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이다. 이제 누군가와 통화를 할 때만 집어들던 휴대폰이 인터넷에, 게임에, 심지어 TV까지 틀어주는 세상이 아닌가.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동시에 어려워졌으며 피곤해 지기도 했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작년,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도가니] 열풍을 기억하시는지? 당시 사람들은 소설과 영화로 구성된 [도가니]를 통해 말 그대로 ‘분노의 도가니’에 빠져들어 미쳐버린 사회에 대한 울분을 마구 토해냈었다. 세상이 금방이라도 바뀔 것처럼 들썩이는 분위기 였던것 같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1년이 넘게 지난 현재 사람들의 관심은 식어버렸고, [도가니]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을 둘러싼 사회적 응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동시에 몇몇 언론은 말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버린 현재, ‘도가니’의 아픔은 계속 됩니다”
하지만 냄비 근성 어쩌고를 떠나서, 사람들의 관심이 빠르게 식어버린 것을 두고 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왜 이렇게 관심을 빨리 꺼버렸느냐”고 채근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필자는 많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현실성이 있든 없든 어쨌든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하며 또 그것이 바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되어버린지 오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 국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야경국가의 개념을 오래전에 던져버린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연히 경찰이 있고 검찰이 있고 법원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을 국민이 못해서 야단을 맞는다? 물론, 빠르게 식어버린 관심과 비례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이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이야기 하고자 했으면 더 근본적인 문제, 즉 ‘도가니 사건’이 지난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정의의 구현. 즉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추어야 하는 것이 맞다. 정의 구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졌음을 탓하기 보다는 시스템의 혁신을 이끌어 내지 못한 한계를 논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피곤하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고 빨라졌으며, 올바른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에 맡겨야 살만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람들의 관심에 모든 현안을 기대지 말자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업계로 눈을 돌려보면 자연스럽게 OBS가 떠오른다. OBS. 이 실감나는 기적의 방송사는 최근 갑자기 미디어 ‘핫 이슈’로 떠올랐다. 물론 그 시작은 미디어렙이었다. 민영 미디어렙에 포함되느냐 마느냐를 두고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인해 촉발된 미디어 붕괴의 1차 피해자가 바로 OBS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OBS가 미디어렙으로 인해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을때, 모두의 머릿속에 ‘i-TV의 악몽’이 아른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바로 그 순간 시민단체가 일어났다. 물론 시민단체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시청자, 즉 국민의 입장에서 현안을 판단할 줄 아는 이 ‘깐깐한 사람들’은 현재의 방통위 미디어렙 정책 자체가 ‘OBS로 대표되는 지역 미디어 말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나선 것이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그러한 투쟁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어쨌든 지역 미디어를 지키기 위해 땀과 눈물의 결실로 맺은 OBS와 시민단체의 의기투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평하고 싶다.
그런데 다시 시간이 지나고, 이번에는 OBS를 두고 시민단체들이 갑자기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불과 몇일 전만해도 OBS를 살리기 위해 방통위를 압박하던 시민단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원인은 하나였다. OBS가 공정방송의 취지를 훼손하고 모회사의 이익을 위해 뉴스를 내보내는 일이 벌어지자 시민단체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선 것이다. 아마 심각한 배신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물론 시민단체가 OBS의 사주를 위해 미디어렙 현안을 두고 방통위를 압박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은 OBS와 시민단체의 공고한 의기투합이 깨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자, 여기서 일반 대중, 즉 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해진다. 지역 미디어로 대표되는 OBS와 시민단체의 올바른 연합이 한 목소리로 미디어 정의를 외치다가 갑자기 돌아섰다? 조금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서두에서 밝힌 ‘복잡해진 세상’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 현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서 OBS ‘노-사’를 분이해야 하고 시민단체의 주장을 더 디테일하게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OBS의 공정방송 훼손 사건은 OBS의 ‘사 측’이 저지른 일이고 이에 대해 ‘노조’ 즉, 기자협회를 위시한 OBS의 직원들은 비판을 가하는 시민단체와 같은 진영에 서게 되는 것이다. 유치한 편먹기 게임 같다고 폄훼하지 마라. 세상은 냉정하고 차가우니까. 그리고 또 복잡하니까.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는 만큼 이제 다양한 현안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은 더 골머리를 썪게된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시대가 왔다. MBC의 편파 뉴스가 ‘노-사’의 합작품이 아닌 것처럼, 이제 우리는 사안을 디테일하게 잘라서 신중하게 분석하고 또 분석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복잡해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답지 않게 ‘사안의 디테일’을 무시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플랫폼이 변하면 콘텐츠도 변해야 하듯이(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이 변했으면 그 세상을 분석하는 시선도 달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마음 편한 분석을 통해 심각한 팩트의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그 극적인 대상이 바로 방통위와 지상파 방송사, 그리고 또 각각의 조직 내부일 것이다.
