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수신료는 구독 서비스 요금이 아니다

[사설] TV 수신료는 구독 서비스 요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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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이종하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정해진 기간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우리는 일명 구독 서비스라 부른다. 과거부터 있어 왔던 렌털(케어)서비스가 이와 비슷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서비스 이용 기간이나 사용료 지불에 있어서는 지금의 구독 서비스와는 다르다.

과거에는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을 사용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처음에 한 번 지불하면 향후 업데이트를 포함한 포괄적인 사용권을 제공받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그런데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애플 플랫폼에서 이뤄진 앱 거래에서는 그 구매 행태가 바뀌어 한정된 기간을 대상으로 금액을 책정하고, 이 기간의 사용 권리만을 판매하는 구독 서비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러한 구독 형태는 프로그램 구매뿐 아니라 생활의 일상적 서비스 분야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사용자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물론, 구독 서비스가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이전에도 가입비를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며, 일정 금액이 아닌 용역을 제공받는 정도에 따라 비용을 차등 지불하는 회원제 서비스가 존재하기도 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넷플릭스가 DVD를 아날로그적으로 배달하던 시절의 회원제 서비스를 거쳐, 지금은 디지털‧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사용자들에게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독 서비스를 매월, 혹은 매년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다 보니, 이러한 형태로 돈을 지불하는 모든 서비스를 사용자는 구독 서비스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최근 분리징수로 이슈몰이 된 TV 수신료의 경우를 잠시 생각해 보면, 수신료는 구독 서비스 요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신료를 OTT 서비스 이용의 구독료 정도로 생각하도록, 그래서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구독을 끊듯이 수신료를 안 내도 되겠다고 생각하도록, 거기에다 그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쉽게 옮길 수 있도록 방송법 시행령을 너무나도 신속하게 개정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방송에 대한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꾸려질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가계 경제 상황에서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보이는 지출을 줄일 수 있는데 어떻게 하겠냐는, 어찌 보면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하면서 그것을 국민의 뜻이라 표현하며 공영방송의 운영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정책을 그렇게 간단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행태는 공정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정부의 움직임이라고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국민이 원해서, 국민의 뜻에 따라,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은 얼핏 보면 민주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유지했던 것을 변경하려면 적어도 우리를 둘러싼 여러 환경과 변화를 들여다보고, 많은 의견을 들어보는 기본적인 과정은 거쳐야 한다. 급작스럽게 단지 그 반대 여론만을 근거로 정책을 바꾸는 것은 결코 민주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국민의 걱정과 불안 속에 운영되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해 국민의 뜻을 묻는 여론조사(의무가 아닌, 자율적인 가입을 통한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것에 찬성하는지 반대하지)를 실시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를 두고 국민연금의 운명을 결정한다면 과연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는 계속해서 운용될 수 있을지, 국민연금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불편함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져서 그 결과만을 근거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올바른 일 처리 방식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 변화를 원한다면,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분명한 것은 TV 수신료는 사용자의 구독 서비스에 대한 구독료가 아니라 법이 정한 바에 따라 납부해야 하는 비용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신료는 공영방송을 꾸려나가는 데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