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정보통신 업계 및 관련 학계와 협회 등이 모여 ‘옛 정보통신부 부활’, ‘ICT 거버넌스 통합을 중심으로 한 정부 기구 개편’을 주장하며 일명 ‘정보·방송·통신 대연합(ICT 대연합)’ 출범식을 열었다. 이는 정통부 해체 이후 대한민국의 ICT 역량이 현저히 저하되었음을 인정하는 한편, 이를 만회하고자 ICT 콘트롤 타워(가칭 정보매체혁신부)를 구성해 국가 경쟁력 제고에 힘쓰겠다는 취지다. ICT 대연합은 11개 협회와 15개 학회, 7개의 포럼이 동참했으며 11일 출범식에는 이석채 KT 회장 및 100여 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를 ‘ICT 발전을 위한 순수한 동기’로만 이해하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대선 정국이라는 미묘한 시점이다. ICT 대연합 사무총장을 맡은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는 “향후 대선 주자 토론회 및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묻고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것”이라며 정치권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길 바라는 염원을 숨기지 않았다. 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ICT는 대한민국 성장동력임에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만 봐도 IT관련 참모는 단 한명도 없다”고 쓴소리를 하는가 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와 잠재적 야권 대선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을 언급하며 ICT 대연합이 제시하는 패러다임을 강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이 자체만으로도 민감한 정치 정국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런데 그 ‘의도’가 정보통신부의 부활을 전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기에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ICT 대연합이 정통부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 자체는 의견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정부 조직법 개편을 앞두고 통신 재벌과 정부 관료의 유착이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정통부의 기능이 나누어지며 통신 분야가 방송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로 묶인 것에 대한 불만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정통부 시절 관료와 통신업계는 하나의 ‘핫 라인’으로 정책적 판단을 기민하게 내리곤 했지만 지금의 방통위는 위원회 체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핫 라인’, 즉 나쁘게 말하면 ‘유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ICT 대연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묘한 대선 정국에 ICT 대연합을 주도하는 통신 재벌이 과거 유착이 쉬웠던 정통부의 부활을 노리는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주장은 이석채 KT 회장이 당일 출범식에서 현 방송통신위원회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사실과 ICT 대연합의 면면이 IT 전반을 아우른다기 보다는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와 깊은 관계가 있는 단체들이라는 점을 들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다. 바로 ICT 대연합 자체가 공공의 느낌이 강한 방송 영역을 통신의 영역에 종속시킬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ICT 대연합 측은 ‘진흥’과 ‘규제’의 기능을 분리하기 위해 현 위원회 체제의 장점인 ‘협의 기능’을 받아들여 그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콘텐츠,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기기, 정보화 등을 전담하는 정보매체혁신부를 두고 그 아래 방송을 담당하는 합의제 기구인 정보매체위원회, 방송·통신·영상·게임물 등을 심의하는 콘텐츠위원회 등을 둔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 자체가 ICT 대연합의 주도 세력인 통신 재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실상 방송 분야는 통신 분야에 종속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방송과 통신의 발전이 기민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ICT 대연합이 각각이 가진 공적 책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의심하고 있다.
또 이러한 의심은 ICT 대연합이 지나치게 산업적인 성장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대목에 이르러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대연합이 강조하는 ‘ICT 생태계의 미래 비전’은 통신자본의 산업적 요구는 강조하지만, 생태계의 본래적 의미 즉 정보·방송·통신 발전이 시민사회와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담지 않았다. 이처럼 신구 관료와 함께 통신자본의 이익을 좇는 집단이 득세할 경우, 우리 나라 ICT의 산업적 발전에 관한 기대도 불투명할 뿐 아니라 산업이 발전한다 해도 정보·방송·통신을 이용하는 시민의 생활 환경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ICT 대연합의 고문인 이석채 KT 회장의 의미심장한 선포식 발언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특히 방통위를 직접 겨냥해 수위가 높은 비난을 쏟아낸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방통위와 KT사이에 문제가 되고 있는 DCS 논쟁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회장은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불만이 내재돼 있는데 이런 문제는 BICT(방송정보통신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이 해결책을 수많은 장차관들께 설명했지만 누구 한사람 우리가 나서겠다는 부처가 없었다”고 전했다. 사실상 현재의 ICT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인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 어디에도 ICT 대연합이 주장하는 방송과 통신, 기타 IT 분야 업종을 총괄하는 사례가 없다는 반론은 이번 ICT 대연합의 목적이 해당 분야의 진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선 정국을 활용해 정통부의 부활을 이끌어 내려는 통신 재벌의 술수’라는 의심의 눈길을 접지않고 있다.