBC는 14일 추가 보도에서 블랙리스트에는 방송과 신문 기자 그리고 PD들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쿠팡의 업무 환경을 탐사 보도한 기자뿐만 아니라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없는 서울시 경찰청 출입기자들도 ‘내부정보 외부유출’, ‘회사 명예훼손’ 등의 사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다.

쿠팡은 법적 대응으로 맞섰다. 쿠팡은 15일 방심위에 해당 보도를 가짜뉴스로 신고한 뒤 방송 중지를 요청했다. 또한 취재팀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만간 형사 고소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CFS는 1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 등 4명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 송파경찰서에 고소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공개하고, 마치 회사가 조직적인 댓글부대를 운영해 여론을 조작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에서다. 권 변호사 등은 앞서 1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쿠팡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또 CFS 물류센터 직원 A씨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간부 B씨도 영업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쿠팡은 A씨가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B씨와 공모해 수십 종의 영업기밀 자료를 빼돌려 언론사에 넘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소수 노동조합인 MBC노동조합(제3노조)도 자사 보도 비판에 나섰다. 이들은 14일 입장문을 통해 해당 보도가 취재윤리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제3노조는 “쿠팡 물류센터에 일용직 직원으로 투입된 기자들이 보여준 건 쿠팡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쿠팡 물류센터에서 직원이 일을 잘 못하면 구박을 당하더라’ 정도인데 문제는 기자들이 쿠팡 직원이 당한 불이익이나 피해를 촬영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모습을 취재했다는 것”이라며 “자신들이 직접 문제를 일으키거나 업무를 방해해 놓고 반응을 촬영해 오면 어떻게 객관적 보도라 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쿠팡의 태도를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15일 성명에서 기자와 PD 등 언론인의 명단을 언급하며 “쿠팡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해명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니, 현장 취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기자들을 상대로 시민과 노동자의 ‘알 권리’를 틀어막은 언론자유의 침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리스트에 포함된 언론인에는 쿠팡을 직접 취재하거나 보도하지 않은 경찰청 출입기자들도 포함되어 있다”며 “기자단의 내부 정보를 파악해 과거에 보도한 기자들 뿐 아니라 앞으로 취재할 기자들까지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연대는 “쿠팡이 또 다시 언론에 대한 겁박부터 들고 나왔다”며 “자사에 불편한 취재와 보도에 대해서는 ‘응징’하겠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21년에도 자사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고발한 기자와 언론사를 상대로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논란을 빚었는데 그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목소리는 엇갈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가지회견을 통해 “MBC는 불공정·왜곡적 보도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며 “정확한 사실 보도로 올바른 여론 형성을 해야 할 방송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노동대변인은 1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거대기업 쿠팡이 특정인의 채용 기피를 목적으로 인적사항 등이 담긴 블랙리스트를 운영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인사평가 차원’이라는 해명은 억지스럽고, 이는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수 없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40조에 위배되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고용노동부를 향해 “조속히 특별근로감독에 나서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녹색정의당은 14일 브리핑 자리에서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와 산재사고를 줄이고 노동을 존중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쿠팡의 연례행사”라며 “그럼에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노동환경과 부당노동행위에도 모자라 ‘블랙리스트’까지 만들고 있는 쿠팡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세동 녹색정의당 부대변인 역시 고용노동부의 즉각적인 감독을 촉구했다. 이 부대변인은 “이런 불법행위에 대해선 관용없이 철저하게 대처한다는 노동부의 명확한 입장과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할 것은 쿠팡의 노동자가 아니라 쿠팡”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