자, 여기서 우리는 전국 디지털 전환이라는 쇳가루 냄새 풀풀 나는(필자는 개인적으로 쇳가루를 좋아한다) 방송 기술 현안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지금 이 디지털 전환을 두고 미디어 계에서는 소위 ‘난리’가 났다. 처참한 수준의 직접수신률은 물론이거니와 홍보의 부족, 말도 안 되는 예산 삭감까지. 돈의 맛에 길들여진 몇몇 이익단체의 농간에 미디어 무료 보편의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고 주무부처의 공정한 로드맵은 ‘원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비판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불만은 왜 ‘방통위와 지상파를 함께 엮느냐는 것이냐’이다. 아, 또 있다. ‘왜 지상파 안에서도 방송기술인과 타 방송인들을 싸잡아 관심이 없냐고 말하는 것이냐’ 이다.
이쯤되면 많은 사람들은 ‘언플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명확히 밝혀두 건데, 지상파 방송사가 모든 분야에서 정말 모든 사안을 잘 처리해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겠다. 당장 MBC 노동조합의 파업 및 그에 관련된 추악한 사측의 패악질은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방송 기술’에 대한 문제라면, 또 다르다. 여기서 조금 피곤하더라도 세분화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방통위와 지상파의 ‘분리’다.
전국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700MHz 대역 주파수의 방송 할당과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의 현실화가 지상파 방송사의 오랜 숙원임을 웬만한 미디어 전문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자사의 이익을 염려한 케이블의 입김에 휘둘려 다채널 서비스는 엄두도 못내고 있으며 700MHz 대역 주파수는 위원장의 마음의 고향인 통신사에 부분 할당된 상황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정말 끝도 없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한번 눈을 뜨고 보자. 무료 보편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 옳은지. 답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그 옳은 것을 추진하는 주체와 반대하는 주체를 따져보자. 따지고 또 따지자. 피곤할지라도. 그것이 현대 사회의 숙명이다. 이것은 지상파 내부에서도 방송 기술 현안에는 별 관심 없이 ‘지상파의 PP화’를 묘하게 즐기기까지 하는 PD 및 기자 등 도 포함된다.(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무관심은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장황하게 글을 썼지만, 다시 한번 정리 하자면 ‘사안을 세분화 시켜 분석하자’이다. 지상파 방송사가 잘 못한 부분은 그 부분대로 비판하되, 전혀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그 비판의 앙금이 남아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더 깊이 파고들어간 다음 내용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도 반드시 내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 여기서 명확해진다. 지상파 방송사가 공공의 이익 보장이 확실한 700MHz 대역 주파수와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의 현실화를 부르짖는 그 순간까지, 김재철 사장과 미디어렙 문제는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바로 ‘아닌데? 관련 안 시켜도 충분히 못하고 있는데?’라고 말이다. 그러면 뭐 할말이 없어진다. 그냥 살포시 이 창을 닫고 주저리 주저리 말한 본고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수밖에.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사회는 복잡하고 피곤하다. 그래서 현안도 복잡하고 피곤해졌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절대로 한 시민단체 사람이 “지상파 방송사가 제대로 해온 것이 없으니 700MHz 대역 주파수가 지상파로 돌아가는 것을 반대한다”고 언급한 사실을 두고 화들짝 놀라 이런 칼럼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점. 사실 그 때 정말 묻고 싶었다. 바로 이렇게. “700MHz 대역 주파수가 통신에 돌아가면 공공의 이익이 더 커진다는 건가요?” 그리고 이것도. “김재철 사장이 미워도 700MHz 대역 주파수 이야기는 다른 사안인데…” 또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만회하기 위한 방안으로 700MHz 대역 주파수와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통해 만회하고자 하는 것인데…”
결론은, ‘너무 냉정했다’ 정도 되려나 싶다. 역시 너무 장